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조성은 객원칼럼니스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던졌던 질문이다. 이처럼 오늘날 ESG 경영이 기업에게 피할 수 없는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 문제로 던져지고 있다.
ESG 경영은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환경 파괴, 사회적 불평등과 인권 침해, 비민주적 지배구조 없는 이윤 창출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ESG가 기업 경쟁력을 방해하는 요소'라는 패러다임에 갇힌 정치·경제·사회 문화 속에서 'ESG 자본주의'로 전환은 참 어려운 과제다.
그 동안 자본주의 성장 모델은 ESG는 불청객에 불과한 '이윤 극대화'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성장모델이 초래한 극심한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 사회적 불평등, 지배구조의 문제 등이 이제는 역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세계적인 투자 흐름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ESG 투자'가 기업에 ESG경영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ESG 투자는 단순히 재무적 성과만이 아니라, ESG 관련 비재무적 성과를 고려해투자 결정한다. EU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ESG 투자를 촉진하는 다양한 정책이 도입되고, 블랙록 등 세계적 대형 자산 운용사들의 ESG 투자 자산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ESG는 자본주의 뉴노멀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대한 발 빠른 대응 여부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사회, ESG 자본주의로 전환은 기업 노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및 정치권의 발 빠른 대응, 그리고 소비자의 ESG 소비 확산 등 사회 전반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윤 극대화'만을 자본주의 성장의 패라다임으로 고수해 왔던 우리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 등 사회 전반의 인식과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 ESG가 현실적인 생존 문제로 다가온 기업들은 탄소배출 및 플라스틱배출 감축을 위한 기술개발, 사회적 책임 강화, 투명한 지배구조, ESG 경영전략 수립 등 대응이 빨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MZ세대에서 ESG소비성향이 높아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의하면, 'MZ세 10명 중 6명인 64.5% 이상은 ESG를 실천하는 착한 기업의 제품이 더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에 비해 ESG에 대한 정부 및 정치권 대응이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SG의 한 축인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기업들은 100% 재생에너지 전기만 써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RE100'에 대한 선진국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을 실천하기 위해 거래 기업이나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면서 중소기업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국내 3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0곳 중 3곳이 '글로벌 거래 기업으로부터 제품을 생산할 때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10%에도 못 미치는 세계 꼴찌 수준이다. 정부 및 정치권의 RE100 대응 미흡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한국 버릴 것 같다"라고 개탄하는 대학교수 인터뷰 기사처럼, 국내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적절히 공급받지 못한다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세계는 ESG가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자본주의 뉴노멀'이 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ESG 도래에 대한 신속한 대응은 기업의 생존, 결국 우리 사회의 생존이 달려있다. 기업 대응과 국민 수준에도 따라 오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 뉴노멀 ESG에 맞는 선진 정부와 정치권이 될 때다.

조성은 칼럼니스트=김대중재단 여성본부장 / 前㈜코콤포터노벨리 커뮤니케이션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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