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SK그룹은 전공 1학점을 덜 채워 졸업을 못한 우수 인재 같습니다. 사회적가치 창출에 가장 앞장서고 있지만, 정부의 장애인 의무 고용 비율인 3.1%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태원 SK회장에게 쓴소리(?)를 날린 기업이 있다.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는 지난 5월 28일 열린 ‘소셜밸류커넥트(SOVAC) 2019’에서 SK의 장애인 고용에 대해 지적했다. 최 회장은 김 대표 조언에 긍정적으로 화답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 대표는 이진희 대표와 공동으로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베어베터’를 운영 중이다. 베어베터는 총 240명의 발달장애인과 60명의 비장애인이 근무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인쇄, 제과, 커피 로스팅, 카페, 꽃 배달, 사내매점 등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본지는 이진희 대표를 만나 발달장애인 일자리 확대를 위한 베어베터의 고민을 들어봤다.

베어베터가 생산한 쿠키

발달장애인 특성 반영하면서도 기업 만족시키는 법

베어베터는 고용한 발달장애인이 생산한 제품을 연계고용부담금감면제도를 활용해 기업과 직접거래하는 B2B 방식의 기업이다. 연계고용부담금감면제도란 장애인 의무고용 부담금을 납부할 의무가 있는 기업의 사업주가 장애인 연계고용 대상 사업장에 도급계약을 하면 거래한 금액의 50%를 감면시켜 주는 제도다.

베어베터에게는 기업고객을 만족시키면서도 발달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사업을 찾는 것이 초창기 과제였다. 처음 선택한 사업은 ‘인쇄업’이다. 교육자료나 명함은 모든 기업이 인쇄해서 사용하는 물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하철 노선도에 밝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더해 배송 업무까지 한다. 배송 담당 직원들은 직접 명함을 들고 지하철로 이동하며 주문한 제품을 전달한다. 기존 명함 주문서비스는 수령 받기까지 1~2주가 소요됐지만, 이 서비스는 2~3일로 배송 기간을 대폭 줄여줬다. 긴급명함은 1일만에도 수령가능하다. 기존 시장에서 발생했던 불편함이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과 기업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고민을 이어간다. 명함 배송외에도 발달장애인이 가능한 일을 찾고 있는데, 명함 인쇄, 커피 로스팅, 꽃장식에 들어가는 리본 생산, 제과 등 현재 다양한 사업을 진행중이다.

베어베터가 기업과 꾸준히 거래할 수 있는 이유는 세련된 브랜딩과 높은 품질의 제품이다.

'세련된 브랜딩·높은 품질'...기업이 베어베터를 선택하는 이유

베어베터가 주목 받는 이유는 발달장애인 고용때문만은 아니다. 베어베터가 선보이는 브랜드들은 공통적으로 세련미를 갖춘데다 품질이 높다는 평가들이다. 연계고용제도가 적용되는 기업과 주로 거래하다 보니 규모가 100인 이상인 기업이 많다. 때문에 고품질의 생산품은 물론이고, 기업이 베어베터를 선택할 수 있도록 브랜딩하여 ‘세련된 기업’의 이미지를 전한다.

이같은 노력은 기업과의 거래를 지속시키며, 장애인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장애인이 만든 제품이니 사주세요’ 보다 ‘이렇게 훌륭한데 알고보니 장애인들이 만든거야?’라는 놀라움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시장 어떤 것에 비춰도 떨어지지 않는 품질과 브랜딩을 중요시 하죠.”

발달장애인 특성 맞춘 쉬운 직무방법 개발 

#지적장애인을 고용해 분필을 생산하는 일본 이화학공업은 발달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춰 직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길이가 다른 분필을 고르는 일을 지시 할 때, 직접 정확한 규격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규격에 맞춘 막대를 만들어 길이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지시한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이 대표는 일본 이화학공업의 사례가 뇌리에 박혔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앞날이 깜깜했는데 이화학공업 사례를 접했고 ‘이런 회사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베어베터를 운영하면서도 이화학공업의 사례를 생각하며, 우리 관리자에게도 ‘어떻게 하면 사원들이 쉽게 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도록 독려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어베터는 업무를 세분화해 단순화 시킨다. 베어베터가 지난 4월 처음 문을 연 사내매점 역시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직무를 세세히 쪼개 세분화했다. 사내매점 근무 매뉴얼을 살펴보면 사원들이 어떤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상세히 명시돼 있다.

“회사에서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은 어려워요.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있고, 직무 능력 자체의 한계도 있고요.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하죠.”

장애 이해하는 관리자 역할도 중요해

쉬운 직무와 병행돼야 할 것은 장애를 이해하는 관리자다. 관리자는 발달장애인이 업무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직무를 쉽게 만들고,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예의주시한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들이 돌발행동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장애특성의 측면으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반복적인 교육에 인내심도 있어야 한다. 발달장애인들은 성인이기에 학생에게 하듯 개입해서도 안된다. 단,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는 민감하게 지켜봐야 한다.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꾸준히 교육하며 양성하고 있죠.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쉬운 직무를 만드는 것 보다 장애를 이해하는 관리자를 만들어 내는게 훨씬 더 오래 걸리고 힘든 일 같아요.”

베어베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진희 대표.

발달장애인 고용에 집중하는게 목표

이 대표에게 베어베터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에 대해 묻자 “계속해서 발달장애인 고용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발달장애인 고용을 더 잘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니 기회가 많이 왔어요. 지금 베어베터가 진행하는 방식 외에 다양한 방식도 생길 수 있겠죠. 그래서 특별히 어떤 형태에 목표를 갖는다기 보다 지금처럼 발달장애인 고용에 충실하고자 해요.”

사진. 최범준 이로운넷 인턴기자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