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교육지원청에서 학부모지원전문가로 하는 일은 대부분 학부모들의 ‘소통’을 돕는 거다. ‘수다방’, ‘사랑방’, ‘학습공동체’, ‘워크숍’, ‘사람책’ 등, 때에 따라 다른 이름과 형태로 기획한다. 이 모든 자리는 ‘잘 소통해서 서로 배우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만남’이자 ‘통로’이자 ‘장치’다.
오랫동안 교육지원청에서 학부모들을 초대한 자리는 일방적이고 권위적이었다. 학교를 통해 몇몇 학부모들에게만 정보가 전해졌고, 불려온 학부모들은 등록부에 사인을 하고난 뒤 권위있는(?) 강사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가 자리를 뜨곤 했다. 심지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가라고 해서 그냥 참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경남 지역에서 그런 분위기가 조금 바뀌기 시작한 건 2014년 교육감 공약사항으로 ‘학부모네트워크’라는 수평적 조직이 생겨나고 ‘교육감과 함께하는 경남교육 사랑방’이라는 직접 소통 기회들이 열리면서부터다. 모두가 접근 가능한 판이 열리고 ‘내용’들이 필요하게 되자 비로소 ‘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모들이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거다(물론 정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학부모들에게 ‘무상급식[의무급식] 운동’의 계기를 준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2
그 즈음 시골 작은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모들과 무겁지 않으면서 재미난 일들을 벌이고, 그 활동에 하나 둘 마음을 여는 학부모들을 만났다. 더디지만 매우 짜릿했다. 아이들과 꾸준히 그림책을 읽고, 장터를 열어보고, 놀이터 아지트를 만들고, 함께 뒹굴뒹굴하며 캠핑한 모든 활동이 아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제일 성장한 건 결국 활동가이자 학부모인 나였다. 당시 활동들을 밑거름 삼아 지금 ‘학부모지원전문가’라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플레이어(Player)’ 보다는 ‘촉진자(Facilitator)’ ‘서포터(Supporter)’ ‘연결자 (Networker)’ 같은 역할을 더 고민하며 지낸다. 나에게는 큰 배움의 장이다.
- 지역 교육의제는 평범한 학부모들 사이에서 어떻게 길어 올릴 수 있는가?
- 교육의 문제를 ‘당신들의 잘못’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들이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이 많아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 생계가 바쁘거나 스스로 자격 없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와 욕구들을 정책에 반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해는 코로나로 “재난 앞에서 계획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지만, 그래도 위 질문에 대한 답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보려 노력한다.
마을교육공동체를 공부하고 싶다는 지역 학부모 9명과 매주 1번씩 2달 동안 화상으로 학습 모임을 하기로 했다. 거제, 진주, 사천, 통영, 거창, 함양 학부모지원전문가들은 기후위기를 배우고 어떻게 학부모들과 풀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각자 필요한 일을 해나가려 애쓰고 있다. 잘 소통해서 서로 배우고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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