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전공과(특수학교 학생들이 고등학교 과정을 끝낸 후 거치는 직업교육 과정) 졸업생이 30~40명 정도 되는데, 그 중 취업하는 친구들은 손가락 안에 꼽혀요. 장애인 보호 작업장에 취업한 졸업생들은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해요. 하루에 8시간을 일하고도 월 50만 원도 손에 못 쥐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어요. 특수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염원인거죠.”
최저임금법 7조는 ‘정신 또는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에 한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한다. 장애인들은 일반인과 같은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없어 최선을 다해 일해도 동등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울산광역시 북구 사립특수학교 ‘태연학교’에서 14년 동안 행정 직원으로 근무하던 박다효 대표는 이런 현실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느끼고 태연학교에 근무하는 현직 교사 6명과 함께 직접 졸업생들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120곳 거래처 확보...소리만 듣고도 불량품 골라내는 직원들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이하 찬솔)의 시작은 사회복지법인 태연학원 소유의 물티슈 제작 기계였다. 태연학교는 태연학원 산하기관이다. 박 대표는 태연학원에 일회용 물티슈 제작 기계 두 대가 있다는 사실을 교감에게 전해 들었다. 평소에 사회적기업에 관심이 많았던 박 대표는 이를 활용해 졸업생들을 고용하는 기업을 만들었다. 법인에서 기계와 공장을 무상으로 임대 해줬다.
작년 2월 창립총회 후 거의 한 달 만에 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 박 대표는 “사회적협동조합 인가 받기가 까다로운데, 찬솔은 추구하는 사회적가치가 뚜렷해서 일이 빨리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 모델이 정해졌으니 주요 고객을 만나야 했다. 일회용 물티슈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을 공략해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었다.
“사업계획서를 들고 울산 내 여러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홍보했어요. 감사하게도 이곳저곳에서 흔쾌히 찬솔 물티슈를 사겠다고 해주었죠. 지금은 거래처가 120곳이 넘습니다.”
일회용 물티슈 기계는 전자동이다. 한 번에 포장까지 돼서 나온다. 정수기 통에 물만 매번 갈아주면 된다. 찬솔 직원들이 하는 일은 물티슈 숫자를 세서 한 상자에 400개씩 넣는 일이다. 현재 직원은 총 5명. 졸업생인 중증장애인 4명과 전문 인력인 고령자 1명이 이 작업을 한다. 박 대표는 “직접 포장하는 작업을 해봤는데 보기보다 어렵다”며 “직원들은 거의 달인 수준이고, 어떤 친구는 소리만 듣고도 불량품을 골라 낸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저 시급보다 좀 더 높게 급여를 받으며 일한다. 게다가 통학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니 교통비도 지원되는 셈이다.
“다른 작업장에서 하루 8시간씩 일하면서 월 40만 원 받던 친구가 여기서 하루 4시간 일하고 90만 원 가까이 벌어 가니 정말 행복해해요. 늘 같이 지내던 선생님들과 함께 있어 훨씬 편하게 느끼기도 하고요.”
어려운 시기 조합원들과 함께 위기 넘겨
박 대표는 협동조합 설립 이전에도 사회적기업에 관심이 많았다. 재작년 10월 창업 상담을 받고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마음먹은 시기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알게 됐다. 태연학교 교감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육성사업 홍보 현수막을 발견하고 박 대표에게 알려줬던 것. 찬솔은 작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으로 선정된 후, 같은 해 사업자등록을 거치고 지역형 예비사회적기업, 안전보건공단 우수기업, 육성사업 중간평가 우수기업에 선정됐다.
박 대표는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고 말한다. 오전에는 서류·행정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영업을 하러 다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5시 전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함께 조합원으로 시작한 태연학교 교사들의 노력도 컸다. 박 대표가 지쳐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업무를 끝낸 교사들이 함께 비지땀을 흘리며 물티슈 상자를 옮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박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잠시나마 일을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목표는 큰 공장 짓기”... 펄프류 사업도 진행
찬솔은 작년 10월부터 식당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물티슈 외에 뽑아 쓰는 물티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뽑아 쓰는 물티슈를 제작하려면 기계가 따로 필요하고 공장 규모도 커야 해서 아직 찬솔이 직접 만들지는 않고, 경산 지역의 물티슈 회사와 연계해 생산한다. 관공서나 일반 회사, 병원 등으로부터 판촉·홍보용 주문이 들어오면, 물티슈에 붙이는 스티커는 찬솔이 직접 만든다. 가끔 직원들이 찾아가 생산에 참여한다.
현재 휴지, 냅킨, 점보롤 등 펄프 사업도 진행 중이며, 무농약 원예작물도 계절에 따라 판매한다. 태연학원이 학교 주변 땅 800평을 찬솔에 내줬는데, 이를 직접 개간해서 마늘, 상추 등 채소를 재배해 학교 식당에 제공 중이다. 최근에는 SK 성장지원사업에 선정돼 스마트팜으로 키울 계획도 가지고 있다.
“최종적인 목표는 큰 공장을 지어서 직원들이 원스톱으로 각종 물티슈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졸업생을 작년에 2명, 올해도 2명 고용했으니까 회사를 더 키워서 내년에도 고용하고 싶어요.”
사진. 김하영(사진가), 찬솔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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