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돌봄'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과 개인의 당면 문제이자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입니다. 돌봄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지역소멸과 초저출산 시대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우리시대의 당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은 전국민돌봄보장 실현을 위한 담론과 실천적 대안 마련을 위해 함께 지혜와 역량을 모으기로 하고, [기획특집-돌봄]을 연재합니다. 연재에서는 단기적 방향에서 전문 인력의 협력 구조 구축과 장기적 방향에서 통합 돌봄 케어 시스템 구축에 있어 문제점을 짚어보고 현실적인 방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김동호 위원장
김동호 위원장

 

"통합돌봄, 장애인돌봄 지원방안"(제18조-일상생활 돌봄지원)

김동호(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위원장)

지난 21대 국회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추진됐었다. 당시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 등 4명의 국회의원이 제정안을 발의했고,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여 발의된 제정안들을 병합한 대안까지 마련되었었다. 그러나 결국 법 제정은 좌초되고 말았다. 법 제정에 끝까지 쟁점이 되고 걸림돌이었던 것은 '탈시설'. 이 용어를 법에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장애인단체 간 그리고 그 입장들을 대변한 의원들 간 첨예한 대립이 벌어졌고, 끝내 그 고비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 

탈시설을 둘러 싼 입장들이 충돌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맞선 주장들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가족과 같이 또는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한다. 그러나 우리 지역사회 환경이 그러하기 때문에 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면 위험하다는 주장과 한편으론 그러하기 때문에 더욱 장애인을 탈시설에 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입장이 갈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대립과 충돌은 단순하게는 우리 지역사회를 장애인에게 친화적인, 그리고 적절한 지원체계가 잘 작동되는 사회로 만들어 가면 해결될 일이다.  

약칭 '통합돌봄지원법'은 이 노정에 중요한 출발점이자 토대가 될 것이다. 이 법을 통해 장애인은 각자의 특성과 욕구에 기반한 보건의료, 건강관리, 장기요양, 일상생활돌봄, 주거 등의 개별지원서비스를 통합지원 생태계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지원 생태계가 잘 작동된다면 시설과 지역사회의 벽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일단 큰 기대를 갖게 되나, 과연 통합돌봄지원법이 장애인에게 진정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통합돌봄지원법은 날로 급증하는 노인을 위한 보다 강화된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구상되었다.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요양제도로 감당해 낼 수 없는 폭발적인 돌봄욕구를 지역사회 자원과 지원체계로 대응하려는 취지에서 준비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은 다분히 노인 중심적이다. 법 일부분에 장애와 장애인이 언급되고 있으나, 법은 노인의 보건의료와 돌봄 욕구에 초점을 두고, 노인요양제도의 기능을 전제로 이를 보완하는 재가노인을 위한 지역사회 내 통합적 지원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6년 통합돌봄 시행을 앞두고 현재 진행 중인 통합돌봄 시범사업은 그러한 방향에 맞추어 실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시범사업에서 장애인은 제외되고 있다.  

2023년 등록장애인중 절반 이상(53.9%, 약 143만명)이 고령장애인이고 이 비중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65세 이전의 장애인이라도 장애로 인한 돌봄의 욕구를 가지고 있고 또한 조기노령화를 겪는다. 한편, 노인 인구가 현재 1,000만명에 근접하고 있는데, 그 중 장애인 등록을 한 노인은 14%지만, 장애인등록을 하지 않은 대부분의 노인도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고, 이는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 노인과 장애인은 공통의 욕구를 가진 집단이다. 따라서 돌봄 통합지원체계가 두 집단을 포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장애인은 이에 더해서 사회적 활동과 참여의 욕구가 강하다. 장애인은 '돌봄'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단순 돌봄 이상의 복합적인 지원을 원한다. 이러한 이유로 장애인들은 '돌봄'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노인요양제도 도입시 장애인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이때 장애인단체들은 노인요양제도가 장애인들의 확장된 욕구에 대응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장애인 포함을 반대했고, 그에 따라 '장애인활동지원제도'라는 별도의 제도가 도입되었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돌봄 성격의 서비스에 더해서 직업활동, 사회참여 활동까지 지원할 수 있다. 장애인의 이러한 확장된 욕구까지 돌봄통합지원법이 잘 담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돌봄지원제도가 어떻게 장애인을 포괄할지 대략의 방향조차 제시된 바가 없다. 불과 1년 남짓 제도 시행을 앞두고도 시범사업에 핵심대상인 장애인을 포함조차 못하고 있다. 시범사업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제도 시행 전에 장애인에 대한 통합 지원방안은 제시되기 어려울 것이고, 결국 제도 시행 초기에 장애인은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장애인을 시범사업 대상에서 제외한 사정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돌봄이 필요한 65세 미만 장애인의 제도 편입에 따른 재정 부담을 걱정해서일까? 장애인의 단순돌봄 이상의 다양한 욕구를 어떻게 담아낼지 고심해서 일까? '장애인의 노인화'와 '노인의 장애인화'에 따른 복잡성을 감안하여 모든 대상을 아우르는 통합돌봄 체계가 그려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와 검토가 없는 것 같다.  

통합돌봄지원제도가 분절적 서비스를 극복하고 통합적인 서비스 제공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법은 대상자의 일상생활돌봄을 규정(제18조)하고 있는데, 현재 시행되고 있는 노인요양제도와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런데 두 제도 간의 중복성과 비형평성, 부정합성이 문제가 된다. 성격과 내용, 방식을 달리하는 두 제도는 대상과 이용자가 중첩적이면서 배타적이다. 노인과 장애인들은 두 제도를 중복해서 이용할 수 없고, 그렇다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없다. 장애인은 65세 이전까지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하다가, 65세부터는 노인요양제도를 우선 이용하고 모자란 시간을 활동지원으로 채울 수 있다. 65세 이상 노인 중 새롭게 장애인 등록을 하는 경우 활동지원제도는 이용할 수 없고 오직 노인요양만 이용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상 난맥상을 넘어서야 통합돌봄이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장애인이 된 노인과 노인이 된 장애인을 아우를 수 있는 두 제도의 정비 또는 단일 제도로의 통합이 필요하다. 기존의 장애인과 노인의 욕구 판정체계의 정합성을 높이는 전면적인 쇄신이 있어야 한다. 통합돌봄이 이를 이끌어 내야 한다. 

지난 2022년 9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Committee of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는 한국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상황을 평가하며 다음과 같은 권고를 한 바 있다. 

- 인권기반의 장애모델을 원칙으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한국의 장애관련 법률과 정책이 장애인의 특성과 욕구를 잘 반영하며, 이를 기초로 한 장애판정제도를 설정할 것. 

- 장애인의 자립생활 및 완전한 통합 증진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 

- 장애인의 삶의 형태에 대한 선택권과 자기결정권, 특정 형태의 삶의 방식에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분리되지 않는 지역사회 통합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것.  

- 여전히 거주시설 환경에 머무르고 있는 성인 및 아동 장애인의 탈시설화 추진을 위한  전략 이행을 강화하고,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과 참여를 도모하는 지역사회기반 서비스의 가용성을 높일 것.

통합돌봄지원법은 장애인과 노인 등이 자신이 살고자 하는 곳에서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에 목적(제1조)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대상자의 특성과 욕구에 기반한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자기결정권을 보장(제4조)하는 방식으로 개별지원계획을 수립(제13조)하여 지역사회중심의 통합지원생태계를 구축(제4조)하고자 한다. 

UN CRPD의 한국에 대한 권고와 돌봄통합지원법의 지향은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법은 UN의 권고를 실현하는 강력한 장치가 될 수 있다. 장애인들이 법에 기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따라서 돌봄통합지원법 추진에 있어 장애인은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돌봄통합지원을 위한 지역사회 생태계가 잘 조성된다면, 장애인의 탈시설을 둘러 싼 비생산적인 논쟁은 불필요해 질 것이다.   

김동호(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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