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임상 시험 이야기로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잦아진 듯했던 코로나바이러스는 미국·브라질·러시아·인도를 비롯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확진자 수가 치솟고 있다. 종식에 가까웠던 뉴질랜드나 타이완에서도 계속해서 확진자가 보고된다. 백신에 대해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주가가 요동치는 건 백신 없이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모두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미국의 백신회사 ‘모더나(moderna)’는 mRNA를 이용한 코로나 백신이 임상 3상에 들어간다고 발표를 했다. 그와 더불어 임상 1상에 대한 논문을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발표했다. 건강한 성인 남녀 45명을 대상으로 한 이 임상 시험은 코로나바이러스의 S 단백질의 한 부분을 인체 내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전물질(mRNA)을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의 백신으로 기존에 다른 백신 개발에 사용했던 플랫폼을 이용해 전통적인 방식의 백신보다 신속하게 연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중국 연구자들이 발표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유전자 서열을 기반으로 실제 바이러스 없이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해 마우스와 원숭이 실험을 거쳐 임상 1상에서 3상까지 불과 몇 개월 만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현재 모더나를 비롯한 여러 회사의 백신 개발의 속도는 인류의 백신 개발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모더나 백신의 임상 1상에 대한 논문을 보면 백신의 농도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눈다. 각 그룹 참여자들의 성별·연령·인종에 대한 표가 있다. 전체 참여자 중 백인이 40명, 흑인 2명, 아메리카 인디언 1명, 아시안 1명, 히스패닉/라티노 6명이다. 인종 비율이 백인에 지나치게 치우친다. 코로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시작된 지 수개월이 지난 현재,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은 인종별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백인을 기준으로 봤을 때 흑인의 감염률은 2.6배, 입원율은 4.7배, 사망률은 2.1배가 높다. 히스패닉/라티노의 경우 감염률은 2.8배, 입원율은 4.6배, 사망률은 1.1배가 백인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인종별 차이는 밀집한 환경의 생활방식, 기저 질환과 더불어 사회 경제적으로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 있는 직종에 종사하는 등 미국 내의 사회 불평등이 건강의 불평등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표출되고 있다. 즉, 백인에게 치우친 백신 임상 시험의 결과는 백신이 가장 필요한 인종의 백신 안전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유색인종의 신약, 백신 등의 임상 시험 참여 비율과 의료 전문가 비율은 백인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미지=Clinical Research Pathways

7월 말 3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3상을 앞두고 미국 국립보건원 (NIH)는 페이스북을 통해 모더나의 책임자, NIH 산하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연구소의 엔소니 파우치 박사와 임상 3상에 직접 참여하는 시험 참가자가 참여하고, NIH 디렉터인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가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을 했다. 이 방송은 그동안 임상 1상을 통해서 백신의 효과와 안정성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임상 시험 참여자가 직접 임상 시험 전반에 대한 궁금증을 책임자들에게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임상 시험 참가자는 흑인의 중년 여성 로빈(Robyn)이었다. 그가 주변 지인들에게 임상 시험에 참여한다고 하니 주변인들은 모두 말렸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미국 흑인의 임상 시험에 대한 불신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공황 시절이던 1932년 미국 공중보건국과 터스키기(Tuskegee) 연구소는 앨라배마의 농촌 지역 가난한 흑인 소작농을 대상으로 매독의 자연적 진행 경과와 치료에 대한 임상 시험을 시행했다. 지금처럼 시험 대상자에게 동의서를 받지도 않았으며, 병명에 대한 진단도 듣지 못했다. 그들에게 ‘나쁜 피’를 갖고 있으니 계속 검사해야 한다며 무료 건강검진, 무료 식사와 장례 보험 등으로 참여를 유도했고, 이 시험은 40년간 지속했다. 가장 큰 문제는 1947년 페니실린이 매독에 대한 표준 치료법으로 지정됐음에도 환자들에게 병명을 알려주지도 치료를 받을 기회도 임상 시험을 중단할 수 있는 선택권도 주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페니실린으로 매독 환자들을 치료하고 연구를 끝내면 매독이 어떻게 퍼지고 사람을 어떻게 죽게 만드는지 연구를 할 수 없으므로 환자들이 치료받을 기회조차 차단해 버렸다.

1972년이 돼서야 터스키기 임상 시험은 중단됐다. 당시 생존자는 74명. 참여자 중 28명은 매독으로, 100명은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들의 배우자 중 40여명이 매독에 감염됐고, 자녀 중 19명은 매독을 갖고 태어났다. 터스키기 임상 시험은 미국 보건 역사에서 우생학적 인종주의에 의한 가장 비윤리적인 임상 시험으로 기록됐다.

터스키기 임상 시험은 흑인들의 공중보건과 의료에 대한 불신을 유발했으며, 유독 미국의 흑인들이 임상 시험, 장기 기증 및 예방적 치료 등에 소극적인 이유가 됐다. 로빈은 주변인들은 자신에게 ‘NO’라고 외치며 터스키기 임상 시험을 상기시켰다고 했다. 40여년 전 중단된 터스키기 임상 시험은 아직도 흑인들의 삶 깊은 곳에 흉터로 남았다. 임상 시험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단체인 ‘Clinical Research Pathway’에 따르면 미국 인구 중 흑인 비율이 13.4%인데 신약, 백신 등의 임상 시험에 참여하는 비율은 5%에 불과하며, 전체 인구의 18.1%를 차지하는 히스패닉/라티노는 약 1%만이 임상 시험에 참여한다고 한다. 동일 인종 의사와 임상 연구원 비율도 낮고, 임상 시험의 목적과 그에 따른 효과·안전성에 대해서 같은 인종으로서 참여를 독려할 기회가 적고 언어적 장벽도 존재한다고 한다. 이러한 임상 시험에 대한 부정적인 요인과 낮은 접근성은 신약이나 백신 승인 후, 특정 인종에게 효과가 낮거나 없거나 혹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에서 비라틴아메리카계 백인은 코로나19 감염률이 타 인종보다 낮다. 이미지=미국 CDC

코로나 정복을 위한 백신 개발 속도전에서 우리는 어느 나라가 가장 먼저 만들지에 관심이 쏠려있다. 자칫하면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데이터가 결여된 결과로, 후에 떳떳하지 못한 승리의 깃발을 손에 쥘 수도 있다. 임상 3상에서는 1·2상과는 달리 코로나 백신 취약 계층인 노약자 그룹도 속한다. 당뇨, 고혈압 등 기저 질환이 있는 이들, 혹은 임산부가 참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미국 전체 인구 비율이나 코로나 확진자의 인종별 분포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

로빈은 주변 만류에도 자신이 임상 시험에 참여한 건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의 공중보건에 대한 불신을 버리고 스스로 임상 시험에 참여해 모두를 보호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코로나라는 질병이 유색인종에게 집중돼 나타나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한 도움이 되고, 백신과 바이러스 연구를 촉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도 말한다. 로빈의 이야기를 들은 NIH 디렉터 콜린스 박사는 코로나 백신 임상 시험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로컬-인종 커뮤니티와 연계해 다양한 인종의 참여를 독려하고, 정확한 정보와 이해를 도모하는 일들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댓글 창에는 로빈을 격려하는 말들과 고맙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로빈은 아픔의 역사를 딛고 서서 우리가 일상을 위해 한 걸음 딛을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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