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변에 우울감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대부분 박사후연구원 친구들이다. 박사후연구원은 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직업군에 들기 전 단계로 여겨진다. 직종 특성상 짧은 기간에 연구 경력을 많이 쌓아야 한다. 보통 1년, 길게는 3년 정도의 고용 기간을 두고, 이후 필요와 능력에 따라 기간을 연장한다. 그동안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불안감에 항상 시달리는데,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연구가 밀려 정신적으로 더 힘든 나날을 겪고 있다.

지난주 네이처 지에 실린 전 세계 7,670명의 박사후연구원을 대상으로 6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2/3가 코로나 세계적 대유행이 그들의 커리어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예상했다. 박사후연구원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나약한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불안감의 원인에는 제한된 커리어 경로가 있다. 지금까지도 박사후연구원은 보통 대학교수, 특히 정년 트랙(tenure track) 교수직에 진입해 학계에 남기 위한 경로로 여겨진다. 그러나 늘어나는 박사후연구원을 수용하기에 교수직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2017년 미국 국가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수록된 연구에 따르면 2001~2003년 사이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한 사람 중 박사 학위 10년 후 정년 교수 전환 비율은 약 2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는 관련해서 나온 체계적인 통계자료조차 없지만, 최근 국내 박사후연구원의 규모와 특성에 관한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학계 일자리 증가가 박사 배출 규모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박사후연구원 5명 중 4명은 교수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에게는 여전히 실패자 낙인이 찍힌다. 이는 박사후연구원으로서 커리어를 쌓는 이들에게 극심한 압박을 준다. 연구하는 본질, 즉 연구에 대한 흥미와 열정마저 없어질 수 있다. 다른 직업을 탐색하고 자신의 장점에 맞춰 다음을 설계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박사후연구원의 주 역할은 '연구'지만, 고용 기간 만료 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더 시급하다는 현실을 다룬 만화. "Piled Higher and Deeper" by Jorge Cham. 사진=www.phdcomics.com
박사후연구원의 주 역할은 '연구'지만, 고용 기간 만료 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더 시급하다는 현실을 다룬 만화. "Piled Higher and Deeper" by Jorge Cham. 사진=www.phdcomics.com

작년 네이처 지의 한 칼럼에서는 생명 의학 분야 학생들의 번아웃을 막기 위해 박사 과정생들에게 교수 이외의 다양한 직업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사후연구원들에게도 유효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최근 많은 연구소는 박사 과정 학생들과 박사후연구원들을 위한 다양한 직업 경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열었다.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박사학위자들을 초청해 훈련생들(trainee)과 연결해주기도 한다. 이는 어떤 훈련과 준비가 필요한지 몰라 막막한 학생들과 연구원들에게 도움이 된다.

개개인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학계에 남고자 해도, 자신의 장단점을 고려해 플랜 B, C, D를 세워놓고 유연히 대처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19 이후 다가올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시점이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지속되고 늘어난다면 대학 등록금은 점차 줄어들 거고, 악화한 재정은 교원 감축, 연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인구절벽마저 도래했으니 교수 임용 비율은 더 줄어들고 경쟁은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위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불확실성이 커진 이상 '교수'라는 타이틀을 위해 무작정 달려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따져보고, 그에 맞는 다양한 경로를 생각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발행된 국제 학술지 PLOS(Public Llibrary of Science) Computational Biology에서는 이에 도움이 될 만한 10가지 법칙('Ten Simple Rules for landing on the right job after your PhD or postdoc')을 찾아볼 수 있다.

이웃 방 박사후연구원이 작년에 세계 최고 권위지에 논문을 냈다. 그리고 이직했다. 근데 어느 대학 교수로 간 게 아니라, 세계적인 제약회사 연구직으로 취업했다. 옆 연구실의 박사 과정생은 졸업하면서 당장 교수직에 지원해도 부족하지 않을 논문 두 편을 냈다. 근데 박사후연구원이 되지 않고, 한 신생 회사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한국이라면 쉽게 상상 못 할 행보라 놀랐다. 한편으로는 놀라는 필자의 모습을 돌아보며, 스스로 얼마나 쓸데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달았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우울감을 낮추고 현재 상황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리라 생각한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