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여자들의 글로벌이야기] 5. '슈퍼맘' 강요 말고 '슈퍼 빌리지' 만들자
[과학하는 여자들의 글로벌이야기] 5. '슈퍼맘' 강요 말고 '슈퍼 빌리지' 만들자
  • 미국(애틀랜타)=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 승인 2019.11.11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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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대학 메이슨 교수, 여성들의 진로 이탈 현상 연구
정년트랙 타는 여성 박사가 이혼율 더 높아...새는 송수관 막으려면 '삶의 질' 높여야

 

“아슬아슬하지 마. 지각 엇비슷하게도 하지 마. 애 딸린 거 조금도 티 내지 마, 분유 냄새도 내지 마.”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싱글맘 황한주의 회사 대표 이소진의 대사다. 그는 세련되게 차려 입은 세미 슈트 차림에 냉철함과 카리스마가 철철 넘쳐나는 외모로 직원들의 공은 세워주고, 허물은 덮어주는 능력 있고 ‘쿨’한 커리어 여성이다. 한주는 그런 강하고 정확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이 대표를 롤 모델로 삼아 멋진 커리어 여성을 꿈꾼다. 그래서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도 지각 한번, 조퇴 한 번 하지 않고 열심히 버티며 일했노라고 이야기한다. 아슬아슬하지 않기 위해서.

정년이 보장된 교수 중 기혼이자 자녀가 있는 비율은 남성이 70%, 여성은 44%다.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메이 앤 메이스 교수와 마크 고든 교수는 미국 국립 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에서 실시하는 박사학위자 설문조사(Survey of Doctorate Recipients, SDR)의 자료를 이용해 결혼 및 자녀 유무와 그들의 성취도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1978년에서 1984년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 중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가 된 이들을 대상으로(여성 10,652명, 남성 32,234명) 성별과 가족 구성을 비교 분석한 결과, 기혼-무자녀인 테뉴어 교수의 비율이 남성 15%, 여성 19%로 여성이 근소한 차이로 높다. 그러나 기혼-유자녀 테뉴어 교수 비율은 여성은 44%에 불과하지만 남성은 70%에 이른다. 또한, 미혼-무자녀 남성은 11%인데 여성은 2배 이상인 26%로 조사됐다. 

이 연구에서 눈여겨볼 것은 여성 박사학위자의 직업에 따른 이혼율 차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처음 직업을 갖기 시작한 후, 정년트랙(조교수) 여성은 약 6년간 3% 이상의 지속적인 이혼율을 보였으며, 남성은 2.4-2.9%의 이혼율을 보였다. 정규직인 아닌 시간강사, 파트타임 혹은 전업주부인 여성의 이혼율은 2% 미만으로, 정년트랙으로 연구하는 여성들의 이혼율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2배 가량 높게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혼으로 인한 가사, 출산, 육아에 대한 무게는 국가와 문화의 차이를 막론하고 여성에게 더 큰 부담을 주고 있으며, 수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박사학위를 손에 쥔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또한,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중 조교수로 임용되는 비율과 자녀의 나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남성은 자녀 출생 전 후로 높은 임용률을 보이는 반면 여성은 자녀가 4-6세가 돼서야 가장 높은 임용률을 보인다. 여성 교수는 자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남성보다 약 6년이 지연되며, 가장 높은 임용률을 보이는 시기조차도 남성의 임용률 최고치를 따라잡지 못한다.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대부분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7-8년의 박사 후 연수과정을 거친다. 교수가 되는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연구실적을 쌓아야 한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논문을 출판하고, 연구비를 신청하는 등 지난한 과정을 경제적, 심리적 불안감과 함께 보내야 한다.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의 이 시기에 가장 생산적으로, 가장 공격적으로 경쟁에 나서야 하는 여성들에겐 생물학적 가임기라는 또 하나의 무게 추가 놓여있다. 메이스 교수는 가사와 육아가 여성에게 치우치는 현상과 여성의 생물학적 가임기가 제한되는 불완전한 중첩 현상으로 인해 여성들에게 '아기 시차(Baby Lag)' 가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남성은 자녀 출생 전 후로 높은 임용률을 보이지만 여성은 자녀가 4-6세가 돼서야 가장 높은 임용률을 보인다.

이 연구를 진행한 메이슨 교수는 이혼한 싱글맘이다. 법학 공부를 한 그에겐 당시 법조계에 들어가 버틸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이 없었다. 그는 설문조사에 응했던 여성 교수들보다 긴 10년의 아기 시차를 가져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버클리대 최초의 여성 대학원장을 역임했고 대학교수 및 전문직 여성들의 ‘새는 송수관(leaky pipeline, 여성들의 경력 손실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수행해 왔다.

메이슨 교수와 뜻을 같이한 교수들은 여성 교수들의 일-가정 양립을 넘어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교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UC Family Friendly Edge Project'를 캘리포니아 주립대 10개 캠퍼스에서 시작했다.

자녀를 출산하거나 입양하면 두 학기의 보직이나 행정 일을 면제해주고, 조교수는 1년 동안 테뉴어(tenure) 트랙 기간을 연장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6주의 유급 산후 휴가와 12주의 무급 산후 휴가 혹은 건강문제로 인한 휴가를 허가하고(미국은 정부에서 정한 산후 휴가가 없다), 차일드케어 부설 기관을 신설하고, 아이들의 학교 일정과 동일하게 대학의 일정을 조정하고, 신임 교원에게는 배우자의 직업 알선 및 주택 보조 등의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멜로가 체질'의 한주와 닮았다. 그러나 한주가 닮고 싶어 하는 이소진 대표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경력을 붙들고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분유 냄새도 풍기지 않는 완벽한 ‘슈퍼맘’이 될 것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슈퍼 대학,’ ‘슈퍼 빌리지’를 만들어 그들의 아슬아슬함을 완충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혼이건 미혼이건 자녀가 있건 없건 교수이건 직장인이건 모든 사람들은 삶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참고자료:
1) Do Babies Matter (Part II)? Closing the Baby Gap: Mary Ann Mason and Marc Goulden, Academe, Vol. 90, No. 6 (Nov. - Dec., 2004), pp.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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