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회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4.04.29.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회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4.04.29.

이로운넷 = 남기창 기자

720일 만에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대명 대표의 만남은 합의문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차담회 성격의 이른바 '영수회담'은 크게 공개회담과 비공개 회담 두 파트로 나뉘어 집니다.

1부 전 국민에게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이재명 대표는 작정한 듯 15분간 할 말은 다했다는 평가입니다. 표현은 정제됐지만 내용은 윤대통령의 폐부를 찌를 정도로 날카로왔습니다.

반면 취재진을 물리고 이어진 비공개회의에서는 윤대통령이 회담 시간의 대부분을 혼자 다 사용할 정도로 이 대표의 요구 사항을 거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재명 대표는 총선에서 분출된 국민의 뜻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한 반면 대통령은 안 들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양측은 민생 회복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놓고 서로의 주장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비공개 회담 중 85%는 윤대통령이 말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이쯤 되니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흘러나왔던 '1시간 정도 회의를 하면 윤후보가 59분을 혼자 말을 쏟아내더라..'했던 대목이 떠오르게 됩니다.

공개된 모두발언 장면 중 이 대표가 스웨덴 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해 '대한민국이 독재화 되고있다'라는 대목에선 윤의 표정이 굳어지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윤대통령이 비공개회담에선 혼자 85% 정도 시간을 써가며 분을 풀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분풀이를 쏟아냈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캐릭터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제1야당의 대표가 범죄 피의자라서 대화할 수 없다'던 대통령이 돌연 태도를 바꿔 영수회담을 제의했던 의도는 아마도 총선 참패와 폭락한 지지율에 놀라 던진 회심의 카드였을 수 있습니다.

애초 영수회담의 의제 없이 대충 사진만 찍는 것으로 지지율 반등을 노렸던 윤대통령의 회심의 카드는 실패로 귀결된 셈입니다. 

결국 이날 회담은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은 불편하시겠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통령 면전에서 조목조목 읽어 내려간 모두발언만 부각되는 결과를 나았습니다.

준비 없이 형식에만 치중하려던 용산의 전략부재가 고스란히 드러난 회담이기도 합니다. 할 말 다한 이재명 대표에 윤대통령은 속수무책 없이 당한 형국입니다.

20여분이면 닿을 거리인데 700여일만에 만난 이 대표로선 '김건희'라는 단어만 빼곤 작정하고 밀렸던 요구사항들을 쏟아낼 만 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의제 없이 만난 영수회담은 합의문 없이 상대 입장만 확인한 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2시간 넘게 영수회담을 진행했으나,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만남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이 대표는 회담 직전 모두발언에서 채상병 특검을 물론, 김건희 여사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가족문제 해결 등을 요구했으나, 이어진 차담 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확답하지 않았습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국민들이 기대를 걸고 지켜봤던 영수회담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 향후 여야 강대강 대치 정국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지율 하락에 놀란 윤대통령의 급작스런 영수회담 제의였지만 협치는 물 건너가면서 역시 기대를 저버렸다는 평가가 야권으로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민주당은 '민생회복지원금'을 수용해달라고 요구한 반면, 윤 대통령은 '여·야·정 민생협의체'를 우선 가동하자고 말로만 제안하면서 서로의 주장만 확인한 채 끝났다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영수회담이 끝난 뒤 "답답하고 아쉬웠다"는 소회를 밝히고 소통에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했답니다.

배석했던 민주당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갖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며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고 총평했습니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 특히 윤석열 정권의 일방적 독주와 관련된 부분은 매우 심판을 받았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윤대통령은 의지가 전혀 없어 실망했다'는 게 민주당 반응입니다.

이 대표가 이날 회담 모두발언에서 요청한 올해 R&D(연구개발) 예산 복원 문제와 관련해선 윤 대통령이 거절 의사를 분명하게 표했다고 합니다.

관심을 모았던 이태원참사특별법과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논의에서도 양측은 별반 진전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배석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이태원참사특별법은 사실상 거부했고,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선 비공개 회의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통령실 반응도 별로 탐탁치 않아 보입니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진행한 브리핑에서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30일 전날 열린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첫번째 회담에 대해 "협치로 나아갈 계기를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여당이 대통령실과 야당 소통에 가교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에는 '물밑에서 조율이 이뤄졌다'는 취지로 반박했습니다.

조국혁신당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 첫 영수회담에 대해 "결과물이 너무 초라하다"며 혹평했습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서면 논평을 통해 "합의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 종종 만나 대화하고 협의하자는 수준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29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을 바라보고 있다. 2024.04.29./뉴시스
29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을 바라보고 있다. 2024.04.29./뉴시스

결국 이날 회담은 이 대표가 국민을 대신해 윤 대통령에게 물었지만 대통령은 아무런 답이 없었으니 듣지 않은 게 됩니다.

민생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노심초사 양 지도자의 회담에서 무언가 한줄기 희망의 빛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봤지만 역시나 허무함에 씁쓸해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그렇지 불통 이미지가 변하겠어..' 소통의 문을 굳게 닫고 있는 대통령의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제 거의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공감을 위한 소통의 기본으로 첫 번째는 적극적인 경청 자세를 꼽습니다. 그저 수동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며 그 안에 숨겨진 의미 등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처럼 마련된 회담에서마저도 소통의 기본을 저버린 윤대통령의 소통 방식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소통의 기본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선 두 지도자가 만났지만 '민생지원금' 등 의제 대부분 협의가 불발됐고 '공동합의문' 도출도 없었다면서 성과는 '빈손'이었다고 비판의 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윤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대다수 국민들에게 각인되는 성과는 남았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