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애인 문화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화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장애인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창의적 감성과 예술적 사고를 바탕으로 공연, 미술, 도예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여러 장애유형 중에서도 발달장애인들이 문화예술분야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다. 이들은 높은 집중력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수준높은 예술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운넷>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문화예술분야에 종사하는 발달장애인들의 현황을 살펴보고, 이들의 예술활동을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짚어본다.

“아빠가 변했어요. 제가 뮤지컬을 하기 전에 아빠는 저에게 무관심했는데, 공연을 보고난 후에는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어요. 관심도 커졌고요. 덕분에 저도 행복했어요. 저희가 계속 활동 하다 보면 비장애인도 저희 아빠처럼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이소라 단원-

라하프는 발달장애인이 주체가 돼 뮤지컬을 만드는 극단이자 문화·예술 전문 교육 단체다. 나사렛대 재활자립학과 학생 부모가 모여 만든 자조 모임에서 시작했다. 2016년 단원의 이야기를 담은 ‘This is our story’가 첫번째 작품이다. 라하프는 2017년 ’대한민국 국회대상(뮤지컬부문)‘, 2018년 평창패럴림픽 문화올림픽 초청공연 등을 거치며 성과를 인정 받았다.

뮤지컬 신데렐라 공연 중 이소라 단원 모습./사진=라하프

발달장애인 사회성 오르고, 주위 편견 사라져
사회는 아직 발달장애인의 문화활동에 관심이 높지 않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면 충분하다는 직업재활 수준에서 관심이 멈췄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경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발달장애인은 좀처럼 삶에 활력을 찾기 어렵다.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핸드폰만 하기도 하고,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가족과만 지내기도 한다. 

춤과 노래로 자신을 표현하는 뮤지컬은 발달장애인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김보미 사무국장은 라하프가 발달장애인에게 준 영향이 무엇인지 묻자 다소 의외의 답을 내놨다. “먼저 인사를 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려웠다. 의미를 다시 물었다. 김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 대부분은 낯선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아온 상처나 경계심, 자폐를 가진 발달장애인의 경우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극단 활동을 하며 단원의 사회성이 높아지고 단원이 사회에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던 이한길 단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소라 단원도 극단 활동을 하며 많은 변화를 느꼈다. 스스로가 변하기도 했지만, 주변에서 변화가 컸다. 특히 아버지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꼈다. 한소라 단원은 “평소 자신에게 무관심하던 아빠가 공연을 본 후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며 “나를 향한 관심도 높아졌고 이제는 제가 계속 활동 하다 보면 일반 비장애인의 시선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소라 단원뿐 아니라 대부분 단원의 사회성이 높아졌다. 코로나19로 활동이 중지된 지금도 단원 단톡방에는 ’언제 볼 수 있냐‘,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수시로 올라온다.

 공연을 앞두고 뮤지컬 연습에 한창인 모습./사진=라하프

극단 넘어 장애인식개선 강사 양성, 문화·예술 아카데미로
2019년 11월 라하프는 사단법인으로 전환하며 극단 활동과 함께 발달장애인 장애인식개선 강사 육성,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아카데미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단원이 극단을 떠나지 않고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발달장애인이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장애인식개선 강사는 발달장애인이 발달장애인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발달장애인이 발달장애인을 교육하는데 있어 일반 강사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보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김보미 사무국장은 “뮤지컬 극단이라는 우리의 특성에 맞게 단원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뮤지컬을 기반으로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며 “다만 장애인식개선 강사 사업 초기에는 비장애인과 협업해 수업을 준비하고 결국에는 발달장애인 혼자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발달장애인 문화예술아카데미는 뮤지컬, 탭댄스, 방송댄스, 발레, 힙합 등의 수업을 발달장애인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학생, 성인, 직장인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한다. 이 사업은 2018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극단 자체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이 사업을 통해 라하프는 발달장애인을 보조강사로 활용해 그들의 직업의 영역을 넓히는 성과를 거뒀다. 이외에도 라하프는 정부와 연계하여 발달장애인을 위한 안전 동영상을 촬영하고, 서울 소재 특수학급에 발달장애인 단원이 출강을 나가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라하프는 2018년 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서 수준높은 공연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사진=라하프

발달장애인 한계 규정할 필요 없어
라하프가 단순한 뮤지컬 극단을 넘어 문화·예술 교육, 인권 강사 육성과 인권 교육 사업을 준비·진행할 수 있는 이유는 발달장애인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하프는 발달장애인에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도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이들이 해왔던 공연에서 드러난다. 라하프는 ’뮤지컬‘ 극단이지만 뮤지컬’만‘ 하는 극단은 아니다. 지금까지 밴드와 걸그룹, 랩까지 다양한 공연을 해왔다. 지난 2018년 12월 국회 공연에서는 랩 공연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발달장애인에게 랩은 쉽지 않은 장르다. 비장애인보다 말을 늦게 배우는 탓에 말이 어눌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극단에서도 같은 우려가 있었지만 단원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단원의 수요에 맞춰 랩 감독을 섭외하고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진성 랩 감독은 국회 공연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국회 공연은 비판과 칭찬이 공존했다”며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공연 후 단원이 울면서 소감을 이야기할 정도로 높은 만족감을 드러내 기억에 남는다”고 국회 공연을 회상했다. 이어서 그는 “비장애인은 랩을 시작할 때 틀릴까 걱정하고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발달장애인은 당당하고 부끄러움 없이 랩을 한다”며 “사회로부터 억압되었던 응어리를 풀어내는데 이것은 힙합 정신과 통한다”고 발달장애인이 가진 강점을 강조했다.

라하프는 큰 꿈을 가졌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 확대, 사업 확장 뿐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경제활동, 나아가 삶 전반에 관심이 많다. 문화예술아카데미가 더 성장한다면 미래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대학으로까지 단체를 확장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장기적인 경제 문제, 직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마을 경제 공동체를 염두해두고 있다. 2~3년 안으로는 사회적기업 전환을 통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려는 계획도 있다.

지원 부족 아쉽지만 걱정 없어
발달장애인 단체를 위한 외부 지원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아 안타까운 면도 있다. 이진성 랩 감독은 “사업이 성장하고 나면 지원이 좀 들어오는데, 사업 시작 단계에는 지원이 없다”며 “발달장애인 특성상 전체 숫자와 비교해 그 규모가 잘 드러나지 않아 지원이 많지 않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라하프, 발달장애인은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목표를 이뤄낼 힘을 가졌다. 한 권의 시집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 중간 한 권의 시집을 받았다. 발달장애인 이한길 단원이 쓴 시집. 제목은 ‘정상과 비정상’. 사회가 도움을 주든 그렇지 않든 발달장애인 스스로가 묵묵히 그들이 누릴 문화·예술 범위를 늘려가고 있다. 사회의 지원이 부족하더라도 그들은 끄떡없다.

라하프는 지난 2018년 일본 고베대학과 연계해 공연을 진행했다. 일본에서 공연하고 중인 이한길 단원./사진=라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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