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만으로 시작했지만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창업의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딛은 40명의 소셜챌린저들을 소개합니다. 40명의 소셜챌린저들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사회적기업가의 자질과 창업 의지를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창업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2018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된 우수팀들입니다. 
조명민 밀리그램 디자인 대표.

“밀리그램 디자인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바탕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디자인합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성별, 나이, 장애, 국적 등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무장애를 현실화한 디자인이다. 손잡이, 경사로, 점자블록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신체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조명민 대표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바탕으로 발달장애인들도 편하고 안정적으로 생활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회적기업 밀리그램 디자인을 운영하고 있다.

치료실이 발달장애인에게는 두려움의 공간 될 수 있어

조명민 대표는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다. 지금은 장애인을 배려한 질적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적 서비스에 집중돼있어 치료 환경이 열악했다. “아이를 데리고 치료실에 가면 병원에 끌려가는 것처럼 많이 울고 불안해하더라고요. 아이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을까 고민했죠.”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건축을 공부했고, 그동안 경험했던 낙후된 복지환경을 떠올려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발달장애인을 피실험자로 연구한 자료가 많지 않았다.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어느 날 ‘장애인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저도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저조차 아이의 한계를 정해놓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발달장애 특성상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다. 조 대표는 과학적인 결과를 위해 분당서울대병원, 카이스트, 이화여자대학교 등 전문기관의 도움으로 발달장애인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발달장애인에게 특정 환경이나 색채를 제시하고 뇌파의 변화를 찍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의사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의 뇌파 변화를 통해 감정을 알 수 있다. 조 대표는 이렇게 얻은 결과를 발달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의 기초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조명민 대표는 정보 인식에 약한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시각디자인업체와 구체화된 그림문자를 개발중이다.

발달장애인 정서 고려한 디자인

밀리그램 디자인은 가구 모양?배치, 테이블?의자 높이, 색채, 조명선택은 물론 시공까지 직접 한다. 외주제작 없이 시공까지 직접 하는 이유를 묻자 “설계를 바꾸지 않기 위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 대표는 “설계디자인을 마치고 외주업체에 시공을 맡기면 일부 업체에서는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 설계를 바꾸기도 한다”며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시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온다”고 말했다.

디자인은 각기 다른 발달장애인의 성향을 고려한다. 색채의 경우 차분한 색채를 일률적으로 배치하면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분한 색상과 시각적으로 자극을 주는 색을 함께 배치한다. “비장애인도 각각 성향이나 성격이 다르듯이 발달장애인들도 감각을 제한하거나, 충족하는 등 모두 달라요. 여러 가지 색을 배치하면 각각 자신의 성향에 맞는 색상 쪽으로 이동해요. 같은 공간에서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거죠.”

발달장애인의 감정을 자극하는 색채나 조명은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에너지’를 의미하는 노란색이 과하면 자극이 되기 때문에 노란색은 가급적 피한다. 조 대표는 “얌전한 성격의 발달장애인이 다른 색에는 큰 반응이 없었지만, 노란색을 보더니 갑자기 달려든 경우가 있었다”면서 “보편적으로 발달장애인들이 노란색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넓은 면적에는 노란색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명은 직접등보다는 간접등을 사용한다. 빛을 직접 보면 잔상이 남는데, 발달장애인들은 잔상이 오래 남아 필요한 정보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명민 대표는 정보 인식에 취약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그림문자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은 너무 단순화된 픽토그램은 오히려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 대표는 지난해 시각디자인업체와 픽토그램에 보완대체 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AAC)을 적용한 구체화 된 그림문자 14종을 개발했다. 보완대체 의사소통은 말로 의사 표현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 사진, 행동, 그림 등으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의사소통 보완수단이다. 디자인 결정은 발달장애인의 반영해 진행했다.

밀리그램 디자인은 어린이 도서관과 병원 등 공간디자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문자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리합니다”

일부 비장애인들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연구와 디자인이 극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이 만족하면 누구나 편리하다는 것이 조 대표의 생각이다.

“유니버설 디자인도 지체장애인 건축가가 자신에게 편한 형태로 설계·디자인했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표면적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으로 보이지만 누구나 편리한 공간이 될 수 있어요.”

최근에는 빛·소리·촉각 등의 감각자극을 이용해 심리적 안정을 주는 공간인 ‘스누젤렌 실’에 들어가는 제품을 개발중이다. 스누젤렌 실은 대부분 발달장애인, 치매 노인 등이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이용한다. 하지만 장애가 없어도 감정·신체·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 누구나 스누젤렌실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지만 해소할 비상구가 없어요. 그렇다 보니 자살이나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죠. 밀리그램 디자인이 이런 사회문제 해소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한다면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밀리그램 디자인 사무실 내부.

진흥원 육성사업 참여해 접근 어려웠던 부분까지 연계 받아

과거 음악을 전공한 조명민 대표는 발달장애인 앙상블 ‘어울림 예술단’을 운영했다. 그는 어울림 예술단을 사회적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중간지원기관 ‘에스이임파워 사회적협동조합’을 찾았지만, 지속 가능성 문제로 진입이 어려웠다.

“에스이임파워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앙상블 말고 진행하고 있는 다른 사업은 없는지 물었어요. 밀리그램 디자인에 관해 설명했더니 사회적기업으로 만들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육성사업에 진입했고, 지난해 12월 28일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어요.”

육성사업에 참여해 회계, 특허 등 잘 몰랐던 부분을 교육받았다. 특히 연구한 픽토그램에 대한 특허취득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에스이임파워 사회적협동조합으로부터 특허 관련 기관을 소개받았다. 그는 “소개받은 특허 관련 기관에서 상담을 통해 특허가 아니라 저작권을 등록해야 한다는 정보를 얻었다”며 “이후 저작권 관련 기관을 연계 받아 지금은 저작권 등록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지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업을 알리는 기회도 됐다. “진흥원을 포함한 지원기관 공모에 참여하면 기업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밀리그램 디자인을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해 줬어요.”

조명민 대표는 향후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도전할 팀에게 사회적기업의 본질을 흐리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지원금 때문에 접근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이후에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의미를 잘 파악해서 사회공헌, 일자리 창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업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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