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묻는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과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가치를 모색하는 토론회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기본법(이하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 지난 10월 26일 박광온 의원의 대표 발의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규정하고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를 증진하도록 독려하는 이 법안은 2014년 6월 당시 문재인 의원이 19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했으나 회기 종료로 폐기되었다가 2016년 8월 20대 국회에서 김경수 의원이 다시 대표 발의했다. 새정부 들어 이 법안은 정부 대안 검토 작업을 거쳐 박광온 의원의 대표 발의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14일 열린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과 민간 부문 사회적 가치 증진을 위한 토론회’는 이 법안 발의를 계기로 기업, 시민사회, 지방정부, 학계, 언론계가 모여 한국사회에 필요한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민형배 회장(왼쪽)과 여시재 이광재 원장 토론회를 주관한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민형배 회장(광주 광산구청장)은 환영사를 통해 “지방정부를 포함한 공공 부문의 존재 가치는 공공서비스의 제공을 통한 시민의 복리증진, 사회적 가치의 실천이지만 그동안 한국의 공공 부문은 경제적 효율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적 가치 실천에 소극적인 경우도 많았다”며 “지방정부의 수장으로서 다양한 혁신 정책을 펼쳐왔지만, 기본의 법과 제도가 선도적인 실험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점이 늘 아쉬웠고, 사회적 가치 기본법 제정을 위해 지방정부협의회가 힘을 보태온 것도 현장에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동 주관 기관인 (재)여시재 이광재 원장은 “사회적 가치는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야 하고, 공공기관에는 당연히 사회적 가치가 스며들어야 한다”며 “사회적 가치 기본법은 공공기관 운영 원리를 새롭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지만 사회적 토론의 장을 열었다는 데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박석범 사무총장은 축사에서 “최근 우리 사회가 사회적 가치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로 노력하고, 정부 주도 하에 이를 사회 전반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라며 “우리 정부를 포함한 193개 유엔 회원국이 2015년 만장일치로 채택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와 그 궤를 함께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토론회는 지방정부, 민간기관, 사회적경제 조직, 학계, 언론계를 대표해 여러 패널이 참석해 사회적 가치 기본법 발의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 요구되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패널 토론에 앞서 양동수 사회적경제법센터 더함 변호사가 주제 발표를 했다. 주제 발표 내용과 패널 토론의 주요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_ 양동수(사회적경제법센터 더함 변호사)
세계는 빈부격차, 고용불안, 고령화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 및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한국은 지난 10년간 정부신뢰도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인 24%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부패인식지수는 176개국 중 52위이다. 2016~2017년 촛불시민혁명은 국가, 정부, 공공에 대한 존재 이유를 묻는 국민의 질문이자 고발장이다.
사회전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성, 연대성, 사회적 가치 지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 부문은 가장 먼저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적인 변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국내외 논의 현황
해외에서는 2010년 유럽연합이 ‘사회책임조달 가이드라인’을 수립했고, 독일(경쟁제한법), 영국(사회적 가치법)도 사회적 가치 구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유엔은 2015년에 2030년까지 달성할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채택했다. ISO(국제표준기구)는 2010년 세계인권선언, ILO협약, 기후변화협약 등 국제지침들을 총망라한 ‘사회적 책임의 국제이행 지침’으로 ‘ISO 26000’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사회적기업 육성법,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 이후 사회적 가치 기본법, 사회적경제 기본법, 사회적경제 기업 제품의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이 발의된 상태다.
민간 부문에서는 사회적경제 기업을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의 실현 및 확산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책임경영, 사회적 금융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공 부문에서는 정책을 시행, 평가하는 데 사회적 가치에 관한 요소가 고려되었지만 환경 영향, 인권 영향, 지속가능발전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통합되지 않고 분산되어 집중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 주요 내용
이번에 발의된 사회적 가치 기본법은 사회적 가치의 정의, 공공기관의 책무와 역할, 기본 계획 및 지역별 추진 계획, 연도별 시행 계획, 사회적 가치 성과 평가 등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사향을 법제화했다. 수범자(受範者)인 공공기관이 조달, 위임, 위탁시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도록 제도화했고, 이후 관련 법령 개정의 근거가 되는 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사회적 가치를 ‘사회, 경제, 환경,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로 정의하고 다음의 13가지를 제시했다.
1.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 권리로서 인권의 보호
2. 재난과 사고로부터 안전한 근로, 생활 환경의 유지
3. 건강한 생활이 가능한 보건 복지의 제공
4. 노동권의 보장과 근로 조건의 향상
5.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회 제공과 사회 통합
6. 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상생과 협력
7.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8. 지역사회 활성화와 공동체 복원
9. 경제 활동을 통한 이익이 지역에 순환되는 지역경제 공헌
10. 윤리적 생산과 유통을 포함한 기업의 자발적인 사회적 책임 이행
11. 환경의 지속가능성 보전
12. 시민적 권리로서 민주적 의사 결정과 참여의 실현
13. 그 밖의 공동체의 이익실현과 공공성 강화
공공기관의 책무는 4가지이다.
1.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관계 법령 및 조례의 제정 및 개정, 폐지 등
2.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조직의 정비 등
3.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시책의 수립 및 시행
4. 정책 등의 수립, 시행, 평가에 있어 사회적 가치의 고려
사회적 가치 기본법은 공공이 수범자가 되어 사회적 가치를 실현, 확산을 유도하는 마중물로서의 의미가 크다. 사회적경제, 시장과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패널토론]공공기관 평가와 사회적 가치 실현방안
_ 라영재(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평가연구팀장)
공공기관은 1984년부터 정부가 직접 경영실적을 평가하고 있고, 2010년 이후 평가지표 체계에 사회적 책임과 같은 내용이 추가되었으나 기본적으로 경영, 사업효율성 중심의 평가지표 체계이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회적, 환경적 성과지표의 균형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평가지표 체계로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현 정부가 국정과제화 한 이유는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더 강화해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중앙과 지역의 양극화 등을 해소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감독자, 선도자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공공기관이 민간기업보다 인권, 안전, 동반성장, 지역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주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업 CSR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 ①
_ 하상우(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
우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경향에서 보다 적극적이며 혁신의 기회로 삼으려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조직에서 나오는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의 관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의 CSR 활동이 일방적 사회공헌활동 수준에서 전략적 사회책임 경영, 나아가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임금격차 해소는 기업의 중요한 사회적 가치이다.
이를 어떻게 달성하느냐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를 균형 있게 수렴하는 과정이 있어야 진정한 사회적 가치로서 우리 사회에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왼쪽)과 이은경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