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관련 법 제정의 필요성을 동의 받아야 할 단계는 지났습니다. 사회적 가치 실현은 지금 이 시대의 요구입니다.”

민형배(광주 광산을·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18일 국회 의원회관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경제 관련 법률안에 대해 이 같이 단호하게 답했다. 민 의원의 자신감 있는 이 발언은 공허한 얘기가 아니라 오래된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광산구청장 재직 시절 ‘제3기 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회장을 맡아,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번 선거에 전국 최다 득표율 84%를 기록하며 국회 입성했다. 행정경험과 지역구민의 힘을 모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 이날 인터뷰에는 하재찬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지역위원장이 배석했다.

“지방정부에게 힘을 싣고 지방정부 중심의 사회적경제 거버넌스를 조직 및 지원해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산업·농업 등 지역의 분야별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사회적경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2선 구청장 출신인 민 의원은 사회적경제를 통한 지방균형발전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의 자발적인 사회적경제 활동 사례로는 에너지자립마을 '성대골'을 들었다.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고 생산하는 공동체다. ‘마을닷살림협동조합’, ‘성대골 에너지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조직들이 활동 중이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접한 계기로 에너지마을을 주도한 김소영 대표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천한 인물로 국내외 언론에 소개됐다. 민 의원은 “가능성 있는 사회적경제 사업 시도와 이를 이끄는 인재를 지원해주는 인력 육성법, 이른바 '김소영활동가지원법' 혹은 '사회적해봐야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의원은 광주 현안인 ‘광주형 일자리’도 언급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사회적 대타협을 기반으로, 기업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에 근로자를 고용해 그만큼 일자리 숫자를 늘리고, 낮은 임금에 대한 소득 부족분은 정부와 지자체가 후생 복지비용으로 지원하는 형태다. 현 정부가 대표적인 상생형 일자리 모델로 추진하는 중이다. 작년 광주와 현대자동차가 완성차 합작법인 설립에 합의해 첫발을 내딛었지만, 노·사·민·정 타협이 어려워 협약이 파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근 정부 제1호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최종 선정되며 다시 탄력을 받았다. 그는 “전통적인 노사관계와 차별화하고 진정한 의미를 달성하려면 광주형 일자리는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며 “노동자들이 회사의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 방식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형배 광주 광산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지켜왔던 가치보다 공생과 연대를 중심으로 자본이 아닌 사람 중심의, 개인의 역량이 아닌 공동체 중심의 사고와 태도를 배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진=유주성 인턴기자

다음은 사회적경제 10대 공약 실현을 다짐한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Q. 사회적경제가 가지는 역할이나 기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소외되는 영역을 사회적으로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기존의 이분법적 접근방식, 즉 시장을 통한 접근(private approach) 아니면 공공적 접근(public approach)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사회적경제는 시장과 정부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메울 수 있다.

돌봄서비스를 예로 들어본다면, 이제는 가족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시장에서 구매할 수도 있지만, 돌봄은 구매역량이 없더라도 제공받아야 하는 필수재다. 정부는 돌봄서비스에 대한 공공비중을 제고하는 데 노력을 다하지만 전체 서비스의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주택 영역도 마찬가지다. 주택은 개발사와 건설사의 이윤을 보장하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구매되고, 공공주택은 5% 미만으로 제공된다. 정부의 제한된 재정은 공공서비스 비중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스웨덴은 전체 주택의 17%, 노르웨이는 전체 주택의 15%를 주택협동조합을 통해 공급한다. 영국·독일·미국·캐나다 등에서는 주택개발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주택사회단체가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주택을 공급한다.

또한 ‘사회적경제’ 개념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로는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의 필요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졌다. 자조적인 경제조직이 많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경제의 효율이 아니라 부의 분배나 사회 정의를 목적에 둔다. 시민으로서의 자긍심과 역량 함양, 사람들 사이의 장기적인 관계·상호성·신뢰 등을 증진할 사업방식을 개발한다. 사회적 논리가 경제영역에서도 실현된다고 보는 관점은 경제사회학자 칼 폴라니의 언어를 빌리자면, ‘살림살이’로서의 경제, ‘연대’로서의 사회, 규범적 기준으로서의 ‘좋은 삶’을 개인이 누릴 수 있도록 한다.

 

Q. 사회적경제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민 동의가 필요하다. 필요성을 어떻게 동의 받을 수 있을까?

- 사회적경제 관련 법 제정의 필요성을 동의 받아야 할 단계는 지났다. 사회적경제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사회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체제로 이미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 빈민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적경제의 맹아라 할 소규모 노동자협동조합이 등장했고, 1996년에는 정부 차원에서 다섯 곳의 자활지원센터를 설립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경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확산됐다.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16개 지자체는 사회적경제에 관한 기본조례나 육성·지원 조례 등 자치법률을제정해 운영 중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배제한 영역을 메꾸며 성장해온 사회적경제 영역은 영리와 비영리, 민법과 상법을 엄격히 구분하는 기존의 법체계로는 그 다양한 이슈를 포괄할 수 없다. 사회적경제가 지방정부 단체장의 의지와 정책에 의존해 사업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현재, 법률적 근거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경제는 이미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 이미 준비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방정부에 힘을 분배해야 한다. 지역에 맞는 특성화된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한 데 모여 성공사례를 나누고 보완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지난 국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통과되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보는지.

-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발의했을 때, 여야가 모두 법안을 제시하고 입법에 동의한 초당파적인 민생 법안으로 주목 받았다. 이후 상임위원회에 상정됐으나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당시 새누리당이 금융전문가들 중심으로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을 작성한 것과는 달리, 새정치연합은 사회적경제 현장 간담회를 통해 법안의 내용을 구성했다. 그럼에도 법 제정에 실패한 건 사회적경제 주체들의 요구가 아닌 정당 제안으로 시작돼 이해가 부족해서다. 지역사회에 안착할 수 있는 시민적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 채 지원중심으로 설계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대 국회에서도 재발의 됐지만,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한 법’이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사회적경제라는 별도의 법적 근거가 필요한가, 기존 경제와 무엇이 다른가 등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에 통과하려면 당을 초월하는 형태의 사회적경제 기구가 출범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법안은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기본법 성격에 맞춰 간결화하고 통과된 이후 관련법들을 보완할 수 있다.

2018년 진행된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4기 출범식 현장. 광산구청장 재직 시절 협의회 3기 회장을 맡았던 민형배 의원(오른쪽, 당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자치발전 비서관)은 이날 공로패를 받았다. 사진=전석병 작가

Q. 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다. 국회의원으로서 사회적경제기본법 통과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예정인가.

- 21대 국회의원 공약으로 ‘사회적경제 선도 도시 광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회적경제 혁신타운 유치를 제시했다. 광주는 인구 10만명당 사회적경제기업 수가 70.9개다. 전국 평균 39.3개의 2배에 가깝다. 광주의 다양한 사회적경제 주체와 지원조직이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고 인적·물리적 자원을 공유한다면 지역사회와 공동체와 더 많은 혜택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의 이러한 노력들이 주변화 되지 않으려면 법제화가 필요하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발의할 수 있도록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에서부터 함께 노력했던 지자체장 출신 당선인들과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 그동안 뜻을 모아왔던 의원들 중심으로 구심력을 키우고,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의 공감대를 다른 당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로의 토론과 간담회를 열 것이다.

 

Q. 사회적경제기본법이 통과되면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 부작용도 있을까?

- 사회적경제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이를 확산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된다. 지난 10여 년간 사회적경제는 정부의 사회 정책과 경제 정책을 보완하고, 자본 중심의 기업 활동이 포괄하지 못하거나 간과해온 영역을 보완해왔다. 법 제정으로 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고유한 속성을 규범화할 수 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 소셜벤처 등으로 세분화된 사회적경제조직을 포괄할 법적 근거도 생긴다. 이를 바탕으로 통합된 정책 기반이 마련된다면 개별 조직 간 다양한 연대조직화를 유도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정부 주도가 아니라 자조와 협동, 연대를 기초로 민간 역량을 강화할 제도적 장치들도 마련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를 통해 경제공동체만이 아니라 생활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시민의 선택지를 넓혀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풍토를 이끌어낼 수 있다.

정착과정에서 진통이 있을 수 있다. 부작용까지는 우려하지 않는다. 부작용을 말하는 사람들은 사회적경제가 반자본적, 반사회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적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이라고들 말한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게 최우선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시민들은 ‘사회’라는 의미를 다시금 인식하게 됐다. ‘네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거다. 이번 사태로 사회구성의 근본원리가 변화하리라 예상한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자리 잡도록 제도적 뒷받침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민형배 의원은 사회적경제에 기반한 그린뉴딜을 강조하며, 그중에서도 에너지 분야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사진=유주성 인턴기자

민형배 의원은 사회적경제기본법 발의를 다짐하며, 뒤에서 사회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미래를 견인하는 법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한 하재찬 지역위원장은 "민 의원이 사회적경제기본법 입법이나 인재양성 노력, 그린뉴딜 활성화 등에 적극적이고 관점이 명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며 "광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듯, 국회에서도 사회적경제를 선도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민형배 의원이 걸어온 길>

 

  • 전남일보 기자
  • 참여자치21 대표·운영위원장
  •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인사관리행정관·국정홍보행정관·사회조정비서관
  • 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장
  • 민선 5·6기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
  • 문재인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비서관·자치발전비서관
  • (현) 제21대 국회의원

 

[편집자주] 5월 30일 제21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제1호 법안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사회적경제 3법 중 하나로,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와 사회적경제활성화전국네트워크(이하 전국네트워크)가 지난 3월 내놓은 사회적경제 정책 10대 요구안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연대회의와 전국네트워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는 당시 ‘4.15총선 사회적경제 매니페스토 실천운동’에 나서 후보자 77명의 참여를 유도하고, 10대 공약 요구안에 대한 약속을 얻어냈다. 

이제는 실천에 옮길 차례다. 이로운넷은 연대회의, 전국네트워크와 함께 공약 실천을 선언한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찾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어떤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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