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남대문시장 착한 건물주 간담회에 참여해 착한 건물주 4명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사진제공=중기부

“요즘 같은 때는 가게 문을 열어도 손님이 없어 손해를 보는 상황이에요. 다른 곳은 임대료를 올리는 판에 우리 건물주는 임대료를 낮춰주고, 건물에 문제는 없는지 들어주네요.”

서울 송파구 가락동 한 상가에서 식품점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건물주 B씨로부터 “경영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월 임대료 약 100만원을 장기간 유예 납부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영세 상인들은 장사가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 평소 임대료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면서 힘든 상황 속 임차인을 배려해준 건물주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시흥에 위치한 육류 프랜차이즈 보리네생고기간 목감점도 임대인 덕분에 걱정을 덜었다. 해당 건물주가 2~3월 임대료까지 받지 않기로 하면서다. 손재호 보리네 협동조합 이사장은 “피해 경감이 크고 작음을 떠나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덕분에 큰 힘을 얻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침체하면서 건물주들이 어려운 상황에 빠진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보증금 동결, 임대료 인하, 납부기한 연장 등 이른바 ‘착한 임대료 운동’에 나섰다. 지난 12일 전북 전주에서 시작된 임대료 인하 움직임은 대기업?은행권이 동참하고, 이에 화답한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지원 정책을 내놓으면서 따뜻한 물결을 일으키는 중이다

전주에서 시작된 임대료 인하 운동, 전국으로 확산

전북 전주 전통시장, 구도심 등 곳곳의 상권 건물주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가 임대료의 자발적인 인하에 참여하면서 전국 확산됐다./사진제공=전주시

운동의 시작은 지난 12일 전주 한옥마을의 건물주 14명이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는 시점을 고려해 최소 3개월 동안 임대료를 10% 이상 인하한다는 내용의 ‘상생선언문’을 발표하면서다. 이후 전북 모래내시장, 전북대 인근 상점가, 풍남문 상점가 등 주요 상권 건물주들이 5~20% 임대료 인하에 동참했다. 

전주의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건물주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서울 남대문시장 상가 건물주들은 입주 상인들을 돕기 위해 3개월간 임대료를 20% 낮춰주기로 했고, 충북 진천 향교도 소유 상가 건물 3곳의 세입자들에게 임대료를 반값으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진자 규모가 가장 큰 대구 서문시장의 한 건물주도 세입자들에게 한달 임대료 면제 소식을 문자로 전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1913송정역시장 건물주들도 전통시장 소상인을 위해 임대료 인하에 나섰다. 건물주 김영자 씨는 “임대료 인하로 상인들이 부담을 덜었으면 하는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 어려움을 함께 이겨냈으면 한다”고 동참 계기를 밝혔다. 감면 혜택을 받은 범웅 1913송정역 상인회장은 “많은 건물주들이 ‘세 받기도 미안하다’며 흔쾌히 응해주셨다”면서 “전통시장 상인들의 고충이 너무 큰데, 상생을 통해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 마포구 홍대 지역 건물주들도 자발적 임대료 인하에 앞장섰다. 이창송 홍대건물주협회장은 본인 소유 건물 9개 층 전체의 2월 임대료를 받지 않기로 합의하고, 2237명 협회 회원들에게 자율적 임대료 인하를 제안했다. 이 협회장은 “안 그래도 경기가 하락기에 접어들어 힘든 상인들이 코로나19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지켜볼 수만은 없어 도움을 보태려 한다”고 밝혔다. 해당 건물에서 VR스퀘어 홍대점을 운영하는 이영훈 점장은 “매장을 계속 운영하느냐 폐업하느냐 갈림길에 있었는데, 건물주의 따뜻한 마음 덕에 걱정을 덜게 돼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소재 한 건물의 주인 A씨도 최근 자신의 건물에 입점해 있는 점포들의 임대료를 한시적으로 월 100만 원씩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김포 한강신도시 내 A씨가 소유한 건물에는 점포 4곳이 입주해 있다. A씨는 최근 코로나19로 해당 점포들의 매출이 줄어들자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주시에서도 ‘착한 건물주’들의 행렬이 뒤따랐다. 광탄경매시장 상인회장 B씨는 솔선수범해 3개월간 임대료를 10% 인하하기로 했으며, 문산자유시장의 한 약국 건물 임대인도 동참하기로 했다. 파주시는 임대료 인하 운동이 곳곳에 확산되도록 캠페인을 벌이며 우수 사례를 전파하고 있다. 

기업 소유 건물 임대료 할인, 동참 건물주엔 금리 혜택

금융권 노사가 코로나19 피해기업 지원을 위해 28일 손을 맞잡았다. 부동산 임차료를 한시적으로 인하하고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들에게 여신 분할상환 유예, 신규 여신 공급 등을 추진한다./사진제공=은행연합회

은행권?대기업에서도 ‘착한 임대료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잇따라 밝혔다. 각 기업이 소유한 전국 건물의 임대료를 할인해주고, 임대료 할인에 동참한 건물주에 대해 대출 금리?수수료를 우대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은행은 3월부터 3개월 동안 보유 건물 임대료를 월 100만원 한도에서 30% 인하한다. 이를 통해 총 55개사가 혜택을 받아 3개월간 약 5000만원의 부담을 덜게 된다. 신한은행도 소유 건물에 입점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3개월간 월 임차료를 100만원 한도에서 30% 인하하고, 우리은행은 운동에 동참한 건물주에 대해 금리 혜택 등을 주기로 했다.

KT는 자사 건물에 세든 소상공인의 3~5월 임대료를 대구·경북 지역은 50%, 이외 지역은 20%(최고 월 300만원)씩 깎아주기로 했다. KT 건물과 계약된 임차 계약 6330건 중 3596건이 혜택을 받는다. 하나금융도 그룹 관계사가 소유한 부동산에 입주한 소상공인에게 3개월간 임대료 30%를 줄여주고, 대구·경북에서는 임대료 전액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기재부 ‘임대료 지원 3종 세트’ 발표…103개 공공기관 동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8일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와 조기극복을 위한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사진제공=기획재정부

민간 중심으로 ‘임대료 인하 운동’이 전국 확산되면서 정부와 공공기관, 지자체에서도 적극 화답하고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28일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와 조기극복을 위한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통해 올해 상반기 적용할 ‘소상공인 임대료 지원 3종 세트’를 발표했다. 

△민간 건물주 임대료 인하분의 50%를 소득세?법인세에서 깎아주고 △국가·지자체 소유 재산의 임대료를 최대 3분의 1로 내리고 △코레일·LH·인천공항·도로공사 등 103개 공공기관 소유재산의 임대료를 6개월간 최대 35% 인하하는 등 내용이 주요 골자다. 조세특례제한법 변경이 필요한 세액 공제 부분은 내달 중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도 이날 시유재산으로 보유한 지하도·월드컵경기장·고척돔 등의 상가와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이 보유한 지하철·임대아파트 상가 등에 대해 임대료를 2~7월까지 6개월 간 50% 인하한다고 밝혔다. 임대료 납부기한을 8월까지 연장하며, 공용 관리비(청소·경비원 인건비)도 전액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서울산업진흥원(SBA)도 중소기업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위해 SBA 소유 및 관리하고 있는 건물의 임대료 20%를 오는 3월부터 한시적으로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임대로 인하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지만, 따뜻한 움직임이 모여 결국 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은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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