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신산업 주체이자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과학기술인 협동조합이 주목 받고 있다. 과학기술인 협동조합은 이공계 인력이 주로 조합원으로 참여해 과학기술 관련 서비스 등의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이다. 정부가 2013년부터 본격적인 육성에 나서면서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협동조합만 350개에 달한다. 최근에는 기존 사회적경제기업에 과학기술의 효율성·경제성을 더해 더 큰 시너지를 내려는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2018 과학기술인 협동조합 우수사례집>을 통해 과학기술인 협동조합 지원센터가 주목한 과학기술인 협동조합 10곳을 연속 소개한다. 

지식을 창조하는 과학자들에게 정년은 없다. 법적인 정년을 맞았다고 해서 과학자들의 창조적인 사고가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설립인가 1호 협동조합인 대덕과학기술 사회적협동조합은 은퇴 과학자들의 식지 않는 연구 열정과 사명감이 중소기업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충실히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워서 터득한 지식을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과학자로서의 사명감이 현역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의 동력원이다.

과학자에게 은퇴는 없다! 고경력 과학자들의 새로운 도전

은퇴 과학자들이 보유한 지식과 지혜를 사장시키는 것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엄청난 자원 낭비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고경력 과학자들의 활용 방안을 고심 중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14년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설립인가 1호 협동조합으로 출범한 대덕과학기술 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천병선)은 고경력 은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힌다. 

?대덕연구단지 개소 40주년을 맞아 2013년 11월 28일에 개최한 발기인 대회를 출발점으로 하는 대덕과학기술사회적협동조합은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출연연구소 출신 은퇴 과학자들과 행정직원,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된 비영리 법인이다. 

당시는 대덕연구단지에서 1세대 과학자들이 대거 은퇴하던 시점이었다. 충남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직을 은퇴한 천병선 이사장은 은퇴 과학자들의 모임을 통해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지혜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온 우리에게는 과학자로서의 자긍심과 사명감이 있습니다. 은퇴를 하고나서도 과학자로서 떳떳하게 살고 싶은 욕심, 기술로 국가에 계속 기여하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비영리 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은퇴 과학자들이 천 이사장의 취지에 공감했다. 설립 당시 발기인으로 대덕과우회 한기익 회장 등을 비롯한 23명으로 출범하여 현재는 조합원이 133명(개인 132, 법인 1)으로 늘었다. 

?중소기업 기술 애로 해결사로 자리매김 

?평생 연구한 경험과 지식자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던 조합은 중소기업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자금과 인력 부족으로 기술개발에 애로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돕겠다는 생각에서 천 이사장은 직접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조합의 사업을 설명했다. 

"사실 현역에 있을 때는 중소기업과 거의 접촉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중소기업 현장에 가보니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는 높지만, 기초적인 이론지식이 부족해 애로를 겪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적인 지식과 실질적인 실험 데이터를 보여주었더니 자신감을 가지더군요.” 

물리, 화학, 생명, 공학, 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과학자들은 중소기업의 현장을 방문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처방을 제시해준다. 물론 직접 기술개발에도 참여한다. 

천병선 대덕과학기술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그 첫 사례가 2014년 기술자문을 시작한 ㈜에스코알티에스의 사례다. 신소재 공학 전문가인 천 이사장을 비롯해 국방과학연구소와 에너지기술연구소 출신 연구자가 팀을 이루어 풍력발전기 설계에 필요한 재료와 가공기술을 지도한 끝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스크루 타입의 풍력발전기 블레이드를 개발해 인도에 수출하는 성과를 일구어 냈다. 충북 제천에 소재한 ㈜아세아테크도 조합의 도움으로 2015년에 기차 바퀴 재생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5만km가 수명인 기차 바퀴에 이 기술을 적용하면 15만km를 더 달릴 수 있게 된다. 기술의 핵심인 특수 열처리와 용접 기술이다. 이 분야 전문가들의 기술자문을 통해 기술 개발에 성공한 아세아테크는 최근 인도네시아 기업과의 계약이 가시화되면서 수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기술 지도를 하다가 중소기업의 연구소장으로 합류한 경우도 있다. 중형 오존기를 국산화하기 위해 조합으로부터 기술지도를 받다가 조합원을 연구소장으로 영입한 오존텍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급 기술인력을 보유하게 된 오존텍은 중형 오존기에 이어 대형 오존기 국산화에도 나섰다. 조합은 현재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으로 구성된 가족기업(필요할 때면 언제든 상시적으로 조합으로부터 기술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을 말함) 22개사를 상시 기술지도하고 있다. 일정한 회비를 받고 기술지도를 제공하는 가족 기업 외에도 조합은 기업이 필요할 때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를 위해 대전 지역 내 각 대학 및 유관기관, 대전테크노파크 등 14개 기관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산학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조합으로부터 기술 지도를 받은 기업들에게 특별히 보상을 받지는 않는다. 자신들이 혜택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조합을 후원하도록 하고 있다. 비영리법인으로서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조합의 기본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다.

?영세 뿌리기업과 정부출연연구소 연결하는 다리 될 것

?중소기업 기술지원과 함께 과학 꿈나무 양성에도 그간 큰 역할을 했다. 조합은 설립 초기부터 대전 및 충남지역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 꿈나무 양성사업에 나섰다. 과학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조합은 대전교육청과 함께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과학발전사, 세계 과학사 등 과학 심화교육을 진행했다. 단순한 이론교육에 그치지 않고 대전중앙과학관 전시물 기자재를 활용한 생동감 넘치는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

?조합은 내년에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전시의 지원을 받아 대전 지역 뿌리기업과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지식 중개 컨설팅을 시작한다. 일종의 뿌리산업 제조공정의 기술혁신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뿌리산업활성화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대전 수요연계형 융복합뿌리산업 제조공정 기술혁신 및 성장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에서 조합은 뿌리기업과 정부출연연구소 및 기업 연구소를 잇는 연결고리를 맡게 된다. 대덕연구단지에 소재한 19개 국가출연 연구원과 10개의 기업연구소 등 29개 기관이 그 대상이다. 이 사업에 거는 천 이사장의 기대는 크다.

“그동안 대전시 소재 뿌리기업과 정부출연연구소 사이에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출연연구소의 문턱이 높을 수밖에 없죠. 특히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출연연구소에서 나오는 외주가공 물량이 다른 지역 기업으로 흘러나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외주용역 수요를 발굴하고, 그것을 대전지역의 영세한 뿌리기업들에게 연결시켜주고자 합니다. 당연히 기술지도와 정확한 납품은 우리가 책임을 질 겁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합은 우선 대전 지역 뿌리기업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그것을 정부출연연구소에 소개하고 홍보하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대전 중소기업의 성장을 돕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해 현 정부의 국정 제일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겠다는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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