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섬, 보물섬’이라 불리는 제주도는 연간 1500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국내 최고의 관광지이다. 화산 분출로 형성된 검은 현무암이 섬 해안을 이루고,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듯 보이는 돌담들이 구불구불 이어져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 360여 개의 오름을 품에 안은 한라산의 부드러운 산세는 물결처럼 흘러 다시 바다와 만난다.

제주 인들에게 ‘바당(’바다‘를 이르는 제주어)’은 삶의 원천이자 안식이다. 척박한 땅에서 억척스럽게 살아온 제주 해녀들은 부지런히 ‘바당밭’에 누비면서 물질로 가족들의 생계를 지켜냈다. 물질을 마치고 물위로 올라와 거친 숨을 가쁘게 내쉬는 해녀의 숨비 소리는 죽음의 경계를 딛고 일어난 처절한 몸부림이자 삶에 의지다.

숨이 되고 쉼이 되었던 제주 바당이 점점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수용력이 초과된 생활하수는 오폐수로 바다에 흘러들어가고, 떠밀려 온 해양쓰레기는 바다 생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에 6월 8일 세계 해양의 날을 맞아 각자의 방식으로 바다를 지키며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들에게 제주 바당은 어떤 의미일까.

매년 6월 8일은 세계 해양의 날(World Oceans Day). 1992년 캐나다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 회의에서 제안, 유엔은 바다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국제 협력을 촉구하며 2009년부터 세계 기념일로 공식 인정했다. 2019년 주제는 ‘Together We Can'으로 공동의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바다는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꾸는 것 - ‘세이브 제주 바다’

세이브 제주 바다는 ‘깨끗한 제주 바다’와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제주’를 꿈꾸는 비영리단체다.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치 클린업(beach clean up 바다정화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텀블러 사용을 권장하는 환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서퍼를 주축으로 2018년 1월 결성됐다. SNS를 통해 참가자들을 모으고 제주 곳곳의 해안과 해안도로를 찾아 정화활동을 펼친다. 사전 신청 없이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모인 참가자들에게는 청소용품이 지원된다. 각자가 마실 개인 물병 지참은 필수. 쓰레기 절감을 위해 음식과 물은 따로 제공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비영리단체인 세이브제주바다는 2018년 1월부터 비치 클린업 활동을 전개해 왔다./사진=세이브제주바다
하루 2시간. 최대 80명의 인원이 참여하는 바다정화활동. 참가자들이 모은 쓰레기는 해당 지역 동사무소와 읍사무소에서 수거한다./사진=세이브제주바다

꾸준한 관심이 이어지면서 20~30명의 참여 인원이 최대 80명으로 늘었고, 월 1회의 정기 모임은 주 1회로 확대됐다. 제주도민과 여행객, 단체 참가자들은 물론 어린 아이부터 부모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하고 있으며, 두 시간 동안의 바다정화활동 뒤에는 참가자들이 짧은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생각보다 많은 쓰레기양에 놀라움과 아쉬움을 전하는 참가자들이 많다.

세이브 제주 바다는 활동 그 자체보다 각자의 인식을 바꾸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당장의 성과가 아닌 꾸준히 장기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목표다. 하루 쓰레기 3개 줍기, 텀블러 챙기기, 시장바구니 사용하기 등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환경 보호 방법을 퍼뜨리고 있으며, 도내 초중고 학생들에게 해양 쓰레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환경 교육도 준비 중이다.

(한주영 세이브 제주 바다 대표)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일회용품을 들고 사진을 찍어요. 제주의 아름다움을 소비만 하고, 정작 그 아름다움을 지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제주 바다는 엄마 같은 존재거든요. 바다를 지키는 작은 단체들이 알려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 바다를 아끼고 사랑하는 활동에 동참하길 바랍니다.”

세이브제주바다는 개인 머그컵 사용 고객에게 할인을 해 주는 도내 카페에 세이브제주바다 스티커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벌여왔다./사진=세이브제주바다
6월 비치 클린업 일정/ 사진=세이브제주바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의미 있는 유산, 제주 바당 - ‘수원리 올레바당체험마을’

제주도 한림읍 수원리는 아홉 마리 새끼용의 전설이 전해오는 마을의 상징 구룡석과 용암이 바다로 흘러들어 굳은 돌바다밭, 주민 삶의 터전이었던 옛 샘터 용천수가 남아 있는 곳이다. 제주올레 15코스가 지나는 대수포구는 비양도를 마주하고, 아름다운 해안절경과 바다 위로 붉은 해가 떨어지는 명품 일몰을 감상할 수도 있다.

애초에 이곳은 조용한 마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당시 마을 이장은 전형적인 반농반어촌인 수원리를 알리기 위한 방안으로 제주의 전통 통나무배인 ‘테우 복원’을 계획했다. 제작 방법이 소실됐던 테우는 마을 이장과 주민들의 노력과 열정 끝에 재현에 성공, 수원리 앞바다에 띄어졌고, 도내 중간지원조직의 홍보가 뒷받침되면서 수원리는 성공적인 마을기업으로 거듭났다.

2012년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앤씨푸드 영어조합법인)에 선정된 후, 2013년에는 농어촌휴양마을로 지정됐다. 오직 제주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테우 배, 가두리 낚시 체험이 가족여행객들의 발길을 끌어모은다.

마을기업 앤씨푸드 영어조합법인이 운영하고 있는 제주올레바당체험마을은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에 위치한다./사진=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주의 전통 배 테우/사진=제주관광공사

올레바당체험마을의 참가비는 1인당 1만원이며 전화 예약은 필수다. 무엇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제주 전통의 테우 낚시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크다. ‘가두리 낚시’는 바닷가 바로 옆에 테우를 묶어 놓고 바다로 통하는 가두리 그물에 고기를 풀어 낚아내는 방식이다. 어린 아이와 초보자도 쉽게 낚시의 손맛을 느낄 수 있어 관광객들의 호응이 높다. 수익금 중 일부는 꾸준히 학교와 지역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이해은 올레바당체험마을 대표) 마을을 살리는 건 꼭 땅을 파고 집을 짓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마을 자원을 활용해서 이야기 거리를 만들었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이 소중한 자원을 다음 세대들이 짊어지고 갈 수 있도록 우리가 지켜줘야 하잖아요. 혼자서는 안돼요. 함께 나서야 해요. 그래야 아름다운 제주의 바당을 그들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어요.”

수원리 연안 바다에 정박해 놓은 배 위에 즐기는 테우 낚시는 누구나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체험 거리다./ 사진=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바다로 통하는 그물망에 던져 놓은 고기를 낚는 '가두리 낚시'체험/ 사진=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돌고래와 인간의 공존 전략은? 최소한의 서식지 지키기 - ‘핫핑크돌핀스 제주돌핀센터’

제주도 남서쪽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와 일과리 사이 해안 도로인 노을해안로를 따라 가다 보면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특별한 감동을 선물 받을 수도 있다. 대정읍 연안에서 서식하고 있는 남방큰고래들이 해안도로 200m 이내에 출몰하는 광경을 육안으로 쉽게 관찰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방큰돌고래는 인도양과 서태평양 열대 및 온대 바다의 연안에 분포하는 중형 돌고래다. 몸길이 2.6m, 몸무게 230kg으로 등 쪽은 어두운 회색이고 배 쪽은 등 쪽보다 밝은 회색이다. 우리나라의 겨우 제주 바다에서만 120 마리 정도가 서식한다. 제주도 전 연안에 분포하던 남방큰돌고래는 곳곳의 개발에 떠밀려 2016년부터 이곳 대정읍에 터를 잡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2018년 10월 남방큰돌고래들의 주요 서식처인 신도리 앞바다 인근에 국내 최초 육상형 돌고래 관찰센터인 ‘제주돌핀센터’를 열었다. 해양 관련 도서 전시 공간인 돌고래 도서관과 해양생태감수성 교육을 위한 바다 배움터, 텃밭 놀이터, 사무국 등이 들어서 있고, 사람과 돌고래의 공존을 위한 다양한 생태환경운동을 전개 중이다.

서귀포시 대정읍에 서식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무리. 노은해안로를 천천히 거닐다보면 연안에 출몰한 남방큰돌고래들을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다./사진=고래연구소
제주 대정읍 앞바다의 너럭바위에서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는 모습/ 사진=핫핑크돌핀스

지난 3월 환경 교육의 일환으로 바다쓰레기를 줍던 ‘제주바다친구들’은 가장 많은 쓰레기가 발견된 제품을 만든 기업 4곳을 선정했다. 아이들은 수거한 쓰레기와 손편지를 기업에 보냈다. 자연 분해가 가능한 재질로 제품을 만들고, 바다 쓰레기 심각성을 알리는 문구를 제품에 실어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달 뒤 코카콜라 지역사회 환경담당자는 2030년까지 전세계에서 판매된 모든 음료용기를 100% 수거하고 재활용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당장의 결과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2012년 정부는 멸종위기동물인 남방큰돌고래를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했지만 7년간 개체 수기 증가되기는커녕 유지만 되고 있는 실정예요. 제주도는 현재 돌고래들의 서식지 한 가운데 18개의 큰 바람개비를 짓는 대정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주 바당은 섬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근간입니다. 돌고래들과 인간이 최소한의 영역을 지키고 살아야 제주 바당이 건강해지고, 제주 사람들의 삶도 건강해진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제주바다친구들'이 코카콜라 사에 택배로 보낸 쓰레기와 손편지/ 사진=핫핑크돌핀스
2018년 10월 공식 개관한 핫핑크돌핀스 제주돌핀센터는 시민참여형 해양생태감수성 교육과 돌고래 서식지 보호를 위한 감시활동을 전개하고 있다./사진=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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