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어떻게 같이 일을 해요?”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어떻게 아빠와 같이 여행을 하느냐고. 어떻게 같이 공간을 하느냐고. 나 역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어쩌다 한 번 동행 취재를 간 것이 아빠와 같이 일을 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호수 여행을 테마로 연재를 하고 있었다. 강원도 동해안에만 있는 자연호수, 석호에 대해 알게 되면서 차례차례 돌아보았다. 아빠와 동행하면서 카메라를 든 아빠의 모습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어렸을 적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빠 모습이다. 그 모습을 서른 살이 되어 다시 마주했다. 아빠는 20년 가까이 카메라 감독으로 일을 하셨다. 쉬는 날엔 사진을 찍으러 다니셨다. 어린 시절 사진들이 그때를 대신 기억해준다. 아빠를 따라 참 많이도 이곳저곳을 다녔다. 지금 이 일을 하는 건 어쩌면 그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와 동행 취재를 하며 석호를 알아가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출처=고기은 작가

지금도 아빠와 동행 취재를 이어가고 있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특히 지난해 함께 강릉단오제의 전 과정을 취재한 일은 잊을 수 없다. 매번 신주를 장터에서나 먹었지 신주를 빚는 건 처음 보았다. 대관령 산신제·국사성황제의 날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것 역시 큰 경험이었다. 가파른 산을 오르며 촬영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볼 땐 꽤 심장이 쫄깃해졌다. 혹여 발을 헛디디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한창때 현장에서 치열하게 촬영했을 아빠의 30대를 마주한 날이기도 했다. <수릿날, 강릉> 매거진을 받은 날. 무사히 마친 안도감과 함께 또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서 기뻤다. 

아빠는 사진, 나는 글. 동행 취재는 명확한 역할 구분이 있어서 크게 대립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공간을 함께 꾸려가는 건 달랐다. 아빠도 처음, 나도 처음하는 일이었다. 서로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의견 충돌이 잦았다. 수익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공간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아빠는 걱정이 크셨다. 아빠는 카페를 함께 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공간을 열고 나서 찾아오는 분마다 커피나 차를 찾으셨다. 그제야 아빠가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다. 두 번째 전시를 시작하는 시점에 커피와 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공간 이름을 지을 때도 마음이 맞지 않았다. 아빠는 소집이란 이름을 탐탁지 않아 하셨다. 뭐 하는 공간인지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소가 살았던 집’ 그대로의 의미를 가져가고 싶고, 간결하게 짓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행히 찾아오는 분들에게 소집이라는 이름은 합격이었다. 

눈에 띄지 않고 숨어있는 위치인 것이 마음에 드는 나와 잘 보이지 않아서 누가 찾아올까 싶어 앞집 음식점 벽 한편에 커다랗게 안내판을 세운 아빠. 사이사이 대립각을 세우곤 하지만 아빠의 새로운 점을 발견하는 나날이기도 하다. 소집에 들어오면 오른편에 소집 공간을 소개하는 부문은 아빠가 구성하셨다. 소 사진을 찍고, 소 여물통을 찾아다니셨다. 사진과 소 여물통, 이곳에서 발견된 멍에, 동네 어르신들이 주신 코뚜레와 털 긁기 도구를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까 문을 열기 전까지 고심하며 만드셨다. 소집 출입문 옆에 휑한 공간 역시 아빠가 꾸미셨다. 아빠는 꽃을 심고 가꾸며 작은 정원을 만드셨다. 오는 분들에게 아빠는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건네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신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소집지기를 더 많이 기억해주고 또 찾아오는 분들도 많다. 고마운 마음이 크면서도 겉으로 표현하는 건 서운한 감정이 먼저 올라와 버리는 딸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아빠. 나는 또 이렇게 글 뒤에 숨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다. 

소집을 찾는 사람들과 글로 길을 찾아가는 시간을 함께 하며 함께 성장하고 싶다./출처=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올해는 소집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꿈꾸며 ‘소행성 2020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실천해보고자 한다. 나이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배워나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소가 떠난 후 쓸모없어진 공간이 재생되었듯, 이곳에서 다시 나 자신을 재생하는 시간으로 활력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쩌다 한 번의 동행 취재가 아빠와 내게 지금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었듯이, 어쩌다 한 번의 소집이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으로 이어가는 길의 시작점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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