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신(新) 출입국 이민정책은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해법인가, 재앙인가?"
이주와 이민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엄격한 비자 제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및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으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사회적 접근은 세계화 관점에서 참여 민주주의인 풀뿌리 민주주의, 임금노동자 사회안전망 확보, 지방 자치 강화로 풀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방소멸과 부족한 노동력 위기를 해소하고자 이민정책을 추진하려면 지역의 생활인구, 관계인구 개념을 도입해 이주민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야합니다. <이로운넷>과 <아시아의친구>들이 공동 기획한 '이주와노동' 특집 연재 기획이 지역사회가 이주민과 공생하는 대안과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유난히 사망소식이 많이 들려온 2024년 재한 미얀마인의 여름"
필자 : 화성 마나빠디라 선원 – 디라 비구
뜨거운 여름날, 비가 오면 땅속의 잡초들이 여기저기 무수하게 솟아난다. 보통 나쁜 일(업)들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하면 그동안 숨어있던 다른 나쁜 것들도 우르르 몰려와 싹을 틔운다. 땅을 완전히 덮어버리거나 잡초를 죽이는 다른 강한 약을 사용할 수 없다면, 계절이 바뀔 때 까지는 잡초들 속에서 인내하고 감당하며 자신의 활동 공간과 길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미얀마 사람들은 코로나부터 시작하여 쿠데타와 내전, 그리고 올해는 무더위와 태풍에 따른 큰 홍수까지 점점점점... 더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다. 현지 미얀마인 뿐만 아니라 한국에 일을 하러 온 노동자나 유학생들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특히 기후 위기로 인한 무더위가 심했던 올해는 유난히 한국 내 미얀마인 커뮤니티에 돌연사와 자살 등 사건사고 소식이 줄을 이었다. 예년 같으면 한 달에 한두 명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의 소식을 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올해 5월 이후 갑자기 한 달이 아니라 매주 한두 명씩 자다가 죽고, 병원에서 죽고, 산재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자살로 죽고... 사건사고가 계속 이어졌다.
4년 전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 대구의 미얀마 사원에서는 매주 제사 법회가 있었다(보통 미얀마에서는 임종 후 1주일, 그리고 매년 기일마다 스님에게 보시를 하고 법문을 듣고 기도를 하며 자신의 공덕을 죽은 사람을 위해 회향한다). 미얀마의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한국에 온 미얀마 노동자의 가족 중 코로나로 죽지 않은 가족이 한 명이라도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미얀마의 정치 상황은 군부의 쿠데타에 따른 학살과 또 그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유례없는 저항으로 내전 상태로 이어가면서 물가는 폭등하고 일자리는 없어지고 하루 벌어 사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졌고, 200만 명의 피난민이 고향을 등지고 떠돌고, 게다가 올해는 큰 홍수로 또 이어지며 과거 홍수로부터 안전했던 지역만 아니라 내전을 피해 떠난 지역도 온통 물에 잠기고, 그렇게 가난한 이들의 생활고는 더욱 심해지고, 그 와중에도 쿠데타 군부와 시민군의 교전은 점점 더 빈번해지고, 그에 따라 군부의 보복으로 방화와 민간인 학살 소식은 끊임없이 뉴스에 올라오고 나쁜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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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니 한국에 있는 미얀마 노동자 다수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러 한국에 왔는데 매일 경험하는 것은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 되었다. 그들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공장에서 힘든 육체노동 후 휴식하며 고향의 가족과 정다운 대화로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실의 고단함을 인내하는 그런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을 마치고 고향 미얀마 소식을 접하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SNS를 통해 만나는 고향은 코로나부터 시작하여 매일 죽음과 고통과 생존의 버거움으로 가득하다. 차라리 인터넷과 뉴스는 안 보고 피하면 잊을 수라도 있지만, 한국에 온 이유가 가족인데 어떻게 가족과 단절하고 소식을 끊고 살겠는가. 그렇게 매일 밤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에 들어와 스마트폰으로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새벽까지(한국의 밤 12시는 미얀마에서는 밤 9시30분) 고통으로 가득한 통화를 매일매일 반복한다.
군부 쿠데타 이후 매우 많은 미얀마 청년들이 난민 탈출을 하듯 한국에 유학생으로 노동자로 들어왔다. 그중 쿠데타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부모님 밑에서 소소한 행복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보이는 앳되고 여리게 생긴 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한국에 도착하여 다른 미얀마 인이 없는 공장에서 홀로 일하게 되었다. 사진을 보니 무더운 날 지붕도 없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혼자 살았던 것 같다. 그 청년은 한국에 와서 무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 해본 적 없는 중노동을 매일 해야 했고, 일을 마치고 쉬러 가는 곳은 낮 동안 잔뜩 달구어진 컨테이너 숙소였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미얀마의 가족과 대화를 하면 마음은 더 괴로웠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그 여린 청년에게 남은 마지막 힘은 도피로서의 자살이었을 것이다.
매일 4년 넘게 계속 죽고 고통받고 그런 힘든 모습들만 계속 보고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정신의 힘도 육체의 힘도 다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달리 무더웠던 올해 여름, 갑자기 뇌출혈로 심장병 등으로 돌연사하는 노동자가 많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리라. 어쩌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모든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목숨 줄을 놓아버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더라도 요즘 미얀마인들을 보면 과거와 달리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졌다는 것이 바로 느껴진다. 대구의 미얀마 절에 오랜만에 가보니 15명의 노동자들이 절에서 살고 있었다. 보통은 다른 공장 일자리를 찾으면 바로 떠나기에 절에 머무는 노동자는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숫자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가 다른 미얀마 스님에게 물었더니, 한 공장에서 일을 오래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옛날이면 일이 좀 힘들어도 참고 일을 하며 적응을 해가는데, 요즘은 다들 마음의 힘이 워낙 떨어져 있어 스트레스 감당 능력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일을 오래 못하고 금방 그만둬버린다. 돈이 없어 갈 데가 없으니 절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고 한다. 이밖에도 요즘 미얀마 커뮤니티의 소식을 보면 과거와 달리 부쩍 미얀마인 간에 폭행, 자해, 술 도박 중독 등 마음의 건강함을 잃어버린 사건도 훨신 많아졌다.
먼 타국에 어렵게 와 놓고는 자해하거나, 술이나 도박에 빠져 자신의 삶과 가족과 미래를 포기해 버린 청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한 미얀마 청년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나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미얀마의 내전 상황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기에 고통스런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도 크게 없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미얀마에 대한 관심과 격려를 해주는 국민은 한국인이 최고이고, 정치적으로도 미얀마인을 배려해 주는 국가도 한국이 최고이다. 그렇기에 미얀마인들이 오로지 스스로 삶의 의지와 목표를 잃지 않을 수 있게 한국에서 미얀마 커뮤니티의 활동을 더욱 활발히 하도록 도움을 준다면 최상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홀로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도록 미얀마인들을 보면 격려하고 응원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면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한국인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나아가 갑자기 중병이 생기거나 돌연사한 노동자들에 대해 산업재해를 우선 조사하고 적용해 줄 수 있게 제도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참고로, 미얀마에서 불교는 생활이기에 미얀마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곳엔 어김없이 절을 만들고 미얀마 스님을 초청하여 머물게 한다. 그리고 미얀마 절은 한국에서의 고단한 삶을 감당하고 인내하게 만드는 의지처가 되고, 미얀마인 간의 교류의 장이 되고, 삶의 의지와 발전을 도모하는 자기 계발의 중심지가 된다. 매주는 아니더라도 행사 때마다 자신의 경조사마다 절에 오는 노동자와 유학생들은 고통스런 현실의 삶을 회피하지 않고 술 도박에 빠지지 않으며 어떻게든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노력하며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한국에서 질병과 죽음 맞이한 동료들을 돕고, 미얀마 현지의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보시금을 모아 음식을 베풀고 난민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지원하고, 또 곳곳에서 축구 풋살 대회와 추첨 행사들을 하며 미얀마 돕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함께 아래 페이스북에 쓴 미얀마 청년의 마음처럼 미얀마에 평화가 빨리 찾아와, 그들이 그리워하는 행복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같이 일상의 행복을 만들어가기를 기원한다.

필자 : 화성 마나빠디라 선원 – 디라 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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