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연구소 메일 계정으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옆 연구실 책임연구원이 연구소 전체 메일 계정으로 보낸 알림 메일이었다. 방긋 웃는 한 갓난 아기의 사진과 함께 였다.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우리의 딸 앨리샤의 탄생을 알리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아기의 미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으나, 이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방금 본 기후 위기에 대한 기사가 눈앞에 겹쳐졌다.

나도 우리 앞에 다가온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비극을 멈추도록 노력해 볼 수 있는 시간이 20년이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를 배출해내면 2035년에는 지구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의 지구보다 2°C가 오른 환경이 된다. 탄소사용 관련 사이트에서 산업화 이후 인류가 배출해 낸 이산화탄소량을 볼 수 있다. 1조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 2°C 오른다는 것이 현재 예측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의 기온 상승이 2°C가 넘으면 지구시스템이 비가역적으로 변해서 이산화탄소의 양을 이후에 줄인다고 해도 지구 온도가 지속적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한다.

2°C 이상 기온 상승이 일어났을 때 기후의 변화로 인류가 맞이하게 될 피해의 크기는 예측이 어렵다. 산업화 이후 1°C 정도의 기온이 상승했다고 생각하는 현재에도 이미 우리가 예상치 못한 가뭄, 홍수, 강력한 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가 크게 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감당하지 못할 재앙을 예상할 뿐이다. '국내난민감시센터(IDMC)'와 '노르웨이 난민협의회(NRC)' 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한 해에만 거대 자연 재해로 생겨난 세계 난민의 숫자(4200만명)가 한국 인구에 근접했고, '국제이주기구(IOM)' 에서는 2050년에는 이 숫자가 2억 5천만 명에서 최대 10억 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류에게 더 이상 안심하고 살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다행히도, 세계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기후 위기 운동으로 인해 시민들의 인식이 많이 환기됐다.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래타 툰베리가 1인 시위로 시작해 전세계로 퍼져 나간 청소년들의 대규모 기후위기 시위,  9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행동 특별 정상회의에 맞춰 9월 20일부터 세계 160여 곳에서 이어진 기후 위기 운동 등이 꾸준히 이어졌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기후 위기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16살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작년 학교를 그만두고 환경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최근 뉴욕에서 진행된 유엔총회의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해 주목받았다. /사진=국제앰네스티 홈페이지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요구는 한결같다. 지구 온도 상승의 주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절감하기 위해 각국 정부에 보다 적극적인 조치와 정책을 요구한다. 이러한 운동의 배경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 저감이 논의되기 시작한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도,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늘어만 왔다는 데 있다. 심지어는 2016년 파리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195개국이 만장일치로 기온 상승의 폭을 1.5°C 이내로 막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 절감 협약을 맺은 이후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지 않았다.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데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각 국의 이산화탄소 발생 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이산화탄소 배출량의 72% 에 해당, 2013년 데이터)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과학 발전에 따라 친환경에너지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의 에너지 사용량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는 곧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양식의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속도가 더디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꾸준히 줄여 나가고 있는 유럽에서는 기후 위기에 대한 문제 의식이 뚜렷하고 이는 사람들의 행동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비행기 여행으로 1km를 가는 데에 기차 여행의 20배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웨덴을 시작으로 핀란드, 독인, 네덜란드 등에서는 "비행기 여행의 부끄러움(플뤼그스캄; flygskam)" 이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이는 실제로 비행기 이용객의 감소로 이어졌다. 온실가스를 많이 발생시키는 육고기의 소비를 줄이는 식습관 문화가 자리잡아감에 따라 채식(vegan) 식당과 메뉴를 찾기란 매우 쉬운 일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모든 분야의 과학자 사회, 연구소 환경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최근 네이처 지에 실린 "학회 참석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7가지 방법"이라는 글에서는 연구자들에게 불필요한 해외 학회 참석을 줄이거나 비슷한 날짜에 가까운 장소에서 열리는 학회를 차례로 참석할 것을 권고하고, 직접 비행기를 타고 학회 장소에 가는 대신 화상으로 발표를 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유럽, 미국의 각국 연구소들에서 에너지 절감을 하기 위한 기계 사용법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고 있고, 세미나 연사를 해외에서 초청하는 비율을 줄이고 화상 세미나를 늘리자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세계 곳곳의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기후 파업에 동참하며 비상행동 지지 성명도 진행 중이다. 자칫 연구 환경에 불편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지침들이 연구자들 사이에 논의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한국에서도 9월 20일부터 27일 사이 기후위기 비상행동 시위가 열렸다. 약 5000명의 시민들이 이 시위에 참여하여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렇지만 이 규모는 현재 몇 주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10만 규모의 시위에 비해서 턱없이 작다. 기후위기에 대한 기사들의 수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달간 기후위기 관련 뉴스는 1800여건, 검찰개혁 관련 뉴스는 4만5000 여건이다. 이는 한국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 의식이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준다. 이를 반영하듯 대통령은 온실 가스 절감 방안을 논의하는 국제 회의 자리에서 엉뚱하게도 미세먼지 문제를 이야기 했다.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유럽 국가들은 물론, 주변 국가인 일본, 중국보다도 높고, 다른 OECD  국가들이 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오는 동안 한국에서의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기후위기는 생존의 문제다. 이제 더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닌 눈 앞의 기후위기를 인지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 또한 20년 안에 헛수고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 삶의 터전이 온전하지 못한데, 다른 변화의 구호가 무슨 의미인가?

참고자료:
온실가스 절감과 미세먼지의 연관성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자세히 알고 싶으면 조천호 교수의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각 나라들의 인당 탄소 배출량 정보는 World Bank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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