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국내 한 비영리단체에서 2년넘게 근무 중이다. A씨가 주로 하는 일은 청소와 비품 정리 등 사무실 위생 전반에 대한 일이다. 매일 출근하는 곳이다 보니 A씨는 공간과 직원에 익숙해져 자신이 맡은 업무를 어렵지 않게 수행하고,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농담도 주고받는다. 직원들은 일찍 퇴근하는 A씨를 위해 회식도 저녁에서 점심으로 시간을 옮기는 등 서로 배려하며 지내고 있다.

#. 발달장애인, 지속적인 일자리 필요하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간한 ‘2017장애인백서’에 따르면 등록된 발달장애인의 수는 21만 명 정도다. 특징은 2012년부터 전체 장애인의 수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서비스는 물론이고, 이들이 취업을 통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그 일환으로 최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공모를 통해 중증장애인 대상으로 고용모델을 개발하거나, 개발한 직무를 현장에 적용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정책이 발달장애인 ‘취업연계’에만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고용 이후 이들이 어떤 형태로 어떻게, 얼마나 오랫동안 근무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발달장애인 대상 일자리 연계 사업을 하는 조경준 코넷 대표는 "전체 장애인에 비해 발달장애인의 근속연수가 낮은 수준"이라며 “발달장애인의 근속연수는 평균 25개월이고, 자폐성 장애인은 11개월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에게 지속적인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버는 목적을 넘어서 사회와 단절되지 않는 끈이다. 매일 일하는 발달장애인들은 보호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회사 내 직원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 지속가능한 발달장애인 고용위해 ‘장애 인식개선’ 우선돼야

발달장애는 장애유형에서도 중증장애에 속하는 취약계층이다. 대부분 직업재활시설에서 근무한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일반고용이 어렵고, 고용이 됐더라도 한 직장에서 장시간 근무로 이어지지 못한다.

기업에서 지속가능한 발달장애인 일자리가 확대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발달장애인을 ‘장애인’라고 규정짓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장애계 관계자는 “기준을 달리하면 비만이나 안경을 쓰는 것 또한 장애가 될 수 있다”면서 “(발달)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직업을 선택하는 것부터 제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이 지속적으로 근무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요인은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이해 부족에서 나타난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눌 때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이 반복되면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발달장애인의 취업과 고용을 지원하는 자료집을 발간한 소소한소통의 백정연 대표는 “발달장애인 고용 확대에 대한 가장 큰 문제는 회사의 고용주, 직원 등이 발달장애인을 구성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복지관이나 특수학교에서 취업 이후 발달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관심도 부족하다. 예를 들어 당장 근로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조차 쉽지 않다. 많은 회사에서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발달장애인 당사자 대신 가족들이 계약서에 사인하기도 한다. 정작 일을하는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알지 못하고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비장애인들은 직장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유독 엄격하게 평가 잣대를 들이민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발달)장애인이 실수를 하면 ‘장애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실수도 그가 가진 한계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결국 발달장애인은 실수를 만회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다른업무를 부여 받거나, 타의적으로 일할 기회를 박탈당할 수 밖에 없다.

#. 취업 후 회사적응?정착할 수 있는 지원 필요

발달장애인이 업무 현장에서 꾸준히 일하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이 가진 특성에 맞는 일자리가 연계돼야 한다. 취업에 성공한 이후 비장애인들은 이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회사에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발달장애인 고용을 위해 노력하는 (예비)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에의 움직임을 높이 평가해야하는 이유다.

사례① CO:NET(코넷)

코넷은 이미지가 삽입된 카드를 통해 발달장애인에게 여러 직업에대해 설명한다./사진제공=코넷

대학생 7명으로 구성된 코넷(CO:NET)은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보호자가 사망한 뒤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네트워크라는 점에 집중한 소셜벤처다.

코넷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주변사람들이 몰랐던 ‘그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함께 찾고, 이것이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조경준 코넷 대표는 “발달장애인 평균수명이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짧다”면서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 중 하나가 발달장애인을 주로 돌보는 부모가 사망한 이후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발생되는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시작단계지만, 현재 장애인복지관 3곳에서 많게는 15명, 적게는 3명의 발달장애인에게 이미지가 삽입된 카드를 활용해 다양한 직업군에 대해 설명하는 강의를 진행 중이다. 조 대표는 “직업 선택 교육을 진행한지 약 2달 정도가 지났는데, 처음에는 취업의지가 없던 발달장애인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을 선택하는 등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기업에는 발달장애인에게 현장에서 직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요청한다. 현재 도서관 사서 보조, 수술기구 세척?준비 등 비대면, 단순반복이 가능한 기업에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에는 직무지도원을 양성해 파견할 예정이다. 발달장애인과 기업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발달장애인이 기업에 취업하는 그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일단 취업만 시켜 달라고 한다. 사실은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지속적인 발달장애인 고용을 위해서는 내부 이해 관계자와의 의견조율과 발달장애인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개선과 이해가 이뤄져야 한다.”

사례② 소소한 소통

2017년 설립된 소소한 소통은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삽화와 쉬운 설명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해 고용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게 돕는다.

발달장애인 취업지원을 위한 실용서./사진제공=소소한 소통

소소한 소통은 지난 1월 발달장애인 취업지원을 위한 실용서 3종을 출간했다. 실용서는 △어려운 구인공고는 이제 그만 △나도 이제 직장인 △내일도 출근합니다 등으로 구성됐고, 발달장애인들이 구직 중이나 직장생활에서 실제 활용 가능한 정보를 이미지를 삽입해 이해하기 쉽게 풀이했다.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는 “설립초기 발달장애인 고객 간담회에서 실제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쉬운 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사해보니 취업관련 정보가 전체의 20%를 차지했다”면서 “발달장애인 대부분 직장생활이나 일상적인 예절에 대해 몰라서 발생하는 문제로 쉬운 방법을 통해 이들에게 설명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근로계약서 역시 마찬가지다. 비장애인이 작성하는 표준근로계약서는 내용이 어려워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소소한 소통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되는 근로조건을 쉬운 표현으로 바꾸고, 삽화를 넣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백 대표는 “일상예절 등 발달장애인이 모르는 부분은 비장애인이 알려주는 등의 소통을 통해 고용 이후에도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긍정적인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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