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국이 아니 전 세계가 난리가 난 이 시국에, 코로나19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실감이 잘 나지는 않지만, 지역을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일상이 일시 정지 상태이다. 완주에서는 지금까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인근 전주, 익산 등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서로 조심하며 숨죽이고 있다. 겨울은 저물어가고 있는데, 움츠러든 마음은 언제 펴질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서로 만나고 교류하려는 욕구를 모두 잠재울 수는 없는 일이다. 300여명이 모여있는 마을 단톡방은 그 어느 때보다 왁자지껄하다. 공포가 일상을 짓누르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우린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며, 이 경험은 연결과 연대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2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직전, 서울에서 한 청년이 찾아왔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몇 년 전 완주로 찾아와 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청년은 당시 내가 했던 조언을 참고삼아 꾸준히 귀촌을 준비했다며, 꼼꼼하게 정리한 계획서를 가져왔다. 나도 좌충우돌하고 있을 시기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줬을까 싶었는데, 계획서에는 당시 내가 해주었던 말들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이주 초기에는 도시에 비해 소득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니 빚이 있다면 청산하고 와라, 대중교통이 좋지 않으니 운전면허와 자가용이 있으면 좋다, 디자인 등 프리랜서나 강사로 일할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좋다, 농촌이라고 꼭 농가주택에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니며 원룸 등 다양한 주거 형태가 있다 등등의 내용이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런 기술도 없이, 빚이 잔뜩 있는 상태에서 대책없이 완주로 이주한 내가 저런 이야기를 했었다는게 좀 민망할 따름이다. 아무튼 그 청년은 다른 4명의 청년들과 함께 완주로 이주하고 싶다고 했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수공예, 제빵, 일본어 등 다양한 재주를 가진 청년들이 오랫동안 꼼꼼하게 준비해서 귀촌을 한다고 하니 어떻게든 도와주고 연결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완주 2019 청년정책 아카데미 모습. 작년 11월 12일부터 12월 7일까지 매주 화요일 완주군립중앙도서관 3층 문화강좌실에서 진행됐다./출처=김주영 대표

#3
완주의 청년정책은 지난 2016년 초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이 서울의 한 언론사와 함께 지역으로 이주한 청년들의 문제에 관한 포럼을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그 후 씨앗은 청년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과 실태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내용을 토대로 완주군에 신설된 청년정책팀이 일자리, 주거, 교류, 복지 등 청년의 자립과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농촌 지역의 청년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역 출신의 청년보다 이주(귀농귀촌)한 청년 중심의 정책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실제로 청년정책이 인구정책 또는 귀농귀촌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례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지역에 남고자 하는 청년이 많지 않고, 지역으로 이주한 청년의 욕구와 참여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그렇게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주를 촉진하는 것을 넘어 정착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청년정책이 확장되면 지역 출신 여부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지역 출신 청년들의 정책 접근성을 높이고 이주 청년들과의 교류를 촉진하는 것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4
작년 이맘때쯤 우리 지역의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청년을 만났다. 대학을 진학할 생각이 없던 그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미디어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던 그는 미디어센터에서 일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청년 쉐어하우스에 대해서도 궁금하다고 했다. 농촌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사회로 진출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이행기 청년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일들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을 찾아 도시로 떠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일부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율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학 진학이 아닌 진로를 찾아가는 교육, 지역에 남아서 살아갈 준비를 도와주는 학교는 거의 전무하다. 지역 사회에서도 청년이 지역에 남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지역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청년이 혼자 힘으로 지역에 필요한 새로운 일을 모색하거나 도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지역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멸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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