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기의 세상읽기] 17. 코로나19,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백선기의 세상읽기] 17. 코로나19,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이로운넷= 백선기 책임 에디터
  • 승인 2020.03.04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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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만 일어나는 불행은 없다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영화 '감기'의 한 장면. 2013년 제작된 이 영화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역주행하며 넷플릭스에서 요즘 뜨는 콘텐츠 순위 상위에 올라있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영화 '감기'소개 영상 캡처

 

코로나19가 나와 내 주변의 일상을 이렇게 헤집고 다니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다. 전염병과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책과 영화가 역주행을 하는 걸 보면 온 국민의 관심사가 코로나19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근 한 달이 지나면서 공포감뿐 아니라 피로감도 쌓여만 간다.  

요즘 전화받기가 무섭다. 예정됐던 강연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를 통보하는 연락 때문이다. 강연과 강의가 주 수입원인 남편의 전 달 수입은 거의 0에 가깝다. 

더 늦기전에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며 2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식당을 차린 동생은 요즘 가게 문을 닫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주 고객이었던 근처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원 등이 문을 닫거나 개학이 연기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주 중에는 국내에서 일하고 격주로 주말마다 중국 상하이의 치과병원에서 진료를 해온 친구는 중국 측 병원이 폐쇄되는 바람에 수입이 크게 줄었다. 3월 중순 딸의 결혼식을 앞둔 친구는 애를 태우다 결국 지난달 무기한 연기 통보를 알려왔다. 즐겨 찾던 동네 도서관 역시 지난달 22일부터 무기한 휴관 상태다.

이 달 군 복무를 마치는 아들과 준비해온 우리 가족 여행도 최근 포기했다. 여기저기서 한국에 대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고 어렵게 입국을 하더라도 여행지에서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코스트코 매장. 쌀,라면 등 일부 생필품목에 대해 구매 제한 표지가 붙어있다.

 

이런 와중에 사재기에 대한 걱정도 가세했다. 창고형 회원제 마트인 코스트코의 쌀, 라면, 햇반 판매대 앞에는 구매 제한 숫자가 적힌 팻말이 등장했다. 마스크 판매대는 종적을 감췄다. 온라인 쇼핑몰도 매한가지였다. 이마트몰의 경우 지난 주말 라면과 몇 가지 생필품목의 경우 일시 품절이란 딱지가 줄줄이 나붙었다.

이처럼 예상치 못했던 재해나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난 그 해답을 故 박완서 작가의 저서 ‘한 말씀만 하소서’에 얽힌 일화에서 찾았다. 그는 1988년, 넉 달 상간으로 연이어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책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작가가 써 내려간 상처의 기록들로 슬픔과 절망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된 책이다. 

당시 작가처럼 맘고생이 많았던 한 지인은 어느 날 박완서 작가의 사인회에서 책을 내밀며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힘든 저에게 한 말씀만 해주세요.”

작가의 답변은 이랬다고 한다.

“남에게 일어난 불행이 왜 당신에겐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그 한마디에 그는 정신이 버쩍 들었다고 했다. 그렇다. 그저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전염병 이야기가 초 연결사회에서 다양한 얼굴로 나와 주변의 일로 다가왔다. 나의 일이 되고 보니 그제야 내가 누군가를 쉽게 배척했거나 남의 고통을 무관심하게 넘겨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남에게만 일어나는 불행은 없다. 내게도 누군가의 절실한 도움이나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우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길이 보인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내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조금은 양보해야 하거나 조심해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결책은 서로를 향한 반목과 헐뜯음이 아니라 협력과 긍정의 힘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일이다. 

막막하지만 글로 먹고사는 우리 부부 입장은 그나마 낫다는 자기 위안으로 지금의 힘든 상황을 버텨간다. 벌이가 없어도 월급을 줘야 하는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사가 공쳐도 꼬박꼬박 내야 하는 임대료도 없으니 그나마 내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앞이 캄캄하고 점점 더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을 때마다 되뇌는 구절이 있다. 파울루 코엘류의 저서 ‘연금술사’에 나오는 말이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그렇다. 감염 학회 전문가들은 앞으로 2주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는 잘 이겨낼 것이고 언제일지 모르나 동이 틀 것이다. 동이 트고 나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전염병은 언제라도 다시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 한 번은 실수이지만 반복하면 이는 곧 실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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