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윤병훈

‘영주(瀛洲)에 노던 선녀’ 춘향의 표상

누군가가 ‘사는 게 지옥이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불구덩이 속에 던져져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가득한 지옥을 떠올리며 그의 처지를 이해한다. 지옥이라는 관념이 심각하게 와닿게 하는 것은 불구덩이와 같은 구체적 이미지를 통한 시각적 은유이지 ‘이곳이 무시무시한 지옥입니다’라는 팻말이나 설명문이 아니다.

왼쪽 그림=.김은호 작 춘향영정. 춘향가 속 16세 모습이다.  김화백의 친일행적이 드러나 철거되었다. 오른쪽 그림= 김현철 화백의 새 춘향영정 중년여인 느낌이다(사진 출처+남원문화원)
왼쪽 그림=.김은호 작 춘향영정. 춘향가 속 16세 모습이다.  김화백의 친일행적이 드러나 철거되었다. 오른쪽 그림= 김현철 화백의 새 춘향영정 중년여인 느낌이다(사진 출처+남원문화원)

대표로 삼을 만큼 상징적인 것이 표상(表象·이미지)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표상을 통해 이뤄진다. 표상의 중요한 효과는 개인의 기억으로부터 독립된 사회적 기억을 확립하여 기억을 더 유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표상으로 배우고 그것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표상을 통해 우리의 감정, 생각, 경험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화가는 대상으로부터 ‘본질’을 뽑아내 화폭에 끌어온다. ‘본질’은 ‘그것을 그것이게 만드는 것들’이다. 화가는 자신이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것, 곧 표상을 그려낸다. ‘본질’을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어도 그림으로는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점의 그림은 생명체처럼 그 자신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 자체로 전체 이야기를 풍성하고 활력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우리’인 것은 다양한 전통들이 어우러져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전통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세대와 세대를 거쳐 우리들의 몸을 관통하며 서로 공명(共鳴)시키는 감각의 지속이다. 한 사람의 내적 삶에는 그가 포함된 사회의 온갖 감정의 추이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한 사회에는 거기 몸담은 한 인간의 감정이 옅지만 넓게 희석되어 있다. 공유하는 전통들로 ‘우리’는 서로 동화하여 유사한 감정을 공유하며, 외적으로도 유사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수백 년 이상 공유되어온 우리의 전통 중에 춘향전의 이야기와 노래는 엄마의 무릎 위에서 익힌 말과 같다. 우리에게 남원골 춘향은 ‘영주에 노던 선녀’이며 ‘앉으면 작약(芍藥) 같고 서면 모란(牧丹)’의 모습이다. 소설 속 가상의 인물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믿음 혹은 기대가 아닌, 4백 년 이상 불리어 온 판소리 춘향가와 함께 켜켜이 쌓여 설정되어 온 표상인 것이다. 남녀노소, 천 사람 만 사람마다 가슴에 품고 있는 춘향의 모습이 제각각일지라도 우리가 쓰는 말이 다르지 않듯이 춘향의 표상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유전자이며 자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유산이다. 

문화는 대중의 것이다

남원시에서 새로 제작한 춘향영정을 둘러싸고 정치인(남원시장), 행정가(남원문화원장), 전문가(화가, 자문가) 그룹과 시민사회단체 및 국악인, 남원시 의회와의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새 영정이 춘향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새영정 속의 춘향은 (대중의 눈으로) 아무리 봐도 4~50대 중년 여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 

춘향영정을 다시 그려 봉안하라는 「춘향정신문화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국악인 송화자와  일반 시민들(사진=「춘향정신문화보존회」)
춘향영정을 다시 그려 봉안하라는 「춘향정신문화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국악인 송화자와  일반 시민들(사진=「춘향정신문화보존회」)

일반시민이 보기에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모든 ‘문화적 사안’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는 사람들, 이름하여 문화 엘리트와 나머지 대중과의 차이점은 그들의 예술 취향은 선택적이고 그들의 기준은 엄격한 반면, 대중의 취향은 평범하고 무분별하며 기준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느슨하기 짝이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문화는 대중의 것이다. 

「춘향정신문화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국악인 송화자는 “춘향은 이미 춘향전  판소리 영화 등 수백 작품으로 수백 년 동안을 객관적 국민적 모습의 춘향 모습은 이미 설정이 되어 있는데 정치인(남원시장)이 주관적으로 춘향 미 기준을 설정하시면 큰일”이라고 밝혔다. “그 많은 영화도 그 시대 가장 예쁜 배우에 모두 댕기머리에 고전의상입니다. 현대식 창의적 춘향 모습 한번도 한 적 없습니다.” 성춘향이라는 인물은 ‘조선시대’ 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고전 인물이며, 고전 속 인물의 표준 영정을 현대 시대의 미적인 기준으로 그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송화자는 고전은 고전으로 오롯이 존재할 때 그 가치가 더욱 찬란히 빛나는 법이라며 “고전이라는 것은 단순히 고루하고, 진부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앞서 살다간 선조들이 당시 시대상이 어떠하였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역사적인 사료이자 교훈입니다.”며 “18세기의 새로운 복식에 대한 학계의 견해를 3대 춘향 영정 제작에 시도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송화자는 수 많은 국악인들과 남원시민이 분노하는 까닭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단순히 춘향 영정이 못생기고 추해서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방식인 구전(口傳), 연행예술인 ‘판소리’, 1903년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영화’ 등 수많은 방식으로 전해 내려오던 당시 조선시대의 고전적 미인상을 올곧게 담아내지 못하였다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송화자는 이어 전문가들이 권위를 사용하여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현재 춘향 영정을 보면 누가 봐도 김현철 화백 개인의 취향이자, 그만의 미의 기준이지, 우리가 통상적으로 어른들로부터 흔하게 들어오거나 예전 영화 속에서 봐오던 당시 조선시대 미인상이 아닌 것을 극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 현안문제와 관련된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그 지식을 공정하게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우리는 그들의 적합성과 믿음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치, 행정, 대중 사이의 상호의존성은 순환적이어서 정점도 중심도 정하기 어렵다.

그는 최경식 남원시장이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기를 간곡하게 호소한다고 말했다. 다른 의사결정자에게 책임을 미루거나 전가하지 말고 시장이 직접 나서 이치에 맞도록 해결하라는 호소이다.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시위중인  「춘향정신문화보존회」 송화자(사진=「춘향정신문화보존회」)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시위중인  「춘향정신문화보존회」 송화자(사진=「춘향정신문화보존회」)

뭔가를 영원히 기억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그 기억을 끊임 없이 갱신하고 창조할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춘향의 모습과 정신은 춘향의 표상에서 비롯된다. 춘향의 표준영정은 단일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로 전체 이야기를 풍성하고 활력적으로 드러내기에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전통과 일치되어야 한다. 그것이 춘향을 춘향이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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