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대목인데 퍼뜩 문 열고 장사를 해야지 뭐슬 한다꼬 안즉 저라고 있을꼬... 월세는 달달이 나간다 아이가...”
2012년 동네 어르신들의 애타는(?) 지청구를 들으며 난생처음 ‘리모델링’이라는 것을 하던 때를 떠올린다. 그 공간이 문을 연 지 무려 7년하고도 3개월이나 되었다. 함양읍내에 수많은 까페들이 생기고 없어졌지만, 빈둥은, 처음 그 자리에,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시작은 무모했고, 경쾌했다.
내 의지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공간.
아니면 말아도 괜찮은 공간.
드나드는 사람들과 재미난 일들을 벌일 수 있는 공간.
개인이 운영하지만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잊지 않는 공간...
소위 문화 공간, 작은 가게들이 심심찮게 생긴 동네로 이주를 했었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내가 이주해 온 함양은 다행히(?) ‘불모지’였다. 난생 처음 가게를 알아보고, 계약을 하고, 리모델링을 하고, 사업자를 냈다.
그런 공간을 한번 운영해보고 싶었던 마음을 ‘저질러’ 함양 최초의 ‘공정무역’ ‘커뮤니티’ 까페‘빈둥’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열심히 해도 될까말까 하구마는 이름이 이래가꼬 장사가 되긋나?” 하는 애정 어린(?) 지청구도 “그러게 말입니다” 하고 너끈히 받아넘길 정도가 된 2012년 11월 어느 날 빈둥은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개업했는데 현수막이라도 걸어야지, 이 동네는 다 그칸다 아이가”
“저 가게에는 쫌 이상한 사람들만 드나든다카든데”
“여어는 얼라들이 와서 책도 읽고 숙제도 하고 그러더라꼬”
“월세가 나오기는 하죠?”
수많은 ‘조언’과 ‘의문’과 ‘소문’ 속에서도 빈둥은 망하지 않고 오늘도 문을 연다. 어찌 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일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빈둥은 인건비를 가져가지 않고 자원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빈둥지기를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달이 생긴 소액의 수익은 함께 ‘마을활력기금’으로 적립한다. 우리는 이 기금을 ‘티끌 모아 기금’이라 부른다. 빈둥지기들은 인건비를 받지는 않지만, 원하면 공간에서 하고 싶은 자기 프로젝트나 ‘숍인숍’ 형태의 일들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다.
함양읍내에 수많은 까페들이 생기고 없어졌지만, 처음 그 자리에,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빈둥의 사람들은 가끔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까페들이 아닌 거지~!”
어찌되었건 우리는 비슷하지만 제각각의 마음으로 이 공간을 지키고 가꾸고 만들어가고 있다. 요즘은 가끔 언제까지 이 공간이 ‘까페빈둥’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의 공간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이라는 것. 그 이름이 굳이 ‘빈둥’이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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