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돌봄'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과 개인의 당면 문제이자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입니다. 돌봄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지역소멸과 초저출산 시대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우리시대의 당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은 전국민돌봄보장 실현을 위한 담론과 실천적 대안 마련을 위해 함께 지혜와 역량을 모으기로 하고, [기획특집-돌봄]을 연재합니다. 연재에서는 단기적 방향에서 전문 인력의 협력 구조 구축과 장기적 방향에서 통합 돌봄 케어 시스템 구축에 있어 문제점을 짚어보고 현실적인 방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전용호 교수
전용호 교수

"지역돌봄법의 제정 배경과 핵심 원칙"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4년 3월 26일에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간 지역 돌봄의 제도화를 희망하는 많은 이들의 열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작년에 지역돌봄이 국회에서 논의 될때만 해도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에서 쉽지 않을 것으로 기대가 크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지난 정부의 실적으로 여기고 시범사업 예산의 대부분을 삭감하고, 사업 명칭을 바꾸고 사업을 축소시키는 등의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 밖의 결과였다. 여당과 야당의 7명 의원이 지속적으로 입법화를 추진했고, 국회의원들은 정부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보건복지부는 정부안을 내놓으면서 여야를 적극 설득하면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입법화를 견인했다. 일부 의견의 차이가 있었지만 여당과 야당은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인한 지역단위 돌봄의 체계화가 시대적인 과제라는데 공감했다. 

이번 법률이 조속히 통과되면서 그간 문재인 정부에서 수년간 실시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과 윤석열 정부에서 실시한 시범사업 등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특히 이번 법안은 전국의 기초 지자체가 지역 주민의 돌봄의 기획, 계획 수립, 대상자 발굴, 조사 및 판정, 개인별 서비스 제공 계획 수립 등 실질적인 돌봄의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법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번 법률의 통과를 기뻐하면서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시기상조다. 왜냐하면, 법률이 통과되어 있을 뿐, 앞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세부 사항들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앞으로 크고 작은 정부의 위임 입법 사항들이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이번 법안의 내용과 성격 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의 지역 기반 사회적 돌봄의 역사는 매우 짧고, 각종 돌봄 체계는 구조적인 난맥상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률이 돌봄의 각종 문제에 대응해서 변화를 견인하는 핵심적인 내용으로 도입되길 기대했지만 전반적으로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돌봄의 문제를 혁신할 내용이 충분히 담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빠른 법률의 통과가 오히려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술 밥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처럼 법률 통과 하나가 만능통치약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돌봄의 '기본법'으로서 각종 돌봄과 관련된 법률들을 포괄하면서 돌봄 체계의 혁신을 견인하기에는 너무 미흡하다. 법률의 내용을 살펴보면, 돌봄의 주요한 대상자를 노인과 장애인으로 크게 제한했고, 기존의 보건의료와 복지의 서비스를 어떻게 연계하고 통합적으로 제공할지의 방안도 없다. 서비스 제공인력을 어떻게 고도화시키고 안정적 수급을 위한 대책도 없다. 기존의 분절적인 전달체계를 어떻게 통합시키면서 혼란을 극복할지의 방안도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이 법률이 돌봄의 핵심적인 기본법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반드시 견지해야 할 원칙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 이용자 중심성의 원칙이다. 우리가 이 법률을 도입한 근본인 이유는 스스로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영위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주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의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기능이 저하된 대상자에게 맞춤형의 적절한 돌봄을 제공해서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서비스 공급기관과 제공인력, 전문가 등의 다양한 주체가 결합되면서 그들만의 고유한 이해관계가 생길 수 있다. 때로는 그들의 이해관계가 이용자와 대립하거나 충돌할 수도 있다.

우리는 돌봄을 제공함에 있어, 이용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서비스의 계획과 이용 등의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제공인력이나 전문가들의 직역간의 이해관계를 우선시 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존엄한 삶을 위한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둘째, 보편성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이번 법안은 노인과 장애인을 중심적인 돌봄의 대상자로 상정하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는 기존의 ‘돌봄 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나이 어린 청소년부터 중장년, 노인까지, 사실상 전 연령대가 고립과 은둔으로 인한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유례없는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세상에서 크고 작은 상처와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사람들과의 만남이 두렵거나 어색해하면서 힘들어 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 가족과 이웃, 전문 돌봄 인력 등의 관심과 지원을 통한 지지가 필요한 대상자다. 즉,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로 이들의 돌봄의 사각지대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보건복지부는 일단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지역 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대상자별로 너무 분절화된 돌봄 체계가 더욱 고착화될 우려가 있다. 우리보다 앞선 일본은 지역공생사회와 지역 포괄케어, 신복지비전 등의 정책을 통해서 포괄적인 대상자를 위한 돌봄 체계의 구축을 외치고 있다. 반드시 우리가 반면교사 해야 한다. 

셋째, 적합성의 원칙이다. 이용자의 욕구를 실질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서비스 품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가령 대상자를 위한 서비스 시간이 충분히 제공되고 제공인력의 서비스 품질도 적합하고 충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자가 느끼는 생활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매우 낮을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이용자중심성의 원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대상자의 입장에 서서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만드는 거시적인 정책에서부터 현장에서 제공하는 작은 서비스 프로그램까지 적합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시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향후에 법률에서 돌봄 인력의 안정적인 수급과 교육과 훈련 등의 내용이 반드시 담겨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제공인력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적합성 원칙을 달성하기 근본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넷째, 통합성의 원칙이다. 각종 돌봄의 전달체계를 이용자의 입장해서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연계, 조정, 통합하는 것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돌봄 체계는 대상자별로 너무 나눠져 있다.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자체 사업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실시하는데, 이들 중의 일부는 서로  유사하고 중복되는 경우도 있다.

기초 지자체 내에서도 보건국과 복지국 간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아서 제각각 사업이 추진되면서 이용자는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가령,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방문건강관리서비스와 복지국에서 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는 대상자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등급외자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이 둘 서비스간의 연계나 통합을 통해서 노인이 필요한 보건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한꺼번에 이용하도록 전달체계를 적극 개편해야 한다. 

요컨대, 이번 법률의 통과를 통해서 지역 돌봄이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데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우리나라 돌봄 체계가 구조적으로 봉착해있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너무 미흡하다. 앞에서 제시한 핵심적인 원칙을 고려하면서 이 법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우리의 가족과 친구, 이웃을 위해서 절실하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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