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윤병훈

상처(傷處)는 있어야 할 것이 없고 패어 있는 자리입니다. 도움 없이는 걷지도, 먹지도 못하는 이들은 행복과 자유가 있어야 할 자리가 움푹 패인, 상처들로 이어져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는 것’이 아니라 목숨이 붙어 있어서 ‘연명’만 하고 있을 뿐인 이들은 중심 바깥쪽에 존재하는, 그늘 속 사람으로 타자(他者)화 됩니다.

유례없는 급격한 고령화로 여러 낯선 현상들이 우리 삶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더 행복해질 기회보다 더 불행해질 위험이 홍수처럼 앞뒤로 쏟아져 갈피를 잡기 어렵게 합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다른 사람이 아프거나 말거나, 굶주리거나 말거나, 절망적이거나 말거나 관심 없이 내버려 둘 때 결국 위험해지는 것은 우리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돌봄’을 둘러싸고 있는 얼마나 많은 심각한 문제를 은폐시키고 있는지는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 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요양시설’에서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일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연장자를 돌보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줄입니다. 구성원의 존엄이 지켜지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위법한 행동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부담을 누군가가 부당하게 더 많이 떠맡게 되었을 때도 사회는 이를 보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동안 ‘돌봄’에 깊이 은폐되었던 진실들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이어져 왔습니다. 지난 3월 제정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지역돌봄법)」은 그 노력의 과실입니다. 지역돌봄법은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상처 입고 타자화의 폭력에 노출된 이들을 정부와 지자체가 능동적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체계를 갖추도록 강제하는 법입니다.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제1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제1조

‘지역돌봄법’ 29개 조항 하나하나는 마치 그 안에 다른 조항들을 접고 있는 주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주름만큼의 감추어진 갈등이 존재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접고 있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조항 하나를 이해하고, 규정해서 갈등의 소지를 줄이려면 그 안에 접혀 있는 다른 조항의 개념들을 펼쳐내야 합니다. 앞으로 정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각 유관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과 합의를 거쳐 세부 사항들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돌봄 수행단체나 기업, 정부기관과 지자체간의 갈등을 줄이고 지역생태계를 살릴 수 있는 지역공공돌봄의 그물망 구축을 위한 담론과 ‘지역돌봄지원법’ 하위 법령의 실천적 대안 마련을 위해 '이로운넷'은 현장 활동가, 학계 전문가, 돌봄 관련 기관과 시민단체의 연재 기고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돌봄으로 지역소멸과 인구절벽을 막자>라는 기획특집을 시작했습니다.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가 대한재택의료학회 춘계 심포지엄에서 주제강연을 하고 있다.(사진=데일리메디 제공)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가 대한재택의료학회 춘계 심포지엄에서 주제강연을 하고 있다.(사진=데일리메디 제공)

이 기획은 '지역돌봄법' 조항 하나하나를 해체하고 분석하는 것을 기반으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않은것을 구분하고, 빠트린 것과 없어져야할 것들 등  총 40여 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기획과 필자 섭외 등 가장 기본적인 작업에는 ‘돌봄’ 분야의 가장 열정적 시민활동가인 임종한 인하대 교수(한국커뮤니티케어보건의료협의회 상임대표)가 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의 넓고 깊은 지식과 네트워크망이 없었으면 이번 기획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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