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면 생각이 모이고, 생각이 모이면 사상이 모이고, 사상이 모이면 세상을 바꾼다.”

이광재 의원(강원 원주시갑·더불어민주당)이 내민 명함 안에는 “세상을 바꾸려면 사람들이 만나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회적경제가 활성화하려면 지역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문구였다. 

17·18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10년 만에 다시 21대 국회에 입성한 이 의원을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643호에서 만났다. 그는 “디지털 경제가 진화하며 일자리와 소득이 불안정해지는 상황 속에서 자본주의 외에 새로운 모델에 관심이 생겼고, 협력과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적경제 분야에 눈을 뜨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광재 의원(강원 원주시갑·더불어민주당)을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643호에서 만났다./사=진재성 인턴기자

198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일 때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 의원은 2003년 참여정부 출범 당시 만 38살에 국정상황실장을 맡을 만큼 ‘키맨’으로 통했다. 자신의 고향인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2010년 강원도지사에 당선되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서 이듬해 지사직을 상실했다.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됐지만 지난해 12월 사면복권 대상자에 포함되면서 이번 21대 총선에 출마했고, 원주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정계에 재입성했다.

이 의원은 앞서 국가 미래전략을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與時齋)’를 이끌며 ‘세계의 변화, 지속가능성, 디지털 사회, 새로운 가치’ 등을 주제로 연구에 몰두했다. 지난 3월 후보 시절 ‘사회적경제 매니페스토’에 서약한 그는 여시재에서 구상한 다양한 생각들을 사회적경제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조금씩 확장하는 중이다.


다음은 사회적경제 10대 공약 실현을 다짐한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Q. 원주는 ‘협동조합의 메카’로도 불릴 만큼, 일찍이 사회적경제가 발달한 지역이다. 향후 원주를 사회적경제 선도도시로 키워나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 원주는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일찍이 신협이 발달한 지역이다. 사회적경제 선도도시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금융 시스템’이 잘 정착돼야 한다. 현재 운영되는 협동조합을 들여다보면 너무 영세한 곳들이 많다. 기업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재원과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협이 사회적경제 기업이 활동할 때 필요한 재원과 컨설팅을 담당하는 대표 금융기관으로 지정받아 전문적 금융기법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페인에 방문했을 때, 길거리에서 복권을 팔던 장애인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금융·컨설팅 전문가들이 나서 복권 판매업을 함께 설계한 것이었다. 복권판매 단체는 ‘장애인을 고용할 것’ ‘이익이 날 것’이라는 2가지 원칙에 따라 조직을 운영한다. 사회적경제는 이처럼 사회적약자를 돌보는 ‘사회’뿐만 아니라 이익이 창출되는 ‘경제’가 함께 가는 방향성이 필요하다.

또한 ‘신협’과 ‘한살림생협’이라는 주요 조직 2곳의 거점을 원주에 두고, 지역 안팎으로 사회적경제를 확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조성하려는 사회적경제 혁신타운을 내년 원주 옛 우산동 시외버스터미널 부지에 조성하려고 추진 중이다. 타운 안에 신협과 한살림이 기본적으로 들어가고,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과 사회적경제로 협업 가능한 사업을 늘려가는 구상을 하고 있다.

지난 4.15 총선 당시 '사회적경제 매니페스토 실천서약'에 나선 이광재 의원의 모습. ./사진제공=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Q. ‘미스터 강원도’라는 수식어로 활동할 만큼, 강원도에 대한 애정이 크다. 강원의 지역문제를 사회적경제 방법으로 해결할 아이디어가 있다면?

▶거듭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사회’뿐만 아니라 ‘경제’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원주 지역 내 사회적경제 조직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영세한 기업들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영세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전문적 컨설팅이 필요하다, 둘째 시장의 규모를 키워 규모화·전국화해야 한다. 단순 아이디어가 아닌, 금융과 컨설팅이 뒷받침돼야만 성장해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원도에는 펜션이 많은데, 수요가 몰리는 시점에 한철 장사를 하다 보니 고비용 구조다. 펜션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한계에 부딪히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일본 유명 관광지의 숙소를 보면, 침대 시트나 이불이 다 똑같고 화장실 구조도 비슷한 형태다. 만약 강원도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이부자리를 규격화해 생산하고, 화장실도 전문적으로 청소해 관리하고, 관광 예약·결제 시스템도 직접 운영한다면 훨씬 이윤이 나는 산업 구조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많은 도민들이 농업에 종사하는데, 농산물을 유통할 온라인 시스템이 부족하다. 사회적경제 기업에서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할 ‘스마트 상점’을 열어 시장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면 어떨까. 이같은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면 상당히 전문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 때문에 혁신타운을 각 지역 대학 내 설립하는 게 좋은데, 그렇지 않더라도 타운과 대학이 적극 협업해야 한다. 향후 대학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혁신적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더욱 요구받게 될 것이다.

Q. 최근 K뉴딜위원회 디지털분과위원장을 맡았다. 정부가 ‘K뉴딜’ 핵심으로 내세운 ‘디지털·그린·휴먼’이 사회적경제의 방향성과 근본적으로 같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디지털 선도국가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대도시·고비용·소유’ 중심으로 가서는 살기가 너무 어렵다. 인간에게 돈이 필요한 이유는 어떤 제품을 소유하거나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서인데,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하기엔 제약이 있다. 

이러한 한계를 ‘공동체·협동조합’ 방식이 보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역 내 공동체에서 돌봄·교육 같은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여러 사람들의 가치를 한데 모아 교환하는 것이다. 이를 ‘사회적 도토리 운동’이라 칭하고 싶다. 헌혈을 하거나 돌봄에 참여하는 등 사회 기여 활동을 하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로 교환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욕구가 점점 다양해지는 만큼, 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충족할 방법도 확장돼야 한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쓰지 않는 상가와 사무실 등이 늘어나고 있는데, 빈 공간을 동네 사람들이 교류하는 메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일례로 각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가 오후 3시면 비는데, 학생들이 하교한 뒤에는 주민들이 강좌도 듣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문화센터나 체육관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공간을 ‘복합화’해 공유한다면,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늘어나고 결국 사회적경제가 더 활발해질 거라고 본다.

K뉴딜위원회 디지털분과위원장을 맡은 이광재 의원은 "향후 플랫폼을 중심으로 산업이 돌아갈텐데, 시민 주도로 한 '협동조합형 플랫폼'을 만들어 이익을 공유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뉴딜'도 시민들을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사진제공=이광재 의원실

Q. 사회적경제와 지역을 떼놓을 수 없으며, 10대 공약에도 ‘사회적경제 조직을 통한 지방 균형 발전’이 담겼다. ‘수도권 분산과 지방 살리기’를 위해 특별히 노력 중인데, 핵심은 무엇인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이 지역의 혁신도시를 활성화해 기업들이 거점을 만드는 것이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삶의 질이 높은 곳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지금처럼 모두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와 살기를 바란다면, 부동산을 비롯해 점점 더 치솟는 고비용 사회를 견딜 수 없게 된다. 투자를 통해 지역을 살고 싶은 곳으로 먼저 만들어놓아야 시민들이 지역에 갈 만한 동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현 시점이 수도권 분산을 이끌고 지방 소멸을 막는 도전이 가능한 때라고 본다. 디지털 기반으로 배우고 일하는 사회에서는 꼭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좋은 교육을 받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핵심 산업은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EBS를 온라인 학교로 만들고 ‘교육판 넷플릭스’를 구축해 질 좋은 교육 콘텐츠를 언제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주거·교통·교육·문화에서 비용을 줄이면서도 경쟁력과 역량을 강화하는 저비용 사회로 나아갈 거라고 본다. 한 번 낙오하면 실패로 끝나는 수직형 사다리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승자가 나올 수 있는 그물형 사다리를 만드는 일도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이광재 의원은 '사회적경제 기본법' 제정에 동의를 표하면서 "기본법의 선언적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핵심 솔루션에 천착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기본법 안에 '금융'에 관한 내용이 담겨야 사회와 경제가 동시에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사진=진재성 인턴기자

 

<이광재 의원이 걸어온 길>

• 국회의원 노무현 보좌관(1988)
•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2003)
• 제17·18대 국회의원(2004~2010)
• 제35대 강원도 도지사(2010)
• 재단법인 여시재 부원장(2016)
• 재단법인 여시재 원장(2017)
• (현) 제21대 국회의원
• (현)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포스트코로나본부장

 

<편집자주>

5월 30일 제21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제1호 법안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사회적경제 3법 중 하나로,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와 사회적경제활성화전국네트워크(이하 전국네트워크)가 지난 3월 내놓은 사회적경제 정책 10대 요구안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연대회의와 전국네트워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는 당시 ‘4.15총선 사회적경제 매니페스토 실천운동’에 나서 후보자 77명의 참여를 유도하고, 10대 공약 요구안에 대한 약속을 얻어냈다. 

이제는 실천에 옮길 차례다. 이로운넷은 연대회의, 전국네트워크와 함께 공약 실천을 선언한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찾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어떤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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