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여자들의 글로벌이야기] 19. 비엔나 생명 공학 연구소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법
[과학하는 여자들의 글로벌이야기] 19. 비엔나 생명 공학 연구소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법
  • 오스트리아(비엔나)=이지현 분자유전학 박사
  • 승인 2020.05.2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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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재개한 오스트리아...자체 손소독제 제작, 코로나19 사이트 개설 등 팀별 대응 활발
비엔나 20개 연구소 합심해 코로나19 진단 이니셔티브 형성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의 영향으로 멈춰 있던 유럽 사회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 중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소도 이달 18일부터 대부분의 직원이 업무로 복귀했다. 아직도 하루 확진자가 몇 십 명씩 발생하는데 문을 여는 건 위험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소 직원들은 복귀를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데 어떻게 안심하고 일터로 돌아올 수 있는 걸까?

연구소는 정부 정책에 따라 3월 16일 셧다운(업무 정지)에 들어간 후 약 4주 간 비상근무 체제였다.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추이가 안정세에 접어든 4월 12일 부활절 이후에는 순환 근무제를 도입해 같은 공간에 있는 인원을 한정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근무하게 했다. 그 후로도 1달 동안 기준을 점점 완화해 왔고, 5월 18일부터는 아픈 곳이 없다면 업무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지병이 있거나 나이가 많아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람들, 아이들을 돌봐야 해 불가피하게 집에 있어야 하는 부모들은 예외다. 또한, 업무에 큰 지장이 없다면 여전히 재택근무를 권장한다. 연구소 내에서는 밥 먹을 때 빼고는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한다.

연구에는 ‘실험’이 필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연구소의 빠른 재개는 환영할 일이다. 이를 위해 약 2달간 실용성 있는 논의를 활발히 진행했고, “건강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기본 방침 아래 연구소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체계적인 준비와 변화들이 뒤따랐다. 이를 기록·공유하는 일이 의미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엔나 내 20여개 연구소들은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 코로나19 검사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연맹을 결성했다. 사진=VCDI 홈페이지 캡처

① 지속적인 온라인 논의와 빠른 공유: 셧다운 시작 전인 3월 초부터 오스트리아에서는 티롤(Tyrol) 지방을 중심으로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때부터 연구소 안전 관리 부서 직원들과 각 부서 대표들이 참여해 셧다운과 연구소 내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에 대비해 포괄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이는 셧다운 이후 일주일 3번의 온라인 미팅으로 이어졌다. IT팀에서는 재택근무 시 연구소 내부 서버에 접속할 시스템을 일주일 만에 구축했고, 구매팀은 국경 봉쇄로 인한 실험실 필요 물품 재고 소진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기 위해 논의했다. 셧다운 이후에는 필수 인력의 연구소 출퇴근 관리와 비상 상황 시 대처 방법, 연구소 내에서 장갑 및 마스크 착용에 관한 세부 지침을 논의했다. 직원들에게 코로나19 각종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와 이메일을 통해 모든 논의 사항이 빠르게 전했다. 연구소 재개를 위한 논의도 모두 실무자와 연구소 소장들이 모인 온라인 미팅 자리에서 진행했으며, 결정사항들은 정리된 문서의 형태로 직원들에게 공개됐다.

② 각 팀의 대처: 평소 대중에 연구 성과를 알리는 역할을 해 왔던 커뮤니케이션 팀은 비상 상황에서 연구소 내부 코로나19 사이트 정보를 실시간으로 갱신해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직원도 알 수 있게 했다. 셧다운 이후 약 20개에 달하는 코어 퍼실리티(Core facility)*은 팀별로 상황에 맞게 비상체제 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코로나19 사이트에 정보를 나눴다. 물론 많은 프로젝트가 멈췄지만, 완전한 업무 중지가 불가능한 시약팀, 동물 관리팀 등에서는 조를 나눠 최소한의 유지관리를 했고, 각 퍼실리티에서 상황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지침을 지속적으로 안내해 연구자들이 실험에 복귀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 지원했다. 구내식당 팀에서도 셧다운 기간 동안 여러 요리법을 공유하며 오늘 뭐 먹을지 고민했을 사람들을 도왔다. 특히, 여러 전문 시약들을 직접 만들어 연구소 내 실험실들에 지원하고 대규모 실시간 PCR장비도 갖추고 있는 분자생물서비스(Molecular biology service) 팀에서는, 손소독제 공급이 제한된 이후 재빠르게 손소독제를 만들어 연구소 곳곳에 배치했다. 또한, 진단 검사를 할 수 있는 시약을 자체 생산하고 진단 프로토콜을 개발해 4월 20일부터는 원하는 연구소 직원이라면 익명으로 일주일에 2번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안내한다.

코어 퍼실리티(Core facility): 실험실마다 갖고 있기에는 너무 비싸고 전문 역량이 필요한 실험 장비나 모든 실험실이 공통으로 필요로 하는 서비스의 경우, 연구소 단위에서 장비와 시설을 마련하고 전문인력을 채용해 하나의 팀을 만든다. 코어 퍼실리티가 있으면 각 실험실에서 거액으로 장비를 구매하거나 필요한 시약을 만드는 등 자잘한 업무를 줄일 수 있다. 전문인력이 장비와 시설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연구소 입장에서도 효율적이다.

③ 비엔나 20개 연구소가 협력하는 코로나19 진단 이니셔티브: 현재 연구소 내부에서 진행되는 코로나19 검사는 연구소 내 직원 보호만을 위한 게 아니다. 셧다운 직후부터 비엔나 연구소들이 오스트리아의 코로나19 검사 능력을 끌어올리려고 연구소 간 경계를 넘어 팀을 꾸렸다. 셧다운 2주 만에 정부와 비엔나 과학 공학 펀드(Vienna Science and Technology Fund; WWFT)로부터 긴급 자금 지원을 받아 ‘비엔나 COVID-19 진단 이니셔티브(Vienna COVID-19 Diagnostics Initiative; VCDI)’가 발족했다. 현재 대규모 실시간 PCR 뿐만 아니라, 항체 검사,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반 COVID-19 스크리닝, Cas 13 기술을 이용한 진단법이 개발 중이다. 여기에는 200명이 넘는 과학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소 내부 검사는 연구소에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뿐 아니라, 이 프로젝트의 탄탄한 기초 자료로 쓰여 2·3차의 감염 확산을 조기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생명 공학 연구소는 평소 개방된 논의 방식, 전문화 된 인력배치, 팀 간 협력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잘 갖춰진 시스템이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면서 자유롭게 논의하고 빠르게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위기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회를 지속하기 위한 해결책은 이런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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