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웃고 말에 운다. 말에 울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고 싶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첫 책이 나오고 얼마 안 됐을 무렵이다. 여행하며 글을 쓰는 일이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사는 일이기도 하다가 누군가에겐 현실 감각 없이 돌아 다니는 한심스러운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집안이 여유로워 저런 걸 거야. 우리 집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말은 견딜만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거냐며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는 친척의 말. 우리 집 형편을 아는 사람이 건네는 말은 견디기 힘들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아빠, 엄마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나날이 마음은 갑갑해졌다. 다시 떠나야 할 때가 온 건가 싶었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거나 마음을 괴롭히면 내 선택은 언제나 그 사람을 영영 안 보는 쪽을 택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그렇게 떠났다. 상황을 벗어나니 마음은 한결 홀가분했다. 하지만 때때로 후회가 되기도 했다. 고향을 떠날 결심에 이르렀을 무렵. 또 무모한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막상 어디로 떠나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했다. 그때 발견한 공고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청년혁신가 모집요강이다.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가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청년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뭔가 마음이 꿈틀댔다. 한 번만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책 <뷰레이크타임>을 기반으로, 강원도를 다시 보는 여행을 혼자가 아닌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청년혁신가로 선발되었다는 연락에 움츠러든 마음이 기지개를 켰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와 인연이 시작된 2017년 봄.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다. 18개 시군에서 일당백을 하는 또래 청년들을 만났다. 한마디 말에서 열 마디를 읽어주는 사람들이었다. 낯선 지역들이 사람으로 기억되며 친근해졌다. 서로를 지지해주는 인연으로 여전히 이어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주는 어른들을 만난 것 또한 최고의 선물이다. 한종호 센터장님, 이선철 대표님, 이경모 대표님, 곽현정 대표님은 허물없이 마음을 터주고 길을 터주었다. 단발적인 사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한 해 한 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끊임없이 봐주고 마음을 써주셨다.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함없다. 지역에서 살아갈 힘을 더해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성장촉진제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늘 부족하기만 하다. 가장 큰 보답은 그런 어른으로 성장해 그런 마음을 베푸는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LCC(Local Creator Conference) 2019’ 행사가 춘천에서 열렸다. 지난 5년 동안 센터와 인연을 맺은 101명의 강원도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컨퍼런스다. 지역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매일매일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인 것만으로 마음을 든든히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공유, 연대, 성장’이란 키워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서로가 잘 되길 빌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지역을 아름답게 그려나가는데 가장 큰 힘이 되는 보약이다. 말 보약을 서로 주고받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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