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적(敵)은 사람이 아니라 바이러스다
[특별기고] 적(敵)은 사람이 아니라 바이러스다
  • 미국(애틀랜타)=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 승인 2020.01.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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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정체, 소수 영웅 아니라 다수 힘 합쳐 발견·대응
가짜 뉴스·혐오 댓글 대신 함께 연구하고, 함께 막고, 함께 싸워서 해결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증상자 28명을 격리해 검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환자는 전날과 같은 4명이며, 이들을 제외한 조사대상 유증상자는 183명으로 28명은 검사가 진행 중이다. 나머지 155명은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타나 격리에서 해제됐다. 한편, 정부가 30일·31일 전세기로 송환하는 중국 우한 교민을 경찰인재개발원에 격리 수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발원 소재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본지는 '과학하는 여자들의 글로벌 이야기' 필진 중 한명인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에 특별 기고를 요청했다. 문 박사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백신 연구를 하고 있다. 바이러스와 백신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본지 독자들에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를 향해 스스로 혐오를 만들어내지 말고, 사람을 구해야하는 공동체 정신을 잃지 말자"고 제안하는 내용의 글을 보내왔다. 필자의 의견을 가감없이 전달한다.

#홍콩으로 출장을 갔던 주인공이 정체모를 무언가에 감염돼 발작 증세를 보이다 사망한다. 이미 그는 홍콩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후 가족과 함께 지냈다. 그리고 그 정체모를 무언가는 그의 아들도 죽였으며,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 무언가의 정체는 ‘바이러스’였다.

마치 현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비슷한 이 이야기는 영화 '컨테이젼(2011)'의 도입부다.

영화 '컨테이젼' 포스터. /사진=IMDb

이 영화가 질병 재난 영화로 꽤 괜찮은 평을 받았던 이유는 신종 전염병과 그를 대처하는 과정을 꼼꼼히 조사해 인간의 공포와 전 세계의 혼란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첫 사망자로 등장한 베스 엠호프(기네스 펠트로 분)의 행적은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첫걸음이 된다. 과학자들은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그의 체액에서 바이러스를 관찰하고, 그 바이러스의 크기와 모양을 통해 파라믹소 바이러스 종류라고 판단한다. 바이러스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기존의 다른 바이러스를 증식시키는 데 사용하던 다양한 세포에 감염시켜 바이러스 분리를 시도하나 꽤 어려움을 겪는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전체 유전자를 분석하고, 기존의 박쥐에서 검출된 바이러스와 비슷한 유전자 서열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바이러스가 세포에 감염될 때에 접촉되는 부위를 유전자 분석으로 알아낸다.

어렵게 세포에서 배양하는 데 성공한 바이러스로 전 세계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백신 개발에 들어간다. 사백신이 동물실험에서 효과가 없자, 약독화된 백신으로 방법을 전환한 후 원숭이에게서 백신의 효과가 나타난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백신을 개발한 과학자 엘리 헤스텔(제니퍼 엘 분)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직접 백신을 접종함으로 임상실험 기간을 단축시킨다. 첫 환자가 나온 후 130여 일이 지나서야 그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세상에 나왔다. 쟁쟁한 할리우드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미생물학자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헤스텔 박사가 단연 원톱 주인공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은 극적인 백신 개발을 두각 시키기 위해 극도의 갈등 구조를 만들어냈다. 갈등 서사에는 최초 사망자의 남편인 토마스 엠호프(맷 데이먼 분)가 주축이 된다. 아내와 아들이 죽고 딸을 홀로 남겨둔 채 격리시설에 있어야 했던 그는 격리 해제 후 딸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세상과 싸운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통제력과 도덕성을 잃어버리고 범죄에 대한 수치심도 없으며 폭력과 분노가 가득 찬 폭도로 변해버렸다. 와중에 기름을 부은 사람이 있었으니 전염병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프리랜서 기자 앨런 크럼위드(주 드로 분)였다. 바이러스가 정부에서 개발되었다는 둥, 방사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라는 둥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심지어 가짜 약까지 제조해 팔아 혼돈 속에서 부를 축척한다.

현실과 꼭 닮은 이 영화에도 옥에 티는 있다. 고군분투하는 한두 명의 영웅에 의해 전 세계를 위협하는 전염병을 막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해결사는 혼자가 아니다.

올해 초, 중국의 과학자들은 신종 폐렴으로 환자들이 늘어나자 이 폐렴의 원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있음을 밝혔으며, 불과 몇 주 만에 환자의 검체에서 추출한 유전자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체 염기서열을 밝혀냈다. 그리고 전 세계 과학자들이 볼 수 있도록 미국 보건부 산하의 국립 생명정보학센터(NCBI)에 유전자를 등록하고 공개했다. 우한과 홍콩의 과학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와 96% 유사하며 사스(SARS) 코로나바이러스와는 79.5%가 유사하다고 밝혀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할 때 접촉하는 단백질 부위(ACE2)가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사실을 밝혀냈으며, 홍콩·중국·미국·독일·일본·태국은 자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단키트의 정보와 방법을 담은 진단 프로토콜을 WHO와 CDC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또한, 신종 전염병에 대한 백신 개발 지원을 위해 세워진 다국적 단체인 CEPI(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는 16주 안에 백신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3가지 다른 방법을 이용한 백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과거 사스와 다른 바이러스 치료에 쓰이던 치료제를 환자에게 투여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장에서 배송되는 의심 환자의 샘플은 24시간 일하고 있는 정부 연구원들이 빠르게 진단하고 있으며, 오늘은 호주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세포에서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논문들은 역학자들이 발품을 팔아 바이러스의 전파경로를 파헤치거나 AI를 이용해 예측한 연구이며, 현장의 의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돌보며 그들의 증상을 세세히 기록한 결과물이다.

영화에서 홀로 현장에 파견된 CDC의 에린 미어스(케이트 윈슬렛 분)나 WHO의 오란 테스(마리옹 꼬띠아르 분) 같은 사람은 현실에 없다. 전염병에 대한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을 받고 전염병의 최전선인 현장에 파견되는 보건학자와 역학자, 그리고 전염병 방역의 국경을 지키고 있는 방역관은 팀을 이뤄 전염병에 촘촘하게 대응한다.

그러나 전 세계의 셀 수 없는 과학자, 의사, 역학자, 보건학자와 방역인력의 총력전만으로는 인간과 바이러스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가짜 약을 찾는 우매한 모습으로 폭력과 혼란 속에서 밑바닥을 드러내는 인간들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언론과 SNS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 유튜브를 떠도는 가짜 뉴스와 카톡방과 지역,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서 나누는 이야기들, 혐오로 가득 찬 댓글들은 우리의 폭력성과 이기주의를 드러내 놓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영화의 결말을 위한 혼란과 혐오를 전염병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향한 혐오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극적인 해결이 아닌 상처투성이의 분열된 사회만 남아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영화처럼 멋있게 승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방법이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할 것, 손을 깨끗이 씻을 것. 기침을 할 때는 소매에 할 것. 극히 단순한 이 예방법은 무시무시한 전염병 앞에 인간인 우리의 나약함을 부질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같이 하면 가능하다. 함께 연구하고, 함께 막고, 함께 싸워야 한다. 그리고 또 다 함께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적은 정부도 정치적 집단도 특정 나라도 특정 민족도 그리고 환자도 아니다. 우리의 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다.

메르스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살아야겠다」에서 김탁환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을 재수나 운에 맡겨선 안 된다. 그 전염병에 안 걸렸기 때문에, 그 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행운'은 얼마나 허약하고 어리석은가. 게다가 도탄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마션'의 감동은 공동체가 그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경제적 손실이나 성공 가능성 따위로 바꿔치기 하지 않는 원칙으로부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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