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신(新) 출입국 이민정책은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해법인가, 재앙인가?"
이주와 이민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엄격한 비자 제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및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으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사회적 접근은 세계화 관점에서 참여 민주주의인 풀뿌리 민주주의, 임금노동자 사회안전망 확보, 지방 자치 강화로 풀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방소멸과 부족한 노동력 위기를 해소하고자 이민정책을 추진하려면 지역의 생활인구, 관계인구 개념을 도입해 이주민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야합니다. <이로운넷>과 <아시아의친구>들이 공동 기획한 '이주와노동' 특집 연재 기획이 지역사회가 이주민과 공생하는 대안과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이주노동자 문제를 탐색하기 위한 농업‧농촌 진단- 어쩌다 농사짓기도 힘들게 되었나?"
조경호 (지역농업연구원 원장, 아시아의친구들 운영위원)
아마 IMF 외환위기 때일 것이다.
떠나기만 하던 농촌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폐업과 실업이 만연하자 일자리와 생존의 위기를 느낀 사람들이 농촌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낮선 풍경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회가 어려울 때 농촌이 지닌 위기흡수(bumper) 기능이라며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농촌에 가면 굶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아쉽지만 외환위기가 안정되자 사람들은 다시 도시로 떠났고, 농촌은 다시 쓸쓸해졌다.
2000년대 들어서며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언론에서는 “취업만 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어느 청년의 멘트를 자막까지 붙여가며 심각성을 설명했다.
농촌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의아했다. 여기는 농사철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인데....먹여주고 재워주고(숙식제공) 간식까지 챙겨주며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인데 오지 않겠단다... 편의점이나 게임방 알바를 할망정(알바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님) 농사일은 소위 ‘좋은 직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메워주고 있다. '농업'으로 먹고사는 필자로서는 솔직히 고맙다. 이주노동자들이...
거창한 표현 말고도, 농업이 잘 돼야 농민(필자)도, 농업 관련 직장(이것도 필자)도 먹고살기에 좋아질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입장에서도 말이다.

최근 청년들이 농촌으로 돌아온단다.
각 지자체는 '스마트 팜'을 앞세워 청년들을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살 집도 마련해준단다. 심지어 잘 놀 수 있는 문화공간도 마련해준단다. 많은 청년들이 관심을 갖고 기웃거린다. '몸'쓰는 일은 싫어도 '머리'쓰는 일은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연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제어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생각하니 다가서기가 쉬워진 것 같다.
그런데 몇 몇 소수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자본집약적'산업이라고 한다.) 인구유입이니 지역소멸이니 하는 현상에 효과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스마트팜’정책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다른 기회에 하겠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2023년 농가 인구 214만 명, 농가 수 99만9천 호(필자가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에는 ‘1000만 농가’이었음), 고령화율 59.1%, 곡물 자급도 20%, 도시근로자 대비 농가소득 60.2%... 마을에 아기가 태어나면 축하 현수막을 걸고, 동네잔치를 하고, 지자체에서 돈을 주는... 이런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이니 우리 농촌은 정말 이대로 '소멸' 하는 것인가?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농촌이 갈수록 쇠퇴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근본적 이유는 농업을 자연과 공존하는 생산활동으로 보지 않고 산업(industry)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를 농업근대화론이라고 한다.
산업혁명 이후 농업사회는 공업사회로 변화해 갔고, 이를 근대화(modernization)라고 불렀다. '근대화'라고 하면 뭔가 '새롭고 선진적인'것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그 본질은 산업화(또는 공업화)이다. 산업화의 목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성장이고, 그 방법은 규모화‧집적/집중화이다. 즉 생산자원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규모화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방법론이다.
자, 이러한 방법론을 농업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생산단위(농지)를 규모화해야 한다. 농가 평균 1ha 남짓한 농사 규모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 그러니 농지를 집중시켜야 하고(대단위 경지정리) 이를 소수 농가에 몰아주어야 한다(전업농 육성 -> 중소농 이탈 촉진 -> 이농현상 발생).
둘째, 규모화된 농지를 경작하기 위해서는 기계화가 촉진되어야 하고, 비료‧농약 등 투입요소를 증가시켜야 한다(자본투입 증가 -> 농가 경영악화 -> 중소농 이탈).
셋째, 재배품목을 집중(단일화)하여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특화품목 육성 -> 다품목 기반 상실 -> 지역 간 경쟁 심화로 가격 불안정 심화 -> 농가 경영악화).
넷째, 유통도 규모화해야 한다(산지유통조직화 -> 자본 투입 증가 -> 유통자본의 시장 지배력 증가 -> 시장이 생산(품목, 생산량, 가격)을 결정. (여기서 산지유통조직화란 특정 품목을 중심으로 대규모 산지 조성과 현지에 유통센터를 조직하여 전국적 시장 협상력을 높이는 정책을 말함)
유통자본의 시장 지배력 강화는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쳐 유통자본(대형마트 등)이 제공하는 상품의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예를 들어 요즘 아이들은 딸기가 겨울에 나는 과일(정확히는 과채류다.)로 알고 있다. 딸기는 봄철 과일이다. 하지만 요즘 봄에는 딸기가 없다.)

간단하게 도식화하였지만, 결과를 유추하여 보자.
결과는 간단하다. 소수 규모화된 농가(기업가적 경영이라고 한다.)로 농지와 자본이 집중되고 중소농, 가족농들은 점점 경쟁에서 밀려 농업을 이탈하게 된다. 규모화된 농가 역시 끊임없이 자본(기계, 시설, 장비 등에 대한 투자)의 압박과 시장으로부터의 압박(품질 규격화, 생산량/시기 등)을 받는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달려도 달려도 항상 제자리라는 의미에서 래칫 효과(ratchet effect)라고 한다.
이 근대화론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바로 '성장주의'이다. 성장은 좋은 것이다. 발전이라는 의미와도 같다. 그런데 여기에 '주의'라는 한 단어가 덧붙여지면 이것이 이데올로기가 되고, 이데올로기는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 우리 사회는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위해서는 다른 것은 조금 피해를 당해도 참아야 한다는.... 참 기막인 논리로 변해간다.
성장을 위해서는 배고픔도 참아야 하고, 민주주의도 자제해야 하고, 인권이 무시당해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생각을 강요당했다.
여기에 또 하나, 농업(농촌, 농민)도 국가 경제성장을 위해 힘들어도 좀 참아야 한다는 논리가 도입된다. 배고픈 국민을 위해 농산물 가격은 높아서는 안 되며, 힘들면 도시로 나가 공장에 취직하면 된다고 했다. 생산성을 높이고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건강은 물론 땅과 물, 우리의 자연환경은 ‘좀’ 피해를 봐도 괜찮다는 이데올로기가 농업생산과 소비를 지배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는 죄송하지만, 필자는 소비자도 이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농촌쇠퇴의 결론이 도출된다.
패러다임이 문제다. 농업과 농촌을 보는 시각(인식체계)과 논리, 여기에 근거한 정책과 집행체계, 즉 농정 패러다임의 결과다. 그리고 이는 산업화 이후 자본의 성장논리와 닿아있기 때문에 경제발전 경로를 겪는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이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는 다음 글에서 논하기로 하겠다.

필자: 조경호/ 지역농업연구원 원장, 아시아의친구들 운영위원
- [이주와 노동]-① 존엄한 삶을 원하는 당신, 나, 우리는, 이주민은 누구인가?
- [이주와 노동]-③ 농업‧농촌 진단…농업인력 문제, 정부는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나?
- [이주와 노동]-④ 현대중공업에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난 이유
- [이주와 노동]-⑤ 유난히 사망소식이 많이 들려온 2024년 재한 미얀마인의 여름
- [이주와 노동]-⑥ 신(新) 출입국·이민정책? 권리기반 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 [이주와 노동]-⑦ 불법체류자 사면의 전제와 조건
- [이주와 노동]-⑧ 그들도 우리들의 이웃
- [이주와 노동]-⑨ 고용 이주노동 100만 시대, 농어민단체와 농정이 고민해야 할 문제들
- [이주와 노동]-⑩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과 문제점, 행정의 역할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