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이로운관리자 에디터
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과 지방분권전국회의는 올 한 해 동안 '지방분권'에 관한 담론들을 이슈화하는 데 서로의 역량을 모으기로 하고 공동기획으로 <지방분권으로 지역소멸과 인구절벽을 막자>라는 기획 특집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오수길 고려사이버대학교 교수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 공보물에서는 많은 지역공약을 찾아볼 수 있었다. ‘국정 실패’에 대한 심판의 목소리가 높아 정당 ‘바람’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예상에 비춰볼 때, 상당히 의외의 일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준연동형 비례제와 함께 기존의 여야 정당에서 탈당해 만들어진 정당들까지 생겨나면서 어느 정당에 어떤 인물들이 포진되었는지에 대해 유권자의 관심이 늘어난 데다 ‘막말’ 논란이 이어지면서 ‘인물’과 ‘정책’에 대한 강조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이 국정에 대한 이념과 관점으로 평가받지 않고 지역공약과 지역 정책으로 평가받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실제 당선된 이유와 관계없이 대단히 어색한 일이다. 국회의원의 힘을 빌려서야 지역 정책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중앙정치에 종속된 지방정치라는 현 지방자치제도가 허울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 선거 시기에도 유권자들은 지역공약과 지역 정책을 꼼꼼히 훑어보기보다는 중앙정치의 바람에 맞춰 후보를 선택하곤 한다. 수년 전 모 지역 시장 선거 후보자 중 ‘층간소음 관련 폭력 가해자’라는 범죄사실이 있는 후보도 적지 않은 표를 얻었는데, 해당 후보 지지자들이 설마 층간소음 관련 갈등 해결은 폭력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며 표를 던졌던 것일까?
정의로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이성과 윤리의 실천을 정치 참여와 연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은 도시국가라는 생활세계에서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것이었다. 동네 입구 경사로에 열선을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분리수거며 예술인 창작센터를 만드는 것에 이르기까지 ‘보충성의 원리’라는 지방자치제도의 원리에 비춰 생각해 보자. 일선 행정 단위에서 자치로 수행할 수 없는 일을 시군구 단위에서 수행하고, 이 단위에서 수행할 수 없는 일을 광역시도에서,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수행하자는 것이 바로 보충성의 원리이다.
현실은 정확히 그 반대로 이뤄지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결정한 것을 광역시도와 시군구에서 집행하는데, 그래도 남는 일이 있다면 동읍면 단위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에서는 “지방정치인과 지방공무원들은 위험하고 실력이 없어서 자치권과 자치 예산을 줄 수 없다.”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국가부채를 역대 최대 상태로 만들어 놓았을 뿐 아니라 1997년 국가부도 사태를 초래하고도 ‘우리가 없으면 나라 망한다.’라고 여전히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중앙정부의 위탁 업무만 내려줄 뿐 제대로 된 자치 경험을 못 하도록 만들어 놓았던 지방공무원들에게 ‘실력이 없다.’고 하는 것은 책임 전가 수준이다. 더욱이 예산과 규정만 따지면서 적극적으로 일을 안 하다며 ‘적극 행정’을 강조하고서도 정권이 바뀌면 온갖 감사로 책임을 묻는 게 반복되는데, 지방공무원들로서는 실력을 기르고 싶지 않을 듯하다.
정치지리학자 임동근은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2015)에서 1920년 여름 부산을 통해 올라온 콜레라에 대한 일본 경찰의 대응 방식, 즉 해당 구역의 오염원을 모두 태워 버리는 식과는 다르게 삼청동과 같은 몇몇 부촌에서 직접 병자를 관리하고 위생업무를 시작했던 것을 동사무소의 기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생활세계의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자치의 본질적인 의의라 할 수 있을 텐데, 이후 일제와 독재체제를 거치면서 자치권은 빼앗기고 중앙집권식 대의제만 심화되어 정치는 생활세계와 더욱 멀어진 가운데 몇 년에 한 번 투표권을 권리를 행사하는 정도의 권리만 보장받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직업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으로 정치가 형해화되고, 우리 지역과 동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는 여지는 적을 수밖에 없기에 일상에 바쁜 우리를 대신해 대의를 전하러 간 대표자들에 대한 효능감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 가며 최악으로 치닫는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에게 실망하거나 분노하게 되면, ‘정치적 동물’이기를 거부하거나 생업을 뒤로 한 채 정치인 바꾸기에 나선다.
먹고살기 바빠서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겼다지만, 아파트 가치를 높여보겠다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 차량 진입 차단막을 설치하는 것을 논의하고 찬반 투표를 하는 것은 왜 정치가 아닐까? 경비 업무를 자동화하는 게 좋을지 따뜻한 ‘경비아저씨’를 계속 고용할지를 논의하는 것이 왜 정치가 아닐까?
낡은 벽에 벽화를 그리든 폐가를 개조하여 청소년 상담센터를 만들든 주부 합창단을 모으든 마을예술단 활동을 지원하든, 이 모두는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거나 공동의 목표 달성 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행위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원래 그런 거니까 다 해 먹든 아니든 나와는 상관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 자존감이 걸려 있고 내 자신이 걸려 있거나 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일과 결정을 나 몰라라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역에 내려주면 소위 ‘지역유지’들이 다 해 먹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 모양이다. 지역유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중앙정치에 기대게 만드는 현재의 정치구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역에 권한을 더 배분하고 자원을 관리하게 한다면, 그 자원의 배분과 관리를 위한 새로운 지역정치가 발전하게 될 것이다. 주민자치위원들만 봉사하고 동읍면장은 관리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백배 양보해서 최소한 독점적 지역유지 시스템이 과점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지역유지들 간에 경쟁이 된다면, 우리의 선택권이 더 커지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에서는 새로운 마을이 생기기도 하고, 있던 자치 구역이 없어지기도 하지 않은가?
순천시 덕연동, 수원시 율천동, 인천 미추홀구 관교동, 대전 대덕구 등에서는 기존 방식의 마을계획을 넘어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17개 목표 체계에 맞춰 주민들이 직접 마을 현안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겨보고 몇 가지 중점목표를 선정하는 등 마을 SDGs를 수립해 왔다.
단편적인 마을계획이 아니라 17개 분야를 모두 고려해 보는 학습과 훈련을 통해 중점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안을 도출하기도 하고, 주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를 발굴하여 힘을 모으거나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목표와 계획이 동읍면자치단체의 것이라면, 더 많은 주민이 관심 있게 나서며 힘을 모으지 않겠는가?
오수길 고려사이버대학교 교수, 한국NGO학회 회장, 한국환경민간단체진흥회 이사장, 동읍면자치단체도입연대 준비위원
<저서> 「공공부문 ESG 전략」(2024, 공저), 「에코뮤지엄: 지붕 없는 박물관」(2022, 공저), 「공공가치」(2022, 공저), 「지구별 생태사상가」(2020, 공저), 「로컬 거버넌스의 성공모델」(2018, 공저), 「갈등을 넘어 협력 사회로」(2014, 공저), 「세계 지속가능발전 도시」(2014, 공역), 「네트워크 정부」(2014, 공역), 「세계 지방의제21, 20년사」(2013, 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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