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자료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06.20.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자료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06.20.

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오늘(3일)은 세계 언론자유의 날(World Press Freedom Day)입니다. 

유네스코의 추천을 바탕으로, 지난 1993년 12월 UN 총회의 결정에 따라 매년 5월 3일을 '세계 언론자유의 날'로 정했습니다.

매년 5월 3일에는 표현의 자유권에 위배되는 것과 뉴스를 일반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죽음을 당하는 것과 구금되는 것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행사를 엽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언론 자유가 1년 사이에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라 언론자유의 날, 현재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짚어봅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경없는기자회(RSF)가 3일(현지시간) 공개한 '2024 세계 언론 자유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자유는 62위로, 작년 47위에서 15계단이나 떨어졌습니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시절 역대 최고인 31위(2006년)를 기록했으나 이명박 정부 때는 69위(2009년)로 하락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역대 최저인 70위(2016년)까지 떨어졌습니다. 아마도 내년쯤이면 윤석열 정부에서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울 지도 모릅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는 41~43위(2018~22년)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정권이 바뀐 지 불과 2년 만에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게 되는 결과를 곧 맞아하게 될까 우려됩니다.

RSF는 전 세계 180개국의 언론 자유 환경을 평가해 '좋음', '양호함', '문제 있음', '나쁨', '매우 나쁨'으로 분류하는 데 한국은 이탈리아(46위), 미국(55위), 일본(70위) 등과 함께 세 번째 그룹인 '문제 있음'에 속했다고 합니다. 

RSF는 "한국의 몇몇 언론사들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 위협을 받았다"고 지적하면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선두주자인 한국은 언론의 자유와 다원주의를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지만 기업과의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언론인들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평했습니다.

아울러 "한국 언론인은 때때로 온라인 괴롭힘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호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까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서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에서는 한국을 "민주화에서 독재화(autocratization)로의 전환이 진행되는 국가"중 한 곳으로 꼽았습니다.

V-Dem가 지난 3월 7일(현지시간) 발표한 '2024 민주주의 보고서'(Democracy Report 2024)에서 이 같이 분석하고 "다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back on a downward slope)"고 진단 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지수에서 0.60점으로 179개 나라 가운데 47위를 기록했습니다. 덴마크가 0.88점으로 1위, 스웨덴과 에스토니아, 스위스, 노르웨이 순으로 이웃나라 일본도 0.73점으로 30위였으며 예상대로 북한은 178위로 최하위권에 랭크됐습니다.

이 연구소는 지표의 하락세가 뚜렷한 나라를 독재화(autocratization)로 분류하는데 불행하게도 한국도 독재화가 진행 중인 42개 나라에 포함됐습니다.

특별히 한국을 들어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민주주의가 회복하는 사례로 소개했던 한국이 박근혜 전 대통령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지적한 것도 눈길을 끕니다. 나아가 "우익 보수 성향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한 뒤 전임 정권의 노력을 무력화했다"고도 평가했습니다.

또 연구소는 "인권 운동가 출신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을 박근혜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4년 단임제"라고 짚은 뒤 "윤대통령 취임 이후 전임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강압적인 처벌과 성평등에 대한 공격 등으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지수는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평가했습니다.

언론 자유 위축도 언급됐습니다. 한국은 언론의 대(對) 정부 비판이 위축된 나라 20개국 중 한 곳으로도 지목됐습니다. 보고서는 "한국과 그리스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는 일이 비단 가혹한 독재 국가 만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꼬집기고 했습니다.

이어 한국과 인도 같이 인구가 많거나 영향력이 있는 글로벌 강대국이 독재화하는 것은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미쳐 독재화 물결을 더욱 가속화한다"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언론의 자유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최근 윤석열 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방심위, 선방위의 MBC에 대한 표적 법정제재는 물론, 여권이 추진하는 언론 정책은 상반된 쪽으로 가고 있으니 걱정이 큽니다.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석사 졸업생이 축사 중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R&D 예산 복원 등을 요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하다 제지 당하고 있다. 2024.02.16./자료사진=뉴시스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석사 졸업생이 축사 중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R&D 예산 복원 등을 요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하다 제지 당하고 있다. 2024.02.16./자료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를 들어 이른바 '입틀막 정권'이란 유행어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는 윤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외교참사 보도, 김건희 여사 '도이치 주가 조작' 의혹 보도를 한 MBC, YTN 법정 제재 등에 따른 반작용 효과로 보입니다.

공개식장에서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던 진보당 의원이 사지가 들리고 입까지 틀어 막히며 경원들에 끌려 나갔던 장면, 카이스트 졸업식 장에서 연구개발 예산 삼감에 항의하는 졸업생의 입을 경호원들이 입을 틀어막았던 장면 등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외에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보도', 일기예보에서 미세먼지 수치 '1'을 파란색으로 보도,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비판 보도 등이 공정선거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30건에 달하는 무더기 법정 제재가 방송사에 가해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검찰은 4월30일 유시춘 EBS 이사장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KBS·MBC·EBS 공영방송 3사 이사들이 "윤석열 정권의 언론 말살 폭거"라며 규탄하고 나섰습니다. 

3사 이사회 야권 측 이사 14인은 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는 공영방송 탄압과 장악 음모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습니다. EBS에서 압수수색이 이뤄진 건 EBS 창사 이래 처음입니다.

원로 언론인 단체인 '언론비상시국회의'는 "윤 대통령의 막무가내 언론탄압은 총선 민심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반민주적 폭거"라고 규탄했습니다. 언론비상시국회의는 성명을 내고 "정권 차원의 언론탄압 기법은, 부하들은 악행을 저지르고 두목은 부인하는 역할분담으로, 조폭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범죄수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방심위를 앞세운 '편파 심의' 논란에 대해 "정부 독립 기관이 하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고, 비판 언론 압수수색과 관련해선 "언론 장악 방법을 알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시국회의는 "지금의 언론정책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자 남은 3년도 그 틀을 바꾸지 않겠다는 도발"이라고 비판하고 "평생 언론인으로서 민주화 후 가장 참담한 언론탄압을 눈앞에서 지켜본 우리는 윤 대통령의 뻔뻔한 거짓말과 후안무치한 둘러대기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시국회의는 "검찰의 막가파식 기자 압수수색, 검열기관화한 방심위·선방심위를 동원한 무더기 징계로 비판 언론을 옥죈 것에 대해 국민이 준엄히 심판을 했는데도 현 정권은 '입틀막' 언론탄압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을 '입틀막'해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며 "윤석열 정권의 무도한 언론탄압에 맞서 맨 앞에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첫 영수회담이 진행된 29일 대구 북구 유통단지 전자관에 진열된 TV를 통해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2024.04.29./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첫 영수회담이 진행된 29일 대구 북구 유통단지 전자관에 진열된 TV를 통해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2024.04.29./뉴시스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성사된 첫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입틀막(입을 틀어 막는다) 정권'이라는 비판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모두발언 초반부터 윤 대통령의 언론관과 표현의 자유를 문제 삼고 대통령을 향한 비판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상당히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지적으로 기선제압에 나선 셈입니다.

이날 장문의 모두발언을 준비한 이 대표는 우선순위로 예상치 않은 '언론관' 문제로 윤 대통령의 정곡을 찔렀습니다. 이 대표는 "정부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 중징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서 "보도를 이유로 기자·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매일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진 비공개회담에서도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관련 보도가 개인 명예훼손 명목으로 강제 수사된 적이 있느냐" "MBC 법적 제재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7건이 (법원에서) 모두 받아들여진 것을 아느냐"고 윤 대통령을 압박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보고받지 않았다" "가짜나 조작(보도)일 경우 국가업무 방해로 수사된 것 아니겠느냐"고 답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실제 장권 입맛에 안들게 보도한 기자들은 물론 언론사와  대표 자택까지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은 민주당의 주요 공격 포인트 중 하나임은 물론 시민사회단체나 언론단체들이 입을 모아 개탄해 합니다.

언론관으로 포문을 연 이 대표는 표현의 자유문제까지 확장해 "우리 국민들도 혹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거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는 세상이 됐다"면서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평가받던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 스웨덴 연구기관이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꼬집었습니다.

다행이도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에는 공식 기자회견이 있을 거라고 대통령실이 밝혔습니다. 이번에 하게 되면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1년 9개월 만에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하는 겁니다.

이도운 홍보수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하냐'는 질문에 "한다고 봐도 될 거 같다"고 답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언론 소통 강화를 위한 여러 방안 가운데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시기는 취임 2주년인 다음 달 10일 전후가 유력하며, 윤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이어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 될 거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했습니다.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게 되면 취임 후 두 번째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1년 9개월 만입니다.

"대통령에게 일문일답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50여 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하며 10명의 미국 대통령을 취재했던 전설적 여기자 헬렌 토마스(2013년 작고)가 남긴 유명한 언론관입니다. 그는 많은 대통령이 백악관 주인으로 왔다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 반세기 동안 대통령을 포함한 높고 막강한 권력자들을 쩔쩔매게 하는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에 앉아 공격적이고 단도직입적인, 이른바 '돌직구'를 던지던 그의 모습은 전세계인들에게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곤 했고, 현직 언론인에게는 살아 있는 교과서 역할을 했습니다.

노(老) 베테랑 여기자의 타계 소식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토머스는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많은 미국 대통령들을 긴장하도록 만들었다"고 애도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국내 언론에서도 50년 동안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을 취재했던 토머스 기자의 타계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룬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헬렌 토마스 기자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 언론의 현실, 특히 용산 대통령실을 둘러싼 언론 실상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나라의 언론환경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언론이 권력의 핵심에 얼마나 깊숙이 접근해, 그 권력을 상대로 얼마나 자유로이 취재하고, 그 결과를 얼마나 제대로 보도할 수 있는지는 언론자유의 보편적인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우리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언론이 대통통령과 대통령실을 대하는 저자세도 되돌아봐야할 것입니다. 미국처럼 대통령이 기자들과 수시로 일문일답을 주고받으며 국정의 주요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지난 총선 정국에서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선거 캠페인으로 돌풍을 몰고 왔던 조국혁신당의 외침에 지지자들이 소리 높여 외쳤던 변화에 대한 갈망도 떠오릅니다. 현재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 3년 안에 과연 이런 일이 현실로 이어질지도 주목됩니다.

그럼에도 송곳 질문을 던져 대통령을 쩔쩔매게 만드는 '한국판 헬렌 토마스 기자'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는 한낱 꿈에 불과한 일인지 언론의 날을 맞아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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