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통합 기획] 그 너머, 아이의 권리로서의 교육을 말하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시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저출생 사회, 돌봄 위기, 사교육 확산, 교사 이탈, 공공성의 후퇴라는 복합적 위기 앞에서 교육과 보육의 이원화 체제를 넘어선 '미래 영유아 교육체제' 구축이 절실합니다. 이로운넷은 새 정부에서 유보통합의 올바른 방향 정립이 이루어지도록 유보통합의 현주소를 짚고 국가책임 영유아교육으로의 방향 전환을 촉구하며 교사와 부모, 현장과 정책, 이론과 실천이 연결된 질적 전환 과제들을 20여 회에 걸쳐 집중 조명하고자 합니다. <이로운넷 편집자>
아이의 하루를 중심에 둔 유보통합, 이제는 실행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회장 김경숙
저출생과 돌봄 위기를 말할 때마다 우리는 숫자와 그래프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아침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하며 아이를 맡기는 부모, 원아 수가 줄어드는 현실을 누구보다 먼저 체감하면서도 아이 한 명 한 명을 위해 교실을 준비하는 교사, 문을 닫을지 버틸지 매달 계산기를 두드리는 원장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어린이집은 7천여 곳이 문을 닫았고, 2021년과 비교하면 2025년 시설 수는 약 20% 줄어들었다. 맡길 곳이 없어 멀리 통학을 해야 하는 아이가 늘고, 도시와 농촌, 유형별 시설 간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이 현실에서 유보통합은 선택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 현장을 위해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이다.
이제 우리는 그간 보육이 해 온 역할, 유보통합 논의 속에서 드러난 보육의 붕괴 위험, 그리고 미래 영유아를 위한 유보통합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함께 짚어보아야 한다.
그간의 보육이 담당해 온 돌봄과 교육적 역할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집은 오랫동안 "부모가 일을 할 수 있게 아이를 맡기는 곳"으로 인식되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을 들여다보면, 어린이집은 단순한 돌봄시설을 넘어 영유아기의 전인적 성장을 이끄는 교육기관으로 기능해 왔다.
영유아기의 일상은 돌봄과 교육이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등원·식사·낮잠·실내외 놀이·귀가 준비에 이르는 하루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해보는 경험, 함께 사용하는 규칙을 배우는 경험,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는 경험을 반복하며 자라왔다. 먹기·씻기·기다리기·또래와의 상호작용과 같은 돌봄 활동은 단순한 생활지도가 아니라, 이후 학교생활에서 요구되는 자기조절, 협력, 의사소통 능력의 기초가 된다.
어린이집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돌봄은 보호와 관리에 그치지 않고, 영유아의 발달을 떠받치는 교육적 토대다. 유보통합 논의는 바로 이 지점, 즉 보육이 이미 수행해 온 교육적 역할을 정확히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국 어린이집은 영유아기 전반에서 놀이·생활·관계·돌봄이 통합된 교육 공간으로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교육 인프라를 떠받쳐 온 셈이다. 돌봄과 교육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대신, 아이의 하루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져 온 보육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유보통합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유보통합 논의 속에서 드러난 보육의 붕괴 위험
지금 유보통합은 '교육부로 행정 일원화'라는 큰 틀 속에서 추진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출생아 급감과 함께 원아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그 여파는 시설 폐원, 교사 이직, 농어촌·취약지역 보육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재정 구조와 제도 설계가 보육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때, 유보통합은 제도 개편이 아니라 보육의 붕괴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5세 무상 교육은 기관 유형에 따라 7만 원과 11만 원으로 나뉘어 있다. 같은 연령, 같은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격차는 아이와 부모의 선택을 제약하고, 일부 어린이집의 운영 기반을 약화시키며, 결국 지역별 보육 공백을 확대시킨다.
0세반 교사 대 아동 비율을 1:3에서 1:2로 개선하려는 정책 방향 자체는 영아의 안전과 발달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예정된 지원 수준은 어린이집이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와 운영비 증가분을 충분히 보전해 주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여기에 1:2와 1:3을 기관별로 자율 선택하도록 한 방식은, 재정 여력에 따라 선택이 갈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정책 취지와 달리, 재정 여건에 따라 기관별·월별로 1:2와 1:3으로 달리 운영하는 구조는 새로운 격차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영유아의 안전을 지키려는 제도가 영유아의 보육 기회 자체를 줄이거나, 기관 간 형평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유보통합은 행정 체계를 바꾸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영유아의 안전과 발달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교사 배치와 재정 지원 대책이 함께 마련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미래 영유아를 위한 유보통합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
◦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생각하는 유보통합의 원칙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이하 한어총)는 유보통합을 첫째, 영유아 출발선의 평등을 실현하는 제도 개편, 둘째, 부모가 안심하고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국가책임 체계, 셋째, 교사의 전문성과 권리를 지키는 현장 중심 개혁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를 위해 한어총은 지난 정부와 새 정부를 거치며 유보통합 3법 개정, 통합기관 명칭, 통합교사 자격, 재정 구조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과 연구를 지속해 왔다. 유보통합은 어느 한 집단의 이해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어디에 다니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아이가 존중받는 하루를 보내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 재정·법 제도: 동연령 동일지원에서 시작하는 국가책임
앞서 언급했듯, 현재 5세 무상교육 지원에서 기관 유형에 따라 어린이집 기타필요경비 7만원과 유치원 교육비 11만 원으로 나뉘어 있다. 같은 나이의 아이가 어떤 기관에서는 더 오래 머무르는데도, 지원 단가는 오히려 더 낮게 책정되어 있는 현실은, 부모 부담의 형평성과 아이의 권리 측면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지원 방식이 다르면 결국 아이와 부모의 선택이 제약되고, 일부 기관의 운영 기반이 약화되며, 지역별 보육 공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방교육재정과 저출생 예산이 따로 흐르는 동안 정작 영유아 교육·보육의 현장은 불안정한 재정 속에 놓여 왔다.
이제 국가는 '어디에 다니는지'가 아니라 '어떤 과정을 제공받는지'에 따라 '동일연령 동일지원' 원칙을 세우고, 이를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유아보육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과 더불어 가칭 '유아교육·보육특별회계법' 제정을 통해 행정과 재정을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육 예산과 유아교육 예산을 통합해 유보통합 재정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체계를 만드는 일, 그것이 바로 국가가 책임 있는 유보통합을 약속하는 가장 분명한 신호가 될 것이다.
◦ 교사의 0~5세 통합교육과정: 돌봄의 '비가시적 교육효과'를 드러내야
좋은 교육과정이 있어도 그것을 구현하는 교사가 지치고 불안하다면, 아이의 하루는 달라지기 어렵다. 이번 기획특집에서 여러 필자가 공통으로 지적했듯, 영유아교육의 질은 어떤 유형의 기관인지가 아니라, 영유아를 곁에서 돌보고 가르치는 교사의 전문성과 여건에서 결정된다. 그럼에도 영유아교사들은 긴 노동시간과 부족한 휴게시간,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놓여 있다.
한어총은 유치원교사와 보육교사로 이원화된 자격을 ‘영유아교사’ 단일 자격으로 통합하고, 4년제 대학 기반의 영유아교육과 통합 양성체계를 마련하며, 현직교사를 위한 자격 전환 교육과 경력 인정 방안을 함께 설계할 것을 제안해 왔다.
연성대 유주연 교수는 0~5세 교육과정의 방향을 논의하면서, "0~2세 보육과 3~5세 교육을 내용과 목표를 다른 별개의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출생부터 5세까지를 하나의 연속된 교육과정 틀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아기의 먹기·자기·기다리기·관찰·탐색과 같은 돌봄 활동이, 초등학교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의 기초를 형성하는 중요한 "이음교육 기초역량"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이는 유보통합 이후의 교육과정이 돌봄은 돌봄대로, 교육은 교육대로가 아니라, 돌봄 속에 숨어 있는 교육적 의미를 드러내고, 0~5세를 아우르는 통합과정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유보통합 이후의 교육과정은 서류상의 통합에 머무르지 않고, 교사가 실제 교실에서 아이와 함께 구현할 수 있는 놀이와 생활 중심 과정이어야 한다.
교사의 환경을 바로 세우고, 그 위에 통합된 교육과정을 올려놓는 것, 이것이 아이의 하루를 바꾸는 유보통합의 핵심이다.
◦ 이름과 절차가 바뀌어야 인식이 달라진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두 기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위계를 만들어 왔다. 여기에 더해, 법령과 시스템에서 쓰여 온 ‘입소’와 ‘입학’이라는 용어 역시 학부모의 인식에 적지 않은 차이를 만들어 왔다.
많은 학부모들이 '입학'은 학교 진학처럼 신중한 선택과 결정의 과정으로, '입소'는 자리가 나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돌봄 중심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두 기관은 누리과정이라는 같은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용어 차이만으로 시설 간 격차와 왜곡된 이미지가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한어총은 올해부터 유보통합 포털의 화면 구성과 절차, 설명과 안내 문구를 개편하여 어린이집이 불리하게 보이지 않도록 개선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가칭 '영유아학교'와 같은 통합 명칭을 도입하고, 기관 이용 용어에서도 '입소'와 '입학'에서 비롯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메뉴 구성을 바꾸고, 용어 몇 개를 손보는 행정 절차에 불과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름과 언어, 시스템이 바뀌어야 영유아와 부모가 '국가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동등한 교육기관으로 대하고 있다'는 감각을 갖게 된다. 유보통합은 바로 이런 작은 차이들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일에서부터,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삶의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 유보통합을 향한 현장의 실천과 한어총의 역할
한어총은 지난 몇 해 동안 유보통합 공약 채택을 위한 52만 명 서명 운동, 유보통합 3법 조속 처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영유아 교육·보육 통합기관 설립·운영기준] 연구, 미래형 영유아보육과정 자문회의 등 현장과 함께하는 여러 노력을 이어왔다. 우리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유아와 교사, 부모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책은 결국 현장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한어총은 앞으로도 교육부, 국회, 지방자치단체, 학계와 손잡고 현장을 가장 잘 아는 파트너로서 책임 있게 역할을 다할 것이다.

어린이집은 아이 한 명의 내일이자 우리 사회 100년의 미래
유보통합은 거대한 행정 개편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아이 한 명의 내일이다.
아침에 어린이집 문을 들어선 아이가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국가 수준 공통교육과정에 따라 놀고 배우며, 일상 속에서 스스로 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며, 돌봄과 교육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든든히 먹고 충분히 쉬고,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힘을 기르며, 존중받는 관계 속에서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배운다. 그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아이의 내일이 되고, 그 내일들이 모여 우리 사회 100년의 미래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집이 단지 돌봄을 위탁하는 곳, 단지 학습을 진행하는 곳이 아니라, 교사가 지치지 않고 부모가 신뢰하는 조건 속에서 영유아의 삶을 함께 설계해 가는 교육공동체가 되어 부모는 불안 없이 일할 수 있고, 국가는 그 책임을 제도와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유보통합의 성패는 법률 개정이나 조직도 개편의 완성 여부가 아니라, 현장의 교실에서 아이 한 명의 하루가 어제보다 더 안전하고, 더 즐겁고, 더 존중받는 방향으로 달라지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는 말이 아닌 실행의 시간이 되어, 어린이집이 아이 한 명의 내일과 우리 사회 100년의 미래를 함께 키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