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1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빛의 혁명' 광화문 유세 시작을 알리며 두 팔을 번쩍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1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빛의 혁명' 광화문 유세 시작을 알리며 두 팔을 번쩍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아래 개헌 입장을 18일 공식 발표했다. "이제는 헌법을 바꿔야 할 때"라는 메시지는 단순한 선거 공약을 넘어, 지난 12.3 내란 사태와 그 후속 혼란 속에서 정치와 헌정 질서가 마주한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응시한 셈이다.

그는 개헌을 '국민이 진정한 주권자가 되는 설계도'로 표현했다. 그만큼 이번 개헌 제안은 상징과 제도, 철학과 기술이 어우러진 입체적 시도다. 그리고 이재명의 개헌론은 세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역사의 수용', '권력의 분산', '기본권의 확장'이 그 골자로 요약된다. 

역사로서의 헌법…5·18에서 촛불까지

이재명 후보는 헌법 전문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기념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명문화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부마항쟁, 6월 항쟁, 촛불혁명, 빛의 혁명까지 시대별 민주화의 흐름을 헌법에 담자는 제안은, 헌법이 '국민의 역사'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자는 의미다. 지금까지 헌법은 권력구조의 기술서로만 여겨졌지만, 이재명 후보는 헌법을 '우리의 피로 쓴 서사'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권력의 해체와 재조립…책임정치의 모형 제시

이번 개헌 입장문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체하고, 책임 있는 분권 체계를 세우자는 주장이다.

그는 ▲4년 연임제, ▲책임총리제, ▲결선투표제, ▲거부권 제한, ▲감사원의 국회 이관, ▲비상명령의 국회 통제 등 다양한 분산 구조를 제시했다.

이는 단지 권한을 줄이자는 논의가 아니다.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의 책임을 강화하되, 권력의 균형과 통제를 정교화'하자는 입장을 취한다. 다시 말해, 책임은 묻되 독주는 막겠다는 이중적 설계다.

이는 단순한 개헌이 아니라, 제7공화국 체제의 초석을 놓겠다는 선언이다.

권리의 확대와 지방의 성장

이번 제안에는 기본권 강화도 다수 포함돼 있다.

정보기본권, 안전권, 생명권 등 신(新)기본권 도입 논의는 디지털 시대, 기후 위기, 대규모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시대적 요구다.

더불어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 폐지, 공수처장·인권위원장 등 임명 시 국회 동의 요건 강화 등은 권력기관의 중립성을 높이고, 권력 감시 체계의 민주화를 실현하려는 실용적 접근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여기에 지방자치 강화 방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총리, 자치단체장이 함께 참여하는 '헌법기관'을 신설하고, 자치입법권 확대를 천명한 것은 단지 '지방 분권'이 아니라 중앙-지방 공동 통치 모델을 상정한 것이다.

이는 진정한 '생활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지는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7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05.17./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7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05.17./뉴시스

개헌, 현실 가능한가?

이재명 후보는 개헌을 공약이 아닌 시간표가 있는 설계안으로 제시했다.

"빠르면 2026년 지방선거, 늦어도 2028년 총선에서 국민투표 가능"이라는 언급은 현실 가능성을 고려한 절충안으로 보인다. 동시에 국민투표법 개정, 국회 개헌특위 구성, 순차적 합의를 통한 방식은 단계적 개헌 접근법을 예고한다.

이는 1987년 체제 이후 반복됐던 '개헌론의 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 설계로 볼 수 있다. 개헌이 '선거용 수사'가 아닌 '제도개혁의 로드맵'으로 등장한 셈이다.

12.3 사태는 단지 한 정권의 무리한 행위가 아니라, 현행 헌정체계의 위기 내성 부족을 드러낸 사건이다. 이를 뿌리째 복원하려면 헌법이라는 기초 틀부터 다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후보가 말하는 "진짜 대한민국"은 다원성과 견제, 민주성과 자치, 기억과 책임이 공존하는 국가다. 그것은 단지 정치 구호가 아니라, 헌법이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에 대한 질문이자 답이다.

그의 개헌안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방향은 명확하다. 헌법을 바꾸는 것이 정권을 바꾸는 것보다 더 본질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제안은 개헌의 정치학에 다시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의 시간은 길지만, 기회는 짧다. 헌법이 다시 국민의 것이 되기 위해선, 정치가 먼저 시대를 따라잡아야 한다. 헌법을 고치는 일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지를 다시 쓰는 일이란 점을 정치권이 새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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