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돌봄'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과 개인의 당면 문제이자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입니다. 돌봄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지역소멸과 초저출산 시대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우리시대의 당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은 전국민돌봄보장 실현을 위한 담론과 실천적 대안 마련을 위해 함께 지혜와 역량을 모으기로 하고, [기획특집-돌봄]을 연재합니다. 연재에서는 단기적 방향에서 전문 인력의 협력 구조 구축과 장기적 방향에서 통합 돌봄 케어 시스템 구축에 있어 문제점을 짚어보고 현실적인 방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박성배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성배 가정의학과 전문의

 

"돌봄통합지원, 보건의료서비스 제공방안(일차의료)" 제15조(보건의료)

박성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 제15조(보건의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통합지원 대상자의 욕구와 필요에 맞는 통합지원을 위하여 보건의료 분야에서 다음 각호의 서비스를 확대하고 다른 서비스와의 연계를 강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의료법」 제2조 제2항 제1호부터 제3호까지에 따른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가 의료기관 및 통합지원 대상자의 가정과 사회복지시설에서 제공하는 진료서비스

Ageing in Place와 일차의료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복합만성질환과 그 합병증인 신체, 인지기능 저하를 가진 노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시설입소자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평소에 자신이 생활하는 집과 지역사회에서 노후를 보내는 "Ageing in place" ("자택 노화" 또는 "자택에서 노후를 보내기")는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다. 자신의 집이나 기존 커뮤니티 내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Ageing in place"는 노인이 요양원이나 병원으로 이동하지 않고 자택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과 환경 조정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Ageing in place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보건의료 시스템이 노인 인구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편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 통합, 일차보건의료 촉진, 만성질환 관리에 중점을 두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 외에도 자택에서 노후를 보내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주거지, 커뮤니티, 공공 공간에 접근할 수 있고 노인 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사회적 참여와 참여 촉진이 정신적 및 정서적 복지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기에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고 지역사회에서의 적극적인 참여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 보건의료 시스템의 변화에 관련해서는 만성질환 관리에 중점을 둔 지속적이고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모든 서비스를 통합 할 수 있는 일차의료(Primary Care)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고전적인 개념의 Primary Care의 속성인 4C의 개념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는데, 1차 접촉(1st Contact), 연속성(Continuity), 포괄성(Comprehensiveness), 조정성(Coordination) 모두가 발휘되어야 진정한 Primary Care라고 할 수 있다. "일차의료"는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 "1"에 무게를 둔 단어인 "1차"진료와는 전혀 다른 뜻이다. 일차의료라 함은 순서의 문제가 아닌 등록 후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제공되는 근본적인 돌봄("Fundamental" Care)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1차진료"는 매우 활성화 돼 있으나 "일차의료"는 매우 비활성화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이용자들은 자신을 전담하고 책임져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일차의료를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고 3차병원으로 몰리게 되었고 이는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초래해 왔다.  

우리나라의 의료전달 체계의 붕괴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는데 행위별 수가 중심 보상 체계와 저수가 일변도의 정책은 일차의료의 활성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일차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상담, 예방적 활동, 팀 접근 등의 미충족 수요와 관련된 수가는 전혀 없거나 너무 낮아 제공할수록 적자일 수밖에 없는 서비스들이다. 이와는 달리 고가 기계를 기반으로 하는 검사들의 수가는 오히려 충분히 보상되고 있어, 의료적 군비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유하는 3차병원을 환자들이 더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바로 이것이 전체 의료비 중 일차의료의 점유율이 점점 감소하게 만들고 상급 종합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이 극에 달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불형태는 이용자들의 일차의료 기피 현상뿐만 아니라 3차병원의 의사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이어져 왔고 원가보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3차병원들이 저렴한 인력인 전공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점차 변화돼 왔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은 올해 3차병원의 전공의들이 사직한 후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현재의 지불 모형하에서는 고가 장비를 사용한 검사가 적고 비급여 행위가 많지 않은 진료과는 진료를 보면 볼수록 수익률은 떨어지게 되어 점점 더 의대생들의 외면을 받아 비인기과로 전락되어 왔고, 무분별한 형사책임을 지우는 판결들은 바이탈을 다루는 소위 필수 의료과 의사들의 "생명 지킴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티는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뜨려 왔다. 이제 전공의들의 병원을 사직한 상황에서 3차병원들은 생존을 다투는 상황이 되었고 이는 모두 붕괴된 의료전달 체계로 인한 3차병원 집중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또 하나의 큰 원인은 만성질환과 그 합병증으로 인해 기능 저하자 비율이 증가한 질병 양상의 변화이다. 이러한 질병 양상의 변화가 일차의료가 본연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고기능화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의사1인과 보조적인 간호 인력만으로도 관리가 가능한 감염성 질환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복합 만성질환과 기능저하가 가장 중요한 질병 부담이 된 상황에서 특히 거동 불편군과 와상군을 위한 방문 진료 등의 미충족수요를 채우기에는 의사 혼자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혼자서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주치 팀이 힘을 모아서 의료서비스 이용자들을 포괄적, 조정적, 지속적으로 관리함으로 이용자들이 느끼기에도 매력적인 일차 의료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최근 일차의료 방문진료수가 시범사업과 장기요양 재택의료 시범사업등의 시작으로 일차의료에서의 방문 진료가 시동을 걸기 시작하였으나 방문수가 수준 및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에는 턱이 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Ageing in Place의 정의상으로 볼 때 자신의 동네에서 관리해 주던 주치의가 거동이 불편해진 후에도 연속적으로 관리해 줄 수 있을 때 가장 이상적인 방문 진료가 될 것이므로 동네 의원들의 방문 진료 참여가 많은 미충족 방문 진료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차의료가 방문 진료를 포함하고 지속적이고 상시적으로 대상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팀을 기반으로 하는 일차의료로의 구조 및 기능의 변화가 필요하다. 2022년 공단과 가정의학회는 함께 등록을 기본으로 하는 주치 팀 모형을 새로운 고 기능형 일차의료 모델로 제시하였고 이를 "환자중심 일차의료"라 명명하였다.

팀을 이루는 방식은 현재 우리나라 개원의의 80% 이상이 단독개원임을 고려할 때 두 가지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지역사회의 일차의료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팀을 이루는 "가상다학제팀"(Virtually Coordinated Interdisciplinary Team, 이하 VDT) 모델이고 둘째는 해당 의료기관에 다학제 팀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실제 다학제팀"(Physically Co-located Interdisciplinary Team, 아하 PDT) 모델이다. VDT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역거점병원과 지역의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일차의료 네트워크가 존재해야 하고 VDT가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조정(Coordination, 코디네이션) 및 연계 기능을 담당하는 일차의료 지원센터가 필요하다. 물론 PDT 또한 정상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일차의료 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일차의료 지원센터의 역할은 해당 지역 내 지역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운영함으로 단독개원의원들도 팀 기반 고기능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술적, 인적 지원을 제공하고 또한 충분한 역량을 가진 인력을 배출하는 교육 기관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일단 의사직 관련해서는 의대생뿐만 아니라 전공의들의 지역사회 의료(일차의료) 수련을 담당해야 하고, 조정 또는 코디네이션을 전담하는 코디네이터 교육과 일차의료를 위한 임상 간호사 및 임상 복지사를 포함 다학제 팀원을 구성할 각 직역의 수련을 담당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일차의료 지원센터는 지역의료 네트워크에 기반하여 일차의료 지원기능과 교육/수련 기능을 포함 일차의료 연구기능까지 가진 지역의료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현재 이러한 모델을 검증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이 일산병원과 함께 2024년 "일차의료지원(개발)센터"를 개소하여 "환자중심 일차의료"를 위한 실제다학제팀 모형인 PDT 원내 테스팅은 마무리 단계이고 지역의료 네트워크에서 가상다학제팀 모형인 VDT를 7월 1일부터 지역사회 일차의료 의원 네 곳과 함께 파일럿 테스팅에 들어간 상태이다. 지역사회 일차의료 의원들이 대상자들을 등록하여 지속적인 관계를 맺은후 정기적 대면 진료와 빈틈없는 비대면 관리를 통해 지속성/접근성이 담보되고, 대부분의 문제를 직접 관리하거나 거점병원과 연계하여 해결하는 포괄성/조정성까지 모두 담보하는 일차의료 모델을 테스팅한다. 일차의료 지원센터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파일럿 테스팅을 올해 말까지 진행한다. 

이렇게 표준화된 환자 중심적 일차의료 기능을 가지고 이용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일차의료는 현재의 무너진 의료전달 체계를 바로 잡는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의료대란을 생각했을 때 2025년에는 반드시 작은 규모라도 시범사업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범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선행조건이 필요하다. 의료서비스 이용자들이 느끼기에도 매력적인 고기능의 일차의료가 되기 위해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등록을 기본으로 한 팀 기반 관리가 필수적이고 이는 일차의료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가 동반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서비스양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행위별 수가만으로는 안정적인 팀 운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양이 아닌 질(결과)에 대해 보상하는 가치기반 지불제도 등을 활용하여 미충족요구도(Unmet Need)를 채우기 위한 동력을 제공해야 할 것이며, 행위별 수가제에 의한 후불 보상에 더불어 인당 정액제 등의 선불 보상도 포함한 혼합형 지불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인당정액은 과거 의료비용을 기준으로 위험도에 따라 각 이용자의 예측 의료비를 산출하는 "계층적 질환군"(Hierarchical Condition Category, 이하 HCC) 위험조정 모델 등을 활용하여 산출하고, 이 금액의 최소 50% 정도는 사전 지급되어 인력 고용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혁신적인 지불 모형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일차의료 의원들이 인건비 걱정, 생존 걱정, 행정적 부담 걱정 안 하면서도 미충족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고기능 일차 의료로의 변혁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성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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