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목화자단기국' 복원품./사진제공=한성백제박물관

1989년 3월 8일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이 서른을 넘어선 뒤 ‘글을 써보겠다’는 치기 하나로 몸에 익숙한 노동판을 떠나 글을 쓰게 해줄 연분을 찾아 좌충우돌 헤매던 자발적 백수시절, 드디어 고난의 출판편집, 교정교열 알바인생을 마감하고 ‘글을 실컷 쓸 수 있는’ 월간지 기자로 입사한 날이기 때문이다.

월간지는 ‘사단법인 조치훈후원회’에서 발행하는 <바둑세계>라는 전문지였다. 동네친구 형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바둑은 훗날 제대로 알게 된 바둑과 거리가 먼 땅따먹기 놀이였으나 어쨌든 한 달쯤의 교정교열 아르바이트를 성실하게 치렀고(?) 바둑을 안다는 유일한 조건이 맞아떨어져 월간지 정규직 기자가 됐다. 

월수입은 노동하던 시절의 딱 절반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바둑의 정통을 이었다는 ‘재단법인 한국기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바둑>이라는 바둑전문지가 따로 있고 입사 초봉이 <바둑세계>의 두 배쯤 되며 입사하자마자 줄줄이 사직서를 내고 사라진 선배들이 그곳에서 새로 창간한 또 다른 월간지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을 듣게 됐지만 고정급여를 받으며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만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짧은 지면에 그때의 간난신고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고 그때 많이 훑어본 바둑정석 책이나 전문기사, 관전기자들이 쓴 신문, 잡지의 관전기를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 했던 의문 하나를 풀어놓고 싶어서 그 시절을 호출한 것이다. 

화점(花點). 바둑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많이 들어본 명칭 중 하나가 바로 화점이다. 당시는 일본이 프로들의 기량, 문화의 수준에서 한층 높은 ‘현대바둑의 메카’임을 자부하던 시기라 한국의 서점가에 깔린 바둑책들도 거의 일본책의 번역서였는데 그 모든 책들도 무수히 화점을 언급하고 있었고 나의 의문은 거기에서 나왔다.

모든 바둑책과 해설서, 관전기들이 바둑판 위에 화점이 둘 이어지면 이연성(二連星), 셋이면 삼연성(三連星), 넷이면 사연성(四連星)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아니, 꽃이 핀 자리, 화점이라면서? 그러면 둘은 이연화(二連花), 셋이 되면 삼연화(三連花), 넷이라면 사연화(四連花)…라고 해야 마땅한 거 아냐? 

왜 뜬금없이 꽃자리를 별자리로 바꾼 것일까. 그러고 보면 중국, 일본의 고대 바둑서적을 보면 천문과 별자리에 관계된 기록은 더러 있어도 꽃을 언급한 기록은 아예 본 기억이 없다. 도대체 ‘화점’이란 명칭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 애호가들까지 익숙할 만큼 광범위하게 알려진 ‘화점’의 근거가 왜 ‘바둑의 발상지’라는 중국이나 ‘현대바둑의 메카’라는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걸까. 

그런데 ‘이게 바로 화점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뚜렷한 근거가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에 있었다. 기록이나 서적의 전래 정도가 아니고 삼국시대의 유물로(이후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화점’이라는 명칭에 부합하는 꽃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진 바둑판으로 남아 있다. 그것도 한두 점이 아니고 꽤 많다. 

이쯤에서 이런 추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적어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근거를 찾기 어려운 ‘화점’이라는 명칭만큼은 이 땅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아울러 바둑이 삼국시대를 전후해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으며 ‘화점’이야말로 그런 바둑의 전파 경로를 설명하는 가장 뚜렷한 근거라는 얘기다.

바둑에 관련된 글쓰기로 생계를 꾸려온 지난 30년 동안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해진 바둑판은 백제에서 일본으로 선물했다는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碁局)’이다. 이 바둑판 측면에, 한국에 없는 낙타가 새겨져 있고 부속소재로 사용된 자단(紫檀)이 스리랑카산이라는 이유로 백제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됐으나 최근 다시 본체로 쓰인 주소재가 한국의 목간이나 공예품에 자주 사용한 소나무로 밝혀져 백제에서 제작돼 보내졌음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제작된 고대바둑판의 ‘화점’에,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이때 함께 보내진 ‘은평탈합자(銀枰脫合子)’와 ‘홍아감아발루기자(紅紺牙撥鏤碁子)’다. 은평탈합자는 코끼리 문양이 선명한 바둑알통이고 홍아감아발루기자는 홍색과 감색 바탕에 꽃을 물고 있는 새의 문양이 또렷한 상아소재의 바둑돌. 모두 백제의 공예기술을 보여주는 명품. 꽃 핀 자리에 새가 날아드는, 바둑의 낙원이 거기에 있다. 

그렇다. 바둑을 승부로 극단화하고 발전시켜온 일본과 달리 우리 조상들이 즐긴 바둑은 꽃 피고 새가 노래하는 이상향의 유희, 정신의 도락이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바둑판 꽃무늬와 새소리의 비밀을 찾아 여행이라도 떠나야겠다.

<이로운넷>의 개편을 맞아 ‘손종수의 생각의 풍경’은 여기서 마감합니다. 그동안 자유로운 지면을 허락해주신 <이로운넷>과 응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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