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만으로 시작했지만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창업의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딛은 40명의 소셜챌린저들을 소개합니다. 40명의 소셜챌린저들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사회적기업가의 자질과 창업 의지를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창업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2018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된 우수팀들입니다.

‘친구보다 편안한 구두’를 표방하며 ‘시민의 구두’를 만드는 사회적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이 위치한 경기도 성남의 아지오(AGIO) 작업장에 방문하니 유석영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은 고객들의 발 모양을 직접 실측하며 한 땀 한 땀 수제 구도 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아지오 구두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참배할 때 밑창이 다 떨어진 뒷굽 사진이 보도되면서 ‘문재인 구두’라는 별칭을 얻으며 주목을 받았다. 시각장애인 대표와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장인정신으로 직접 제작하는 아지오 구두는 현재 시즌2로 비상을 거듭하고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 아지오 입구에 위치한 현판./사진=이현주 기자

 아픔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아지오 시즌2를 맞이하다  

아지오가 세상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던 출발은 유 대표가 파주의 한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 관장을 맡았던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적 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 아지오(AGIO) 유석영 대표./사진=이현주 기자

“청각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는데 지원자 수가 적었어요. 알고 보니 생계가 어려워 프로그램에 참여할 겨를이 없다는 걸 알게 됐죠.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 생각했어요. 그때 1980년 무렵, 취재하며 만났던 ‘청각장애인 구두장인’이 떠올랐어요. 그게 제가 구두 회사를 창립하게 된 계기에요.”

유 대표는 ‘잘 만들면 잘 사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무작정 경영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구두 보따리를 들고 찾아갔다 1천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며 “그냥 가세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도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국회도 가고, 서울역에 자리를 대여해서 판매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죠.”

화제의 그 사건,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도 이 무렵에 이어졌다. 2012년 지역구가 파주인 윤후덕 의원이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에게 구두를 소개해줬다. ‘대통령 구두’라는 말이 탄생한 배경이다.

하지만 마케팅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상품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열심히 구두를 팔아도 늘 직원들 월급주고, 집세내기도 빠듯했다. 결국 판매부진으로 이어져 창업 3년 8개월만인 2013년에 폐업 신고를 했다.

그런데 4년 만인 2017년 상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신발이 화제가 되면서 장애인 수제 구두기업의 이야기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곧이어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신을 구두를 하나 더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구두를 찾는 소비자들의 전화도 빗발쳤다.

유 대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다시 도전에 나섰다. 십시일반 출자금을 내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선택했고, 2018년 2월 재창업에 성공했다. 보지도 않고 선주문을 해주는 고객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아지오는 이제 전국을 넘어 해외로까지 판매망을 넓혀가고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 아지오 입구에 진열된 수제구두들./사진=이현주 기자

 청각장애인들 사회 속에서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아지오를 이끌어가는 유 대표 역시 1급 시각 장애인이다. 한 번의 실패를 딛고 재기에 성공한 만큼, 유 대표의 결심은 남다르다. 청각장애인 1명이라도 더 고용하는 게 그의 목표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고 싶어요. 그렇다고 변칙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도급의 공정 없이 철저히 망치질을 하고 손으로 다듬으며 정직한 구두를 만들고 싶어요.”

고객들의 발 사이즈를 직접 실측을 하고 있는 고객 맞춤형 스킨십 운영의 모습./사진=이현주 기자

아지오는 현재 19명의 직원이 경영과 마케팅, 생산 3개 직종으로 나눠서 일한다. 생산직에 근무하는 8명 중 6명이 청각 장애인이며, 1명의 지체 장애인이 있다.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회사에는 따로 수화통역사가 있다.

장인 정신을 담아 수제 구두를 직접 제작하고 있는 청각 장애인 모습./사진=이현주 기자

2018년에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고 이들이 당당하게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만들어온 공로를 인정받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우수 창업팀’ 대상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수상 자체에 큰 의미를 두기 보다는 장애인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의 개선과 제품 제조가 구매와 수익창출로 이어지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환경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8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 모습./사진 제공=사회적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

 수제 구두 장인 배출하고, 아지오 구두 대중화하는 게 꿈  

사내 직원 공모 방식으로 선택된 ‘아지오’라는 브랜드명은 이탈리아어로 ‘편안하다, 안락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애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발 건강까지 걱정하기에 아지오 직원들은 더 고집스럽게 수제 구두 제작에 나선다.

사회적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에서 직접 제작한 수제화./사진 제공=아지오

시즌1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집념과 열의도 강하다. 무엇보다 마케팅 활동에 적극적이다. 유시민 작가, 뮤지션 유희열과 이효리·이상순 부부, 개그우먼 김지선, 최선규 아나운서가 모두 아지오의 모델들이다.

홍보 모델로 나선 유시민 작가와 뮤지션 유희열./사진 제공=아지오

올 7월에는 예비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향후 공공사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사회적인 공신력이나 신뢰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구두는 홈쇼핑 판매 시 가장 반품률이 높은 품목 중 하나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100% 만족시키기 무척 어려운 산업 중 하나란 이야기다. 이미 한국에는 수제 신발 시장이 무너진 지 오래다. 관련 전문가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유 대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관련 분야에서 청각 장애인 수제 구두 장인들을 다수 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2019 여름 아지오 패밀리 추억 만들기 모습./사진 제공=아지오

또한 아지오를 꾸준히 믿어주는 고객들도 그에게는 큰 힘이 된다. 한국을 방문할 때면 잊지 않고 작업장을 방문하는 해외고객, 가족의 경조사를 앞두고 단체로 가족들 구두를 구입해가는 고객, 무지외반증으로 신발 구입이 어려웠던 아내를 위해 편안한 신발을 선물하고 싶다며 아내 손을 잡고 멀리서 달려온 고객까지, 아지오 덕분에 ‘소비의 특별한 가치’를 경험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소비자들이다.

인터뷰 말미 유 대표는 마음 속 깊은 바람을 전했다.

“한 달 평균 1500켤레를 생산하면 장애인 직원들이 자립하는데 큰 도움이 돼요. 올 가을 롯데백화점 가을 특판을 계기로 아지오 구두의 대중화를 선언하고자 합니다. 마니아 고객수가 좀 더 늘어가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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