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여자들의 글로벌이야기] 2. 어느 부자가 세운 식물학 연구소
[과학하는 여자들의 글로벌이야기] 2. 어느 부자가 세운 식물학 연구소
  • 영국(노리치)=안희경 식물분자생물학 박사
  • 승인 2019.09.30 0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인스버리연구소 세운 개츠비 재단...식물학 분야의 '단비' 역할

1869년, 런던 코벤트가든 드루어리 레인(Drury lane) 173번지에 식료품점이 열렸다. 식료품점 주인은 존 제임스 세인스버리와 그의 배우자 매리 앤이었다. 신선한 우유와 버터, 그리고 계란만 파는 세인스버리 식료품점은 순식간에 인기를 얻었다. 영국 3대 대형마트 중 하나인 세인스버리 마트(Sainsbury’s)는 그렇게 시작됐다.

1903년, 첫 가게를 열고 30여 년 만에 세인스버리 식료품점은 분점이 100개를 돌파하며 세인스버리가(家)는 빠르게 부를 축적했다. 세인스버리가 사람들은 3대째부터 자선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존 제임스 세인스버리의 장손 로버트 세인스버리와 배우자 리사는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로버트 세인스버리의 아들 데이비드 세인스버리는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선활동을 당연하게 여기며 유년기를 보냈다.

자선활동을 시작한 이래, 세인스버리가 사람들은 각자 재단을 만들어 관리해 왔다. 데이비드 세인스버리는 1967년, 만 27세가 되던 해에 현금 5파운드와 세인스버리 마트 주식 110주를 가지고 개츠비자선재단(Gatsby Charitable Foundation)을 세웠다. 불가능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이 재단 이름이 됐다. 1973년, 세인스버리 마트가 주식에 상장되며 세인스버리 마트 주식의 45%를 가지고 있던 데이비드 세인스버리는 하루아침에 영국 최고의 부자가 됐다. 개츠비 재단의 보유자금도 마찬가지로 치솟았다. 이 자금으로 개츠비 재단은 과학기술교육 개선, 신경과학 연구, 그리고 식물학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후원했다. 대다수 분야들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분야였고,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기 힘든 분야였다.

식물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분야다. 2010/2011년 회계연도에 영국 내에서 과학 분야 연구에 지불된 연구비는 총 33억 파운드(한화 4조8000억 원)였다. 그중 식물과학에 지불된 연구비는 1억2500만 파운드였다. 개츠비 재단은 그중 20%에 가까운 2300만 파운드(한화 340억 원)를 식물학 연구에 지원했다. 영국 생명공학연구위원회(BBSRC)를 제외하면 자금 출처가 거의 전무하던 식물학 분야에 개츠비 재단의 지원금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개츠비 재단은 이 자금을 대학이나 기존 연구소에 소속된 과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연구소를 새로 지었다. 1988년에는 식물과 식물 병을 연구하는 세인스버리연구소(The Sainsbury Laboratory; TSL)가, 2010년에는 식물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 두 번째 세인스버리연구소(Sainsbury Laboratory of Cambridge University; SLCU)가 세워졌다. 프로젝트가 아니라 연구하는 사람에게 지원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도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식물학만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었다. 1995년, 금호아시아나 고(故) 박성용 명예회장은 금호석유화학그룹 산하에 금호생명환경과학연구소를 개소했다. 하지만 2005년, 박성용 명예회장의 별세와 함께 연구소의 미래는 급격히 어두워졌다. 같은 해 12월, 금호석유화학은 연구소 건물 건축과 부대시설 및 연구장비 제공을, 전남대는 이름이 바뀐 금호생명과학연구소의 운영 전체를 책임지는 공동계약을 맺었다. 결국 2006년, 금호생명과학연구소는 전남대로 이관됐다. 소속 연구원들은 연구소를 떠나 다른 연구소나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금호생명과학연구소’라는 이름은 전남대 분자생명공학 전공 교수들의 소속으로 가끔 논문에 등장할 뿐이다.

데이비드 세인스버리는 자신이 죽고 나면 재단을 정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생전에 자유롭게 원하는 분야에 지원하던 일이 전통이 되어 버리면, 그 재단은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경직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데이비드 세인스버리가 세상을 떠나면 개츠비 재단은 데이비드 세인스버리의 재단으로 역사 속에 남게 될 것이다. 세인스버리 연구소는 그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다. 개츠비 재단의 자문위원회의 관리를 받던 과거와 달리, 몇 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연구소장을 뽑으며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개츠비 재단은 사라질지 몰라도, 그 정신은 세인스버리연구소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김욱동 (민음사, 2003)

 

참고자료
1) 세인스버리 마트의 역사. Sainsbury’s Archive. https://www.sainsburyarchive.org.uk/timeline/150
2) Georgina Ferry. <<A better world is possible – The Gatsby Charitable Foundation and social progress>> (2017) Profile Books 
3) UK Plant Sciences Foundation. <UK Plant Science: Current status and future challenges> (2014)
https://www.rsb.org.uk/images/pdf/UK_Plant_Science-Current_status_and_future_challenges.pdf 
4) 이은정. ‘식물과학계의 노벨상’ 금호국제과학상 역사 속으로…’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월간 과학과 기술 2007년 6월호
http://ebook.kofst.or.kr/book/200706/#page=85 
http://m.gjdream.com/news_view.html?uid=388625&ref_url=https%3A%2F%2Fwww.google.com%2F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