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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과 지방분권전국회의는 올 한 해 동안 '지방분권'에 관한 담론들을 이슈화하는 데 서로의 역량을 모으기로 하고 공동기획으로 <지방분권으로 지역소멸과 인구절벽을 막자>라는 기획 특집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조영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정책위원
조영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정책위원

 

"자치 없는 민주는 사상누각이다"

조영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정책위원

   다소 도발적인 질문으로 글을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인가. 헌법도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고,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까지 수시로 단행하니 틀림없는 민주국가다. 이번 총선에서도 국민들은 압도적인 의석을 야당에 몰아줘 현 정권을 심판했다.

    지난 1987년 6공화국 헌법이 제정된 이후 대한민국은 형식상으로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민주국가로 전환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선진국 진입과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달성하면서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이상)에 가입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 3050클럽 가입국이 전 세계 7개국뿐이니 자랑해도 좋을 듯하다.

   이처럼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는 정착한 듯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허점투성이다. 이번 총선 결과만 봐도 그렇다. 원내 1, 2당은 득표율 차이가 5.4%p에 불과했다. 1당인 민주당은 50.5%, 2당인 국민의 힘은 45.1% 득표율을 올렸다. 하지만 지역구 의석수 차이는 민주당 161석, 국민의 힘 90석으로 무려 71석이나 됐다. 승자독식의 폐단과 더불어 사표가 많이 발생하는 소선거구제의 허술함 때문이다. 

   여기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누더기 선거법을 만든 것도 모자라 원내 1, 2당은 위성 정당까지 만들어 소수정당의 몫까지 가로챘다. 이번 선거에서 두 자리 수 득표율을 올린 3개 정당을 제외해도 1%이상 득표한 정당이 4개나 된다. 하지만 최소 3% 이상의 지지율을 받아야 하는 기준으로 인해 비례의석을 챙긴 당은 개혁신당 뿐이다. 1~2%대 득표율을 올린 나머지 3개 소수 정당도 적어도 1~2석씩은 가져가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 1% 국민도 국민이다. 그들도 자신을 대변하는 의석을 갖는 게 옳지 않은가. 

   이를 가로막는 게 거대 두 정당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과거 선거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현행 300석 국회의석 수를 기준으로 지역구 200석에다 비례대표 100석 전부를 득표율로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다. 중앙선관위 안대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면 1% 지지를 받는 소수정당도 1석을 배정받아 원내에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거대정당은 지역구 의석을 줄이기는커녕 소수정당들의 염원을 외면한 채 준연동형이란 편법을 동원했다. 이것도 모자라 위성정당까지 만들어 의석을 쓸어갔다. 

   내친김에 선거 얘기를 조금 더 하자. 필자가 사는 선거구에선 이번 총선에 출마한 후보가 기호 1, 2번 후보밖에 없었다. 두 후보 모두 첫 총선출마자로 이른바 '듣보잡 후보'였다. '듣보잡'이란 과격한 표현을 쓴 이유는 두 후보 모두 지역과 연고가 전혀 없었고 지역에 대한 이해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홍보물에는 지역발전 공약이 있었다. 그러나 지역의 절실한 현안과 동떨어진 하나마나한 공약 일색이었다. 국회의원이 되어 국민을 위해 어떤 입법 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조차 희미했다. 

     두 거대정당이 이런 '듣보잡 후보'를 내세우는 이유는 자명하다. 필자가 사는 대구지역은 2번 정당에게 기울어진 운동장 지역이다. 2번 정당은 아무나 내세워도 당선되고, 1번 정당은 무투표 당선을 시킬 수 없어 체면상 후보를 내세웠을 뿐이다. 

   2번 정당은 기존 현역의원을 교체하면서 교체 이유조차 뚜렷하게 설명한 적이 없다. 현역의원이 나이도 많은 데다 존재감도 없었으니 교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말이다. 2번 정당은 늘 이런 식으로 국회의원 후보를 공천했다. 2번 당 후보들은 짧으면 20여일, 길어도 30일 만에 공천을 받고 금배지를 달았다. 이러니 후보들이 지역 유권자의 선택은 뒷전이고 공천권자 눈치만 보고 가는 구조다. 오죽하면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 국회의원이라 하겠는가.

   두 거대정당은 영호남지역에서 이처럼 아무나 공천해도 묻지마 투표로 당선시켜 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러니 영호남 지역 시민은 개돼지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그동안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2번 당의 다수 영남 의원들이 반대해 바꾸지 못했다. 아마도 이번 총선 결과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한 2번 당이 소선거구제를 바꾸자고 할지 모르나 1번 당도 쉽사리 소선거구제를 포기할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국회의원 선거를 두고 대의제 민주주의의 허점을 짚었다. 자치제는 온전한가. 그렇지 않다. 허점과 상처투성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겠다.

   약 1년 전이다. 집 앞 도로 양쪽이 차단됐다. 부근 신축아파트에 공급할 도시가스 배관을 연결하는 공사 때문이었다. 이틀씩이나 공사를 했으니 이 도로로 통행하는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거주자들은 자동차를 자기 집 앞에 세우지도 주차장에 주차할 수도 없었다. 주차하지 못하니 인근 주택가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날라야 했다. 

   주민들에게 이런 불편을 겪게 하면서 공사업체는 대문이나 벽에 공사 안내문 한 장만 달랑 붙였다. 일방적 통고였다. 화가 치밀었다. 구청 도로과에 전화를 걸어 담당 공무원을 찾았다. 누구 허락을 받고 공사를 하며, 무슨 권리로 도로를 차단했느냐고 따졌다. 구청에 항의 전화를 한 뒤 갑자기 공사가 급속도로 진행돼 이내 도로가 뚫렸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단체장과 공무원의 의사결정에 우리 삶의 질은 물론 중대한 재산변동까지 발생한다. 하지만 현행 각종 선거제도는 시민은 투표일 하루만 주인으로 살고 나머지 4년은 ‘종의 종’으로 살게 한다. 주인이 곳간 열쇠를 이른바 ‘공복(公僕)’이란 종에게 맡기고 주인 노릇을 못하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대구 도심 곳곳은 수년째 거대한 공사장이다.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더불어 전국 아파트 미분양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인데도 아파트 재개발 재건축이 우후죽순처럼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존 아파트는 물론 새 아파트값도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에 앞선 전임 시장의 재개발 재건축 인허가 남발로 인한 부작용이다. 부동산에 자금이 묶인 부작용은 대구경제 자체를 파탄으로 몰고 있다. 부동산 외에 다른 부문으로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임 시장은 이번 총선에서 당당히 2번 당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 당선자가 됐다. 자치 경험을 쌓지 못한 유권자가 생각 없이 묻지마 투표를 한 결과이다. 

   이러한 대구 부동산시장 상황은 국책사업인 K2 군공항 이전사업 전망조차 미궁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역의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아파트 미분양 물량의 적체에다 공급과잉으로 대구 부동산시장이 향후 10년간 침체를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K2 후적지에 아파트를 지어 군공항 이전비를 충당하겠다는 구상은 어불성설이 된다. 이 모순적인 두 정책을 추진한 이가 전임 대구시장이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시민을 무시하기는 마찬가지다. 홍 시장은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대구 시내 두 곳에 시비를 들여 세우겠다고 했다. 물론 시민 의견은 구하지 않았다.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이 동상 건립 반대 시위를 하지만 홍 시장은 오불관언이다.

홍 시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78.75%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다. 그러나 당시 대구 투표율은 43.2%에 불과했다. 다시 말하면 34% 남짓한 대구시민만이 홍 시장을 지지했다. 나머지 66% 시민은 홍 시장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34% 지지율로 시정을 제멋대로 농단하는 셈이다. 홍 시장뿐 아니라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대부분의 대한민국 선출직 공무원들은 시민 의견을 무시하는 게 관행이 됐다.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지방자치제의 위협요인이다.

   시민들이 위임한 권한을 넘어서는 초법적인 행위를 일삼는 선출직들이 많을수록 대의제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나서 위임한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두 거대정당이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현실에서 대안은 있을까. ‘관제 자치’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 결정하는 ‘시민 자치’를 강화해 시민주권을 실천하는 길뿐이다.

   대한민국은 형식적 민주주의는 달성했다. 대통령도 탄핵해 끌어내린 나라다. 그럼에도 한국 민주주의는 현재 큰 위기다. 여야 정치 엘리트들이 시민이 주인 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달성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자치 훈련을 통해 시민이 진정한 주인, 주권자가 되도록 만드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시민의 자치 훈련장은 어디로 하면 좋을까. 자치 단위가 작을수록 효용가치가 높다. 골목자치, 마을자치, 동네자치가 바람직하다. 작은 자치단위에서 선출직이나 임명직 공무원의 결정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으로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경험이 쌓여야 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 대한민국은 성숙한 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 먼저 동·읍·면 자치부터 실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치 없는 민주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조영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정책위원, 전 매일신문 편집국장

저서 : <지방분권이 뭐야?>(공저) 외 두 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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