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에서 온 편지] 3. 서울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
[로컬에서 온 편지] 3. 서울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
  • 충북(옥천)=김예림 월간옥이네 기자
  • 승인 2019.11.04 0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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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아.

나는 지금 옥천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네가 지난여름 놀러 왔던 우리집 말이야. 우리는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숨도 못 쉬게 더운 밤을 보내고, 다음 날 금강에 놀러가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질 만큼 오래 물놀이를 했지. 너희가 아름다운 옥천의 여름에 감탄할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 서울에서, 경기도에서, 아무튼 옥천보다 인구가 몇 십 배는 많고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 온 너희에게 꽤 그럴듯한 여름휴가를 만들어주고 싶었거든. 정신없이 즐거운 여행이 끝나고, 무궁화호에 오른 너희를 배웅하고 나니까 조금 외로워지더라. 기차로 두 시간 거리에 사는 너희를 또 언제 만날까 싶어서 말이야. 아직도 낯선 이 지역에서 내 삶을 또 어떻게 헤쳐나갈지 막막해져서 말이야.

내가 옥천에 지역 잡지를 만들러 간다고 했을 때 네가 그랬지. 그 작은 동네에 쓸 게 그렇게 많냐고. 그때는 어쩐지 울컥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반박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 너나 나나 살아보지 못한 곳에 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잖아. 막연한 기대와 인연으로 향한 지역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공간에 가고, 집을 구해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네 욕구는 서울을 향했고, 내 욕구는 옥천을 향했지. 도시와 지역의 인프라 차이를 느낄 때마다 어떤 게 좋은 선택이었을까 고민하기도 했어. 옥천에 3년이 좀 안 되게 살아온 지금은 더 좋은 선택이라는 건 없었다고 생각해. 중요한 건 내가 ‘왜’ 옥천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일 테니까.

서울에서 태어난 은아. 서울에서 공부하는 은아. 네가 지역이 아닌 서울에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잘 던지지 않아.

나는 나에게 자주 질문해. 너는 왜 옥천에 살겠다고 했어? 왜 다른 곳이 아닌 옥천이었지? 앞으로도 옥천에 살아야 할 이유는 뭐야? 한참을 묻다 보니 우리의 세상이 넓어지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우리가 각자 동네를 벗어나 서울에서 놀던 청소년기가 떠오르더라. 나는 서울에 가기 위해 늘 두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탔어. 어떤 애는 기차를 타고, 또 다른 애는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지. 나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지하철이 종종 불만스러웠던 것 같아. 왜 서울에서 만나야 하지? 왜 모든 흥미로운 것들은 서울에 있지? 이 비좁은 도시에 내 자리는 어디 있지? 나는 지하철에서 보내는 지난한 시간이 싫다는 이유 하나로 옥천에 온 셈이야.

나는 옥천에 집을 얻었어. 직장에 출근했고, 무려 ‘기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지. 농촌 지역인 옥천에서는 읍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논밭이 보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는 풀을 매고, 가을에는 열매를 거두고, 겨울에는 봄을 준비하는 농촌의 풍경 있잖아. 뜻밖에도 논밭을 일구는 농민들은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하더라. 농사가 옛날 같지 않아 웬만한 규모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농업이 산업화될수록 돈을 버는 건 농민이 아니라 종자회사라고, 직접 씨 받아 지켜온 토종 종자는 다 사라지고 매년 새로운 씨앗을 사서 농사짓는다고. 나는 옥천의 토종씨앗을 찾아다녔어. 이미 많은 토종씨앗이 사라졌다지만, 남아 있는 씨앗은 지켜야 할 테니까. 또 개량종 보다 잘고 못난 토종씨앗을 왜 여태 지키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그렇게 다른 콩보다 일찍 여무는 ‘울콩’, 색을 내기 위한 떡 고물로 많이 쓰였다는 ‘청태’, 까맣고 쫄깃한 ‘검은찰옥수수’를 찾았어. 이때 만난 농민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농업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어요. 씨앗을 살려야 할 의무는 당신에게 있고요.”

이상하지. 나는 이 짧은 한 마디에서 내 자리를 내어준 것 같은 다정함을 느꼈어. 씨앗과 전혀 상관없는 듯한 내게도 ‘씨앗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거야. 그건 곧 내가 할 일이 있다는 뜻이잖아. 농촌을 대상화하지 않을 의무, 지역 농산물을 소비할 의무, 내가 보고 들은 농촌을 세상에 알려낼 의무. 이 정도면 내가 왜 옥천에 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답이 될까? 뭐, 궁금하지도 않았다고? 됐어. 언젠가 내가 직접 농사지은 토종 농산물로 맛있는 요리를 해냈을 때 부러워하지나 마. 내가 농사짓는 밭에서 풀을 뽑게 할 테니 도망가지나 마. 정말 그런 날이 도래한다면, 아마 우리는 여름휴가 일부를 밭에서 보내겠지. 진한 땀 냄새가 밴 여름휴가도 꽤 즐거울 거라고, 섣불리 장담해 본다.

은아. 서울에서 밤을 보내는 너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바쁘게 과제를 하거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거나, 집에 누워 고양이 장난감을 흔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 문득 심심해지면, 옥천에 사는 내 소식이 궁금해지면 이 편지를 읽어줘. 네가 지루하지 않을 만큼 재밌는 이야기를 준비할게. 다른 어디도 아닌, 옥천에 사는 내 이야기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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