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과학적 사회] 1. 유네스코의 이름을 바꾼 생화학자
[김우재의 과학적 사회] 1. 유네스코의 이름을 바꾼 생화학자
  • 김우재
  • 승인 2019.03.12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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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 유네스코 헌장 中⁠(주 1)

“지식은 단지 자연을 지배하고 극복하려는 목적으로만 발전돼서는 안된다. 지식은 반드시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의미의 맥락 속에서 발전돼야 한다. 지식과 권력은 의미와 도덕성에서 너무 멀어져 왔다.(중략) 지혜와 권력을 어떻게 하나로 만드는가하는 문제야말로 인문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 조지프 니덤, <중국의 과학과 문명> 中(주 2)

국제정치 무대에서 활동한 과학자 혹은 역사가, 조지프 니덤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로 알려진 이 조직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가끔 뉴스에 등장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 사업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름에 새겨져 있듯이, 유네스코는 교육과 과학, 그리고 문화를 통해 국가 간의 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다. 유네스코 헌장의 도입부는 그 설립의 목적과 철학을 이렇게 기술한다.

“이 헌장의 당사국 정부는 그 국민을 대신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전쟁은 인간의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서로의 풍습과 생활에 대한 무지는 인류 역사를 통해 세계 국민들 사이에 의혹과 불신을 초래한 공통적인 원인이며, 이 의혹과 불신으로 인한 그들의 불일치가 너무나 자주 전쟁을 일으켰다.”

유네스코는 1945년 창설됐다. 그 해는 국가간의 분쟁을 조절하고 세계의 평화를 도모할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1920년대의 다양한 활동들이 국제연합(UN)으로 완성되는 해였고, 무엇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때다. 유네스코 헌장은 이 시기에 작성됐고, 따라서 세계대전이 언급돼 있다.

“이제 막 끝난 무서운 대 전쟁은 인간의 존엄, 평등, 상호존중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부인하고, 이러한 원리 대신에 무지와 편견을 통해 인간과 인종에 대한 불평등이라는 교의를 퍼뜨림으로써 일어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유네스코는 문화를 확산시켜 인류를 교육하면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상에 기대고 있는 조직이다.

“문화의 광범한 보급과 정의, 자유, 평화를 위한 인류의 교육은 인간의 존엄에 불가결한 것이며 또한 모든 국민이 상호 원조와 상호 관심의 정신으로써 완수해야 할 신성한 의무다.”

유네스코의 이름 중 ’S’는 과학, 즉 사이언스(Science)를 상징하지만 헌장의 도입부에서 과학이라는 말은 맨 마지막 단락에 가서야 등장한다.

“이에 헌장의 당사국들은 세계 국민들 사이의 교육적, 과학적, 문화적 관계를 통해 UN의 설립 목적이며 또한 국제연합 헌장이 선언하고 있는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의 복리라는 목적을 촉진하기 위해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를 창설한다.”

유네스코는 원래 유네코(UNECO)라는 이름으로 창설됐다. 즉, 유네스코는 창립된 이후에 그 이름을 한번 바꾼 기구다. 기구의 이름에 과학을 상징하는 ‘SC’를 넣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인물은 생화학자이자 중국과학사 연구로 더 유명한 영국 출신의 과학자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이다. 니덤은 발생학과 생화학을 접목한 연구로 명성을 날리던 인물이지만,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세상사에 무관심한 상아탑 지식인이 아니었다. 그는 열렬한 사회주의자였고, 중국문명에 매력을 느껴 오랜 기간 동안 중국에 머물며 과학사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대작,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출판했다. 

유네코를 유네스코로 바꾼건 오로지 니덤이라는 과학자의 노력 덕분이었다(주 3). 니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을 전담하는 국제기구의 설립을 주장해온 과학자였다. 하지만 니덤이 중국과학사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에 방문하던 시기에 유네스코가 창립됐고, 니덤은 기구의 이름에서 과학이 빠져 있다는걸 알지 못한채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회의에서 니덤은 강력하게 국제적 과학교류를 통한 평화의 조성활동을 기구의 목적에 넣을 것을 요청한다. 그 의견이 받아들여졌지만, 여전히 기구의 이름에서 과학은 빠져 있었고, 미국 대변인은 미국 시민들은 ‘문화’라는 말 속에 과학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니덤은 집요하고 강력하게 “만약 과학자들이 이 기구의 발전에 참여하고 동조하게 만들고 싶다면, 기구의 이름을 당장 바꿔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대변인은 이상한 이름이라고 비웃었지만, 계속되는 니덤과 과학자들의 의견은 회의가 열린 6일째 결국 받아들여진다. 아마 니덤이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과학자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니덤과 과학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나서 바로 유네스코 헌장이 공표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유네스코 헌장은 과학이 기구의 활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또한 국제간 교류를 통한 평화의 증진에서 과학과 과학자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정밀하게 담아내지 못했다. 헌장의 도입부에서 과학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건, 20세기의 중반의 유럽에서도 과학은 사회 속에서 분명하게 인식되지 못한 문화의 주변부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20세기 중반이 돼서야 과학과 과학자가 사회와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조건이 주어졌다는 의미도 된다. 니덤은 과학자가 국제정치에 개입하고 과학자로서 적극적인 시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싹트던 시기에 활동한, 1세대 과학자였다(⁠주 4).

냉전 시기의 국제적 과학, 그 불가능한 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0월 유네스코에 탈퇴를 통보하고 옵서버 국가 자격만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는 처음이 아니다. 1984년에는 유네스코가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이유로 탈퇴했다가 2002년에 재가입한 전력이 있다. 미국은 약 6230억 원에 이르는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던 국가였고, 이 탈퇴는 유네스코에 심각한 타격이 된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네스코가 편향적이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에서 유네스코가 미국과 완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미국과 이스라엘에게는 독립국이 아니지만, 유네스코는 정식 회원국으로 인정하고 있고, 바로 이런 유네스코의 진보적 입장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유네스코의 불편한 관계는 오래됐다. 니덤이 과학을 이름에 넣자고 주장할 때 반대한 국가도 미국이었다. 유네스코의 미국 대변인은 니덤을 조롱하며 과학이라는 상징이 굳이 국제기구의 이름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반대했지만, 결국 현재까지 UN 산하의 단체 중에서 과학을 전담하는 유일한 조직은 유네스코 하나 뿐이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교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과학을 별로 신경쓰지 않듯이, 유네스코 안에서도 과학은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잡기 위해 고군분투해왔고, 여전히 그러고 있는 중이다. 

니덤이 국제평화에서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한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맨하튼 프로젝트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고, 세계대전이 종전된 시점에서 과학기술은 세계평화를 유지할 수도, 깰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인식이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과학자의 영향력은 당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던 물리학의 최첨단 이론들, 즉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아인슈타인이라는 괴짜 과학자와 함께 막 기지개를 켜던 중이었다.

문제는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 사이에 생긴 냉전기류였다. 과학은 분명히 중요했고, 유네스코의 역할은 세계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지만, 사안 하나하나마다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충돌했다. 유네스코가 각국에 사무국을 세워 교류를 증진시키려 했을 때도, 소비에트 연방은 유네스코가 지나치게 서구 리버럴 진영의 논리만 대변한다며 반대했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측은 유네스코가 빨갱이 혹은 전공산주의(pre-Communist), 즉 정치적으로 좌편향된 단체라며 반대했다. 

실제로 유네스코의 이름을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있던 니덤은 사회주의자임을 당당하게 표명하며 활동한 과학자였고, 냉전 시기에도 중국을 왕래할 만큼 정치적으로 좌익에 가까웠다. 유네스코는 냉전으로 대립 중인 양 국가 모두를 거스르지 않을 리더를 찾아야 했고, 결국 피에르 오제(Pierre Auger)라는 천문학자를 내세워 양국 중재에 성공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네스코 뿐 아니라 UN 전체가 강대국들의 이권에 흔들린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태초에 유네스코에 과학이 있었다

유네스코가 강대국 사이에서 힘들어하긴 했지만, 이미 출범된 기구는 서서히 발전 중이었고, UN내에서의 위치도 서서히 자리잡히기 시작했다. 문제는 니덤이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했던 과학의 역할이 유네스코의 사업 내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장 당면한 문제는 핵발전과 핵무기에 대한 국제적 공조와 활동이었지만,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냉전은 유네스코가 과학을 전면에 내세워 활동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과학기술의 힘을 체험한 세계각국은 앞다투어 과학기술 발전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국가 방위와 가장 연관된 핵 문제에서 과학적 교류를 지원할 국가는 없었다. 모든 국가가 과학기술을 자국 내에서만 폐쇄적으로 유지하려 했고, 국제적 교류는 스파이 짓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니덤과 대부분의 진보적 과학자들이 바라던 국제적인 과학자들의 연대, 그리고 과학적 지식의 자유로운 교류는 허황된 이상으로 남았다. 

니덤과 함께 유네스코에 과학의 숨결을 불어넣은 사람은 동물학자 줄리안 헉슬리다. 그리고 그가 바로 유네스코의 초대사무총장이었다. 줄리안 헉슬리는 188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고, ‘다윈의 불독’이라 불리던 토머스 헉슬리를 할아버지로, 영국의 작가였던 레너드 헉슬리를 아버지로, <멋진 신세계>의 저자인 올더스 헉슬리와 노벨 신경생리학상 수상자인 앤드류 헉슬리를 동생으로 둔 헉슬리 집안의 일원이다. 헉슬리와 니덤이 유네스코를 이끌던 시기를 지나 냉전으로 세계가 얼어붙어버리자, 유네스코는 시인이자 외교관인 제임스 보데(Jaime Torres Bodet)를 헉슬리의 후임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보데는 헉슬리처럼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고, 미국은 중국의 참여를 거부하고, 동서양 지식인들의 교류회담을 결렬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유네스코에 개입했다. 

그렇게 1952년이 되면서 유네스코에서 과학은 유네스코가 진행중이던 10개 프로그램의 한 단위로 격하된다. 특히 초기 과학자들이 떠난 자리에 임용된 자유주의자들은, 유네스코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세계과학노동자연맹(World Federation of Scientific Workers)에 대한 지원도 중단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네스코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미국은 공산주의와의 전쟁 중이었고, 존 데스몬드 버널(J. D. 버널)을 비롯한 세계과학노동자연맹의 주요구성원들은 과학자이자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맨하튼 프로젝트를 흉낸낸 거대과학 프로젝트들이 시작됐고, 과학자는 대학과 정부에 귀속돼 관리되기 시작한다.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이며 경제적 효용성을 통해 그 존재를 증명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 즈음이다. 유네스코에서 과학은 제대로된 프로그램 및 철학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냉전 속에 패퇴해야 했다. 냉전은 유네스코와 나아가 과학의 전인류적 진보를 가로막았다(주 ⁠5).

그나마 니덤과 헉슬리의 공로가 없었다면, 우린 지금 과학이 전문적인 분야로 다루어지지조차 않는 UN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네스코의 S는 과학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과학을 부속품처럼 다룬다. 그건 유네스코의 특징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인 학문이며, 전세계 어디서든 연구가 가능한 인력풀을 보유한 학문인 과학은, 국가간의 교류를 담당하는 국제연합 기구 안에서 차별당하고 있다. 

주1. 유네스코 헌장은 다음 링크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다. https://www.unesco.or.kr/assets/data/report/LafazzIYemQGwqQbTLkMy2VknnBS0c_127176837416_3.pdf
주2. From Joseph Needham,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vol. 5, part 5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p. 20:
주3. Archibald, G. (2005). How the ‘S’came to be in UNESCO. Sixty Years of Science at UNESCO, 36-40.
주4. 니덤을 비롯해서 존 데스몬드 버널(J. D. Bernal), 존 홀데인(J. B. S. Haldane), 랜슬롯 호그벤(Lancelot Hogben), 하이먼 레비(Hyman Levy), 패트릭 블래킷(P. M. S. Blackett) 등이 이 시기 유럽에서 과학자이자 지식인으로 활동한 대표 인물들이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두 권의 책으로 번역출판돼 있다. (G. Werskey, 김명진▼KAC201210435, 과학……좌파, 이매진, 서울, 2014. G. Werskey, 송진웅, 과학과 사회주의, 한국문화사, 서울 , 2016)
주5. Petitjean, P.(2006). Defining UNESCO's scientific culture: 1945-1965. 이 챕터를 비롯해서 유네스코의 과학적 문화의 기원에 대한 책은 인터넷에 공개돼 있다. Petitjean, P. (Ed.). (2006). Sixty years of science at UNESCO 1945-2005. UNESCO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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