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과학적 사회] 4. 니덤과 과학자의 책-생화학자라는 정체성으로부터
[김우재의 과학적 사회] 4. 니덤과 과학자의 책-생화학자라는 정체성으로부터
  • 이로운넷=김우재
  • 승인 2019.06.11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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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니덤의 정체성은 과학자 시절에 형성됐다. 그는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를 살았다. 그 덕에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서구사회에서 모멸을 당해야 했지만, 적어도 그가 보여준 사상적 궤적의 중심엔, 과학이 있다. 그에게 과학이란 생화학과 발생학의 통합 문제였고, 가장 환원주의적인 생물학과 전일론적인 생물학의 통합 문제는, 그의 사상적 궤적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이후 과학사가로 입지를 굳히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의 정체성이 과학자임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는 중국사 일반이나 철학적 사유를 향해 나가지 않고, 과학의 경계 안에서 다시 서양과 중국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생화학과 발생학을 하나로 묶어 이해하려 했듯이, 그는 서양과 중국을 과학이라는 틀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해보려 했다.

던 생화학 연구소에서 과학자의 경력을 시작하고 이후 중국으로 잠시 건너가 중국의 과학문명을 연구하기 전까지,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생화학과 발생학의 연결에 천착했다. 그가 왕립학회 회원이 되는 1941년은 연구자로서의 그의 경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그는 이미 다양한 주제들에 천착해 연구논문 이외에도 많은 책을 출판한 상태였다. 그는 과학과 종교, 그리고 현실 등에 관한 철학책을 꽤 많이 출판했지만, 1925년 가장 먼저 쓴 철학적 에세이의 제목은 <생화학의 철학적 기반>이다. 이 에세이의 첫 장은, 19세기에 이루어진 근대과학의 비약적 발전과, 이를 통해 과학이 어떻게 철학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과학자로 실험실에서 직접 연구를 진행해보지 못한 철학자가, 과학에 대한 철학적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완전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과학적 방법론의 철학적 의미를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상가의 배경이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니덤은 이미 과학자가 철학자가 될 때, 가장 훌륭한 과학철학이 탄생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었다.

생화학과 형태발생, 진정한 과학자의 책

왕립과학회원이 된 다음해인 1942년, 그는 <생화학과 형태발생>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이후의 책들이 대부분 역사과 중국 그리고 과학사로 점철되어가기 때문에, 전쟁과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 과학사가로 정체성을 변경하는 니덤의 생애에서, 이 책은 생화학에 대한 그의 사상이 녹아 있는 거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생화학과 형태발생의 관계를 축으로, 생물학의 중요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니덤이 대답하려는 시도다. 그 중 하나는 생명의 비환원성(irreducibility)이다. 니덤이 살던 시대에는, 여전히 생기론자들이 존재했고, 생기론의 영향으로 생물학적 존재는 물리화학적 설명방식으로는 완전히 환원될 수 없다는 입장과 그 반대의 새로운 생물학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니덤은 철학의 환원가능성 논쟁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미 당시의 생물학은 다양한 수준에서의 조직화된 생물학적 존재들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당시에도 생화학, 세포학, 유전학, 발생학 등등은 생물학적 존재의 서로 다른 수준의 조직화된 영역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니덤은, 만약 서로 다른 영역의 방법이 교차적 설명이 가능해지는 단계가 오면, 당연히 그런 설명을 시도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니덤의 생각은 실험생물학자로 평생을 연구해온 철학자만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상식적인 대답이다. 바로 이런 이유가 강단 철학자들이 과학철학 연구를 할 때 놓치게 되는 실용적 지식인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형태와 물질(form and matter)이라는 서양사상의 오래된 난제다. 이 질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형태와 물질을 구분한 고대로부터 기원한 서양사상의 산물이며, 실제로 근대 생물학, 특히 발생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형태가 물질과는 독립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고대사상은, 수많은 생기론자들의 사상을 지원했다. 즉, 물리화학적 수준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명 고유의 생기가 발생과정에 관여한다는 초자연적 설명으로 발생학을 포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니덤은 물질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가 연구해온 화학자의 배경을 통해 주장한다. 화학식은 생기론자들의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고, 수소 분자조차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와 상호작용을 한다. 니덤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형태와 물질의 이분법이라는 오래된 서양사상에 도전하려 했다.

이 책은 단순한 사상서가 아니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모두 실제 발생학과 생화학이 다루는 방대한 주제들에 걸쳐 있다. 니덤은 형태발생과 생화학을 연결시키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연구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발생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니덤이 <화학적 발생학>을 저술했던 1931년 이래로 발생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제 호르몬이라 부르는 화학물질들이 발생의 순간순간을 조정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었다. 니덤은 바로 이 호르몬과 같은 화학적 유도체들이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방식을 연구함으로써, 생화학과 형태발생을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책은 교과서이자 사상서다. 또한 서양의 근대과학 역사에서, 종합가로서의 과학자들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책을 썼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다윈의 <종의 기원>은 모두 자신의 연구결과를 기술하면서,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진정한 과학교양서의 기원들이다. 니덤은 어쩌면 바로 그 전통의 마지막 르네상스맨이었는지 모른다.

조지프 니덤의 책 '생화학과 형태발생.' 생화학에 대한 그의 사상이 녹아 있는 거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니덤은 누구인가

송상용은 1995년 열린 니덤 추모강연회 발표의 제목을 송상용.<예수, 마륵스, 노자 (老子) 사이에서-니덤의 생애와 사상>이라고 정했다. 이 글을 통해 그는 니덤을 마치 철학과 역사학 그리고 종교사상 사이에서 갈등한 인물로만 규정하려 했다. 송상용의 추모글은, 니덤이 무려 20년이 넘게 천착하며 고민했고, 결국 그의 사상적 기원이 된 생화학과 발생학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니덤의 추모강연이 열린 학회가 한국과학사학회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니덤은 <중국의 문명과 과학>이라는 저작으로 알려졌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학자들 대부분은 역사학 배경을 지닌 과학사가들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니덤이 지닌 다양한 사상의 궤적이 모두 한국에 소개되길 바라는 건 무리다.

니덤은 한국 과학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의 연구방법론부터 연구의 방향까지, 한국 과학사학계의 초창기 선구자들은 대부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이건 니덤의 방법론을 따라 한국 전통에서 과학의 흔적을 찾으려 했던 한국과학사 분야 뿐만 아니라, 니덤의 방법론을 따르지 않고 과학사를 동양의 시각이 아니라 더 일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그들조차 니덤이 던진 “왜 과학은 중국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은 상태였고, 바로 이 질문은 마치 코끼리처럼 한국 과학사가들의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니덤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한 편으로는 과학사라는 분야의 정립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의 존재는 과학사에 국한되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과학자의 교양과학책은,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를 짜집기한 감성적인 에세이집 정도로 축소되어 버렸다. 니덤이 저술한 책들은, 니덤이 연구했던 주제들을 기반으로 쓰여졌으며, 바로 이런 기반에서 과학적 연구를 철학적으로 종합하려는 시도들이었다. 과학사가로 수입된 니덤이, 한국 과학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건 불행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여전히 번역된 과학교양서를 읽거나, 외국 과학자들의 발견을 짜깁기하는 국내 과학자들의 책에 만족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과학자가 쓸 수 있는 최선의 저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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