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신(新) 출입국 이민정책은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해법인가, 재앙인가?"

이주와 이민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엄격한 비자 제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및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으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사회적 접근은 세계화 관점에서 참여 민주주의인 풀뿌리 민주주의, 임금노동자 사회안전망 확보, 지방 자치 강화로 풀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방소멸과 부족한 노동력 위기를 해소하고자 이민정책을 추진하려면 지역의 생활인구, 관계인구 개념을 도입해 이주민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야합니다.  <이로운넷>과 <아시아의친구>들이 공동 기획한 '이주와노동' 특집 연재 기획이 지역사회가 이주민과 공생하는 대안과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필리핀 노동자 공동체 카사마코, 초대 공동체 회장, 게리 마르티네즈의 인터뷰 기사 ./아시아의친구들제공
필리핀 노동자 공동체 카사마코, 초대 공동체 회장, 게리 마르티네즈의 인터뷰 기사 ./아시아의친구들제공

 

"그들도 우리들의 이웃" 

정진우 목사 (서울 디아스포라 교회 ) 

누군가 그들을 불법체류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친 적이 없다. 누구처럼 주가 조작이나 통계조작을 하거나 직권남용을 한 적도 없다. 그들의 불법이라는 표식 뒤에는 한국 정부의 잘못 설계된 이주 노동정책에서 비롯된 다양한 원인이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썩 좋은 말은 아니더라도 대안적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Undocumented Migrant Worker)라 부르기로 했다. 그들은 불법이 아니라 서류가 없을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서류의 발급 주체는 누구인가? 대한민국 정부다. 

불법체류자라는 말은 정부의 책임을 은폐하고 미등록노동의 현실에 대한 총체적 진실을 막아서게 하는 초라한 언어다. 우리네 삶이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삶의 문제에서 법은 최소한의 규범이지 진실의 전체일 수 없고, 이주 노동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복잡한 이주 노동의 현실을 법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라는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노동인데 법무부가 개입하는 방식부터 수상하고 비상식적이다. 누가 이런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었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는 이런 고장난 시스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1991년 한국의 경제 성장에 따라 이주 노동이 필요하게 되자 산업연수생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가난한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노동의 기회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그들의 신분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도 연수받으러 온 것이 아니었고 그들을 부른 한국 사회도 애당초 그들을 연수시킬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제도는 산업연수생이었다. 연수생에게는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이 제도에서 가장 이득을 본 자는 누구이고 가장 손해를 본 자는 누구인가? 이게 정당한 법과 제도라는 것인가?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을 꿈꾸며 그들이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브로커에게 자신들에게는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입국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노동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한국에 온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름은 연수생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름은 연수생이었지만 그들에게 한국사회가 시킨 것은 "노동"이었지 "연수": 즉 '훈련과 교육'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새로운 사회와 삶을 꿈꾸며 새 길을 걸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이 가짜 연수의 자리를 떠나 새로운 방식의 이주 노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누가 불법이라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을까? 

자양동 필리핀 벼룩시장 ./사진=아시아의친구들
자양동 필리핀 벼룩시장 ./사진=아시아의친구들

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땀의 결실을 탐하는 위선적 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을 여기서 다 논할 수는 없다. 다만 이미 우리는 이 제도의 모순과 문제점을 다 인정하게 되었고 지금의 고용허가제를 만들게 되었다.(2003년)  물론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생제도에서 진일보한 것일지라도 그 역시 제도 시행 때부터 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악법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었고 지금도 그 대안으로 노동허가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한번 여기서 생각해보자 왜 미등록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일까?  아무리 단속을 하고 특별단속 기간을 설정해서 단속한다 하더라도 그 수는 좀체 줄지 않는다. 지금도 40만이 넘는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밑바닥 노동을 감당하고 있다. 이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겠다고 " 불법체류 외국인 감축 5계년 계획"을 세우고 단속인원을 300명에서 최근 400명 가까이로 늘였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결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한국 노동 시장이 이들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소규모 사업장 사장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미등록노동자를 구인을 부탁하곤 한다.  

정부는 5년 내  이주민이 300만 명으로 늘게 될 것을 예상하고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40만이 넘는 이들의 문제에 대해서 단속 외에는 다른 대안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탁상공론이 아닐 수 없다. 단속은 대안이 아니다. 단속만으로는 미등록노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주위에는 1991년 입국해서 35년 간 한국 사회에서 살아 온 미등록 노동자들이 부지기 수다. 그들은 대부분 언어 소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가장 밑바닥 노동자로서 의료보험도 없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토요일도 없이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매일 단속의 두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노동해서 번 돈으로 자식을 키우고 고향의 가족과 일가친척들을 돌보며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해 온 노동자다. 그동안 수많은 특별단속이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여기 살아남아 있다. 

단이라는 필리핀에서 온 미등록 노동자가 있다. 그는 1991년 입국한 1세대 이주노동자다. 30대 초반에 한국에 들어와서 온갖 궂은일을 하고 이제 나이 70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열심히 일한다. 나이 때문에 구직을 하지 못할 걱정에 새 직장을 찾을 때는 늘 10살을 낮추어 취직해서 일한다. 어느 정도 한국말도 구사가 되고 봉제공장의 모든 일은 못하는 것이 없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서울의 지리도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더 잘 안다. 

지금은 봉제공장의 다리미 파트에서 일하는 데 공장에서 가장 일 잘하는 노동자로 한국 사람들 일하는 것이 늘 마땅치 않다. 단은 농사에도 소질이 있어 함께 텃밭농사를 시작했다. 그 고달픈 노동의 일정 속에서도 새벽이면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밭으로 달려가 물을 준다. 그가 키운 필리핀 채소, 암팔라야, 오쿠라 등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필리핀인들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채소를 자전거에 듬뿍 싣고 와 동료들에게 나누어주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한다. 친절하고 상냥하며 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다. 그런데 그는 지난 35년 동안 한 번도 고향에 다녀올 수 없었다. 

또 다른 여성 노동자 젤로리는 올해 25년째다. 어렸을 때부터 일머리가 좋아 고국의 한국인 사업장에서 일하다 발탁되어 한국에 오게 되었다. 비자 기간이 끝나 미등록노동자가 되었는데 17년 한 공장에서 일하다가 공장이 폐업을 하게 되었을 때 퇴직금으로 300만원을 받았다. 어느 국회의원의 아들이 2년 남짓 일하다가 50억 퇴직금 받은 것이 연일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하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법정 퇴직금의 10분의 일도 안 되는 돈을 쥐고 망연자실 하는 그녀에게 나는 싸우자고 꼬드겼다.  내가 도와주면 10배 이상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한국 노동부는 노동자 편이므로 반드시 받을 수 있다고 내가 더 속이 상해서 말했지만 며칠 고민하던 그녀는 퇴직금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기로 하였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큰 이유는 사장의 해코지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당장 돈을 받을 수 있을지라도 사장이 신고라도 하는 날에는 추방을 감수해야 했다. 그 결정이 있기까지 그녀의 속이 얼마나 타 들어갔을까? 나는 그녀의 결정에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아니 그녀를 깊이 위로하고 장한 결정, 잘된 결정이라고, 인생에서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그녀를 어떡해든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는 아직도 의심이 든다. 

그런데  그녀의 별명은 '알바 퀸'이다. 워낙 일 잘하고 성실하기로 소문나서 서로 알바를 데려다 쓰려고 하고, 또 그녀 입장에서는 어머니 병원비와 장애를 가진 큰 언니의 생활비를 대느라고 알바를 멈출 수 없어서 붙여진 별명이다.  얼마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자신의 어깨에 짐 지워진 삶의 무게는 어머니의 마지막 장례에 참여하여 애도를 표하는 것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그녀처럼 착한 딸을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다. 

/제공= 아시아메모리아카이브(AMA). 아시아의친구들
/제공= 아시아메모리아카이브(AMA). 아시아의친구들

왜 정부는 이런 좋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을 막는 걸까? 이들에게 사면을 허락한다면 누구에게 더 좋은 일일까? 

주인 없는 땅도 일정 기간 점유하면 점유권이라는 것이 생긴다는데 우리 땅에서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오고 누구 못지않게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지닌 이런 이들을 우리가 법의 잣대로 재단할 권리가 있을까? 법도 여러 법이 있지 않을까?  만약 없다면 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한국 이주민들도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가까운 친구들이 미국에서 영주권 없이 지낼 때 교통신호 한번 어기지 않고 가슴 졸이며 살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도 다 그런 세월을 살았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미등록 이주 노동자자들의 문제를 해결해 온 역사가 있지 않은가? 우리 한국 사람들도 미국에서 사면 받고 하면서 오늘의 한인 사회를 이룬 것이다. 우리도 그런 것을 참조해서 우리 사정에 맞게 조금 더 전향적으로 생각을 바꿀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숨 가쁜 소식들이 연이어 들리고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세상이다. 이제 이런 사람을 보지 못하는 법의 세상도 어쩌면 멀지 않았다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까운 법이니..

필자: 정진우 목사 (서울 디아스포라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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