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신(新) 출입국 이민정책은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해법인가, 재앙인가?"
이주와 이민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엄격한 비자 제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및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으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사회적 접근은 세계화 관점에서 참여 민주주의인 풀뿌리 민주주의, 임금노동자 사회안전망 확보, 지방 자치 강화로 풀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방소멸과 부족한 노동력 위기를 해소하고자 이민정책을 추진하려면 지역의 생활인구, 관계인구 개념을 도입해 이주민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야합니다. <이로운넷>과 <아시아의친구>들이 공동 기획한 '이주와노동' 특집 연재 기획이 지역사회가 이주민과 공생하는 대안과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신(新) 출입국·이민정책? 권리기반 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
강태완 이야기
여기 한 명의 이주 청년이자 한국인으로 살았던 강태완이 있다. 아니 이제 없다. 그는 5살 때인 1998년에 몽골에서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왔다. 23년을 한국에서 체류비자가 없는 미등록 상태로 살았다.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으로 고등학교까지 학교를 다녔는데 건강보험도, 자기 이름으로 된 휴대폰도 없었다. 중학교 때 친구랑 싸웠을 때, 경찰 부르면 네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그때서야 자기 신상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뒤로 말수가 적어졌다. 친구들이 대학갈 때 자기는 이삿짐센터나 공장에 가서 일했다. 고등학교까지는 학교장 재량으로 다닐 수 있지만 대학은 갈 수 없기 때문에 태완은 미래 계획을 세우거나 꿈꿀 수가 없었다. 2021년 코로나시기에 자진출국하면 다시 입국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정책을 믿고, 말도 통하지 않는 몽골로 갔다가 우여곡절, 천신만고 끝에 단기체류 비자로 들어와서 또 험난한 과정을 거쳐 겨우 2022년에 전문대에 입학하여 유학 비자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2024년 졸업 후 취업 장벽에 좌절하다, 전북 김제의 특수장비차량 제작업체에 연구직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5년 일하면 '지역특화비자(F-2-R)'를 받을 수 있다 해서 군포에서 김제까지 간 것이다. 5년 뒤에는 영주권을 따고 또 그 뒤에 국적까지 딸 생각으로. 그런데 입사 8개월 만인 11월 8일에 시제품 차량 테스트를 하다가 차량과 장비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산재사망 사고를 당했다.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졌다. "아들 비자 받기 전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가, 이제 힘들게 비자 받아서 잘살아보려고 했는데, 이체 좀 살게 됐는데, 우리 아들 너무 억울합니다..."(<이주아동에서 노동자로! 故 강태완(TAIVAN) 유가족 입장표명 기자회견>자료, 2024.11.14.)

체류비자가 없었던 미등록 상태에서부터 자진출국, 단기비자(C-3)로 재입국, 유학생 비자(D-2), 구직비자(D-10), 지역특화비자(F-2-R)에 이어 산재사망사고에 이르기까지 체류자격에 저당잡히고 결국은 산업안전이 부실한 현장에서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이주 청년노동자의 사연이 너무나 처절하다. 학교 다닐 때 체류자격이 주어졌더라면 추방 불안에 떨지 않고 자기 미래를 꿈꾸고 계획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을 갈 수 있었더라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취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면 멀리까지 지역특화비자 취득하러 가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안전대책이 잘 갖춰진 회사였다면 설사 사고가 있더라도 생명엔 지장 없지 않았을까. 우리는 태완이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자
한국 체류 이주민 숫자가 2024년 9월 말 현재 269만 명을 기록했다. OECD 집계로 한국이 작년 올해 이민자 증가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국가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지금 본격적인 이민사회로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관련 부처든 학계든 산업계든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입을 모아 이민, 이주민, 이주노동자를 늘려야 한다고 경쟁적으로 정책이나 주장을 내놓고 있다. 지난 9월 말 법무부는 '체류외국인 300만 시대를 대비하는 新 출입국·이민정책 추진방안'(이하 신이민정책)을 발표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향후 5년 내 3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 "국민 일자리 침해 우려를 해소하고 무분별 유입에 따른 갈등을 예방하는 것을 전제로, 산업계 구인난과 지역소멸 위기에 따른 이민 확대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과연 그렇게 이주민 대폭 확대를 도모하면서 그에 맞게 나아져야 할 핵심과제인 이주민 차별 시정과 권리 개선이 되고 있는지 극히 의문이다. 법무부의 추진방안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과연 또 다른 강태완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300만 명이라는 숫자 규모가 아니라 여기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고유한 인격과 개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주민을 보아야 ‘이민확대 수요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 차별없는 이민사회의 비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법무부 보도자료, '체류외국인 300만시대 신 출입국·이민정책 추진', 2024.9.26.)

새롭지 않고, 권리보장 정책은 빠졌다
이번 법무부의 신이민정책 첫 번째는 '우수인재 유치'이다. 지난 30여 년 간 늘 정부 외국인정책의 1순위는 우수인재나 전문인력,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이었는데 사실상 실패했다. 한국사회와 정책이 외국인에게 불편하고 차별적이기 때문에 소위 우수인재들은 영미권이나 유럽으로 가지 한국으로 잘 오지 않는다. 결혼이주민, 3D업종 생산직 이주노동자들은 꾸준히 늘어났는데 이것은 한국경제, 사회가 정작 필요로 하는 이주민들이 그러한 이주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 정책대상의 초점을 대다수 이주민들이 자기 생애주기에 맞게 한국에서 잘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본권 및 사회보장을 동등하게 해주는 것에 맞춰야 할텐데 별로 그러지 않았다. 정부는 결혼이주민은 빨리 한국인으로 만들어 동화시켜야 하고, 이주노동자는 몇 년 일만 시키다 내보낼 인력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는 우수인재뿐 아니라 이주민 전반에게 체류, 비자, 정주여건을 더 개선하고 거주(F-2)나 영주(F-5)비자를 용이하게 획득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전문인력 등의 배우자에게 가사·육아를 포함한 비전문 직종 취업을 허용"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건 저임금 돌봄인력으로 활용하겠다는걸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광역형 비자', '지역특화형 비자' 및 '계절근로자 제도' 활성화를 보자. 지역소멸 위기에 직면해서 전북도, 경북도, 전남도 등 여러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지역인구와 노동력 확충을 위해 지자체에 비자 권한을 달라고 해왔고 아마 이를 반영하여 이러한 정책을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시행 중인 지역특화비자를 보면 인구감소 지역에 유학생이나 동포가 5년을 살면서 취업 혹은 창업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고 있는데, 비자 줄테니 거주이전의 자유 포기하라는 식의 ‘비자와 개인의 자유 제한을 거래’하는 발상이다. 왜 이 나라 정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주민들을 맨 하층노동과 열악한 삶의 조건에 묶어 놓고는, 체류자격 인센티브라도 준다 싶으면 쥐꼬리만한 권리를 더 내놓으라고 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이주민들은 일자리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살고 있고, 이는 기존의 수도권 중심의 한국경제 및 사회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 지역소멸과 지방인구감소 위기를 해결하려면 그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지, 이주민에게 비자 인센티브를 주고 그 대신 의무적으로 오랜 기간 살라고 하는 것은 이주민의 취약성을 미끼로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언제쯤 이 활용론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주로 농어업에서 3-8개월 한정된 기간만 이주노동자를 일하게 하는 계절근로 제도는 법무부가 더 이상 관할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다. 법무부 책임하에 지자체더러 해외 지자체와 협약을 맺어서 노동자를 도입하게 하는데, 협약을 맺는 과정부터 인력선발, 국내 입국 이후 노동과정에 이르기까지 브로커들이 광범위하게 개입하여 이득을 취하고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대부 약정, 신분증과 여권 압류, 통장 압류, 임금 착취 등 많은 문제점들이 지속되어 필리핀 정부 같은 데서는 인력 송출을 잠정 중단한 상황이기도 하다. 제도 자체가 잘못 설계되어 있는 바, 차라리 노동부에서 해외 산업인력공단을 통해서 공적 도입 체계로 선발하고 있는 고용허가제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브로커 개입 방지나 노동자 보호 차원에서도 백번 나을 것이다. 노동부는 고용허가제만 관장할 뿐 예술흥행(E-6), 전문·기능인력(E-7), 계절근로(E-8) 등은 관할하지 못하는데 그래서 정보도 없고 근로감독도 할 수 없다. 이주노동 제도 법무부가 손을 떼고 모두 노동부가 관할하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이민 2세 자립 지원과 맞춤형 사회통합교육 지원 등은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취업비자로 전환 불가"했는데, 이를 "외국인 청소년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고교 졸업 후 바로 구직(D-10)·취업비자(E-7 등) 전환이 가능하도록 비자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즉 대학에 가지 않으면 출국을 해야 했던 상황이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빠진 것은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 체류 대책이다. 현재 2025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구제대책이 시행 중인데, 이는 국내에서 출생하거나 어릴 때 입국해서 체류 기간이 6-7년 이상 된 미등록 아동청소년에 대하여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체류자격(D-4)를 주고 졸업 이후 대학입학이나 취업을 못할 시에 1년간의 임시체류자격(G-1)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격조건이 까다로워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부모가 함께 신청해야 하고 미등록 체류기간에 대한 범칙금을 내야 해서 그 부담 때문에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현재 신청자가 많지 않다. 또 형제자매 사이에 누구는 해당되고 누구는 해당 안되는 사례들도 있다. 결국 2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에 대해 극히 일부만 내년 3월까지 신청할 수 있는 현재의 한계적인 정책을 개선하여 신청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상시적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 비자 발급규모 사전공표제, 비자심사 강화로 선별 유입 등은 한국으로 오는 이주민에 대한 심사를 더 까다롭게 한다는 의미로서 좁은 문이 더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불법체류·범죄 발생 시 발급규모 축소·비자 요건 강화 등 환류'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은 특정 국가 이주민이 미등록 체류가 많아지면 그 국가에 대해 비자를 줄이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해외 사례 등을 보더라도 비자심사나 선별을 더 어렵게 만들면 이를 회피하기 위한 브로커 산업이 생기고 비용이 더 들게 된다. 그리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들어온 이주민이 미등록이 되더라도 계속 체류하는 것을 택할 가능성을 높인다. 오히려 개방적이고 유연한 비자 정책으로 본국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가능해져야 개별 이주민 입장에서도 미등록 체류를 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신이민정책에서 빠진 것은 미등록 체류 이주민에 대한 정책이다. 40만이 넘는 미등록 체류자에 대해 현재 정부 정책은 강경한 단속추방과 자진출국 유도정책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실패해왔다는 것은 지난 30년 넘는 이주 역사가 말해준다. 법·제도의 문제 때문에 이주민이 언제라도 비자를 잃을 수 있는데, 그 문제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용허가제만 해도 한 해에 1만 명 정도의 미등록 체류자를 발생시킨다.
최근 스페인 사례를 보면, 미등록 체류자가 정식 체류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스페인에 거주해야 하는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인다고 하고 이를 통해 향후 3년 간 연간 30만 명의 미등록 체류자를 합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연합뉴스, '다른 길 선택한 스페인…노동력 부족·고령화에 이민 개방', 2024.11.20.) 한국에는 미등록 체류자가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없는데, 가까운 일본만 해도 특별재류자격 신청제도가 있다. 광범위한 법제도의 사각지대, 인권 미적용 지대를 양산하는 것보다 제도 내로 받아들여 사람을 보호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일하며 살게 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향일 것이다.

권리기반 이민정책으로 바꿔야 한다
이주민의 안정적 체류권과 평등, 자유, 안전을 보장하는 이민정책이 되어야 새로운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라고 사업장 변경할 자유도 없고 숙소는 여전히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조립식패널 등 임시가건물이 절반이다. 임금체불과 산재사망 발생율은 내국인에 비해 2-3배에 달하고 사업주 허락 없이 병원에도 제대로 못간다.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중대재해 참사에서 보듯이 위험은 이주화되어 불법파견 노동시장 맨 아래에 중국동포를 비롯한 이주민들이 아무런 안전대책 없이 일을 하고 있다. 결혼이주민, 유학생, 난민, 아동·청소년 등 체류자격은 복잡하지만 법제도적 사회적 일상적 차별은 일터와 삶터 곳곳에서 이주민에게 생채기를 낸다. 새로운 이민정책을 상상해 보자. 한국사회가 필요로 해서 온 이들에게 동등한 삶의 조건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아닐까. 늘 이주노동자 집회에서 외치는 구호를 다시 꺼내 본다.
"같은 사람, 같은 노동자다.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
故강태완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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