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4단계 건설사업 현장에 안전모와 장갑이 놓여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1.26. /자료사진=뉴시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4단계 건설사업 현장에 안전모와 장갑이 놓여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1.26. /자료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죽음을 멈추라"며 호통을 치고 노동부 장관이 연이어 경고장을 날렸지만 통계는 냉정하다.

여전히 하루 평균 3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수사 대상은 1252건에 달했지만 재판에 넘겨진 건 121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1심 판결이 나온 56명 중 50명이 유죄였으나 이 중 42명은 집행유예였다. 실제 징역형 실형은 드물었고 벌금 역시 대부분 평균 7280만 원 수준에 그쳤다.

무죄 비율은 일반 형사 사건보다 3배 이상 높았다. "대형 로펌을 쓰면 무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 정도다.

그럼에도 원청 사업주가 기소된 비율은 43%까지 올라왔다는 점은 그나마 변화로 평가된다. 하지만 예방과 처벌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법조계·노동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대우건설 울산 현장,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쓰러졌다

지난 4일 울산 북항 LNG 터미널 공사현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3탱크 데크플레이트에서 청소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오후 2시 50분경 쓰러졌고 체온은 43도까지 치솟아 있었다. 응급조치를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밤 8시 54분 결국 사망했다.

사인은 온열질환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문제는 반복성이다. 기본적인 휴식, 급수, 그늘 같은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작업중지권이 현장에서 작동했는지 철저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대우건설은 "깊이 사과드린다"며 전 현장 특별점검을 약속했지만 노동계에서는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오전에는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서울 성동구 청계리뷰자이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50대 중국인 근로자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공사장 15층에서 외벽 거푸집 설치 작업 중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허윤홍 GS건설 대표는 이날 사과문을 통해 현장 근로자 추락 사망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모든 현장에 전사적 특별 안전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219명이다. 사업주 안전조치의무 불이행으로 사망한 중대재해 사망자 수는 137명으로 집계됐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총 사망자 수는 1968명이다./그래픽=뉴시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219명이다. 사업주 안전조치의무 불이행으로 사망한 중대재해 사망자 수는 137명으로 집계됐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총 사망자 수는 1968명이다./그래픽=뉴시스

건설회사 공사 현장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제도 보완을 넘어 '구조 전환' 필요

앞서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도 연이은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대통령이 직접 "면허를 취소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초강경 메시지를 낸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에따라 앞으로 다수의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영업정지와 입찰제한을 비롯한 경제적 불이익이 대폭 강화되고 공시도 의무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 같은 종합대책을 9월 중 발표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219명이다.

사업주 안전조치의무 불이행으로 사망한 중대재해 사망자 수는 137명으로 집계됐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총 사망자 수는 1968명이다.

포스코이앤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3년간 건설업 사망자의 사망 유형은 추락, 끼임, 교통사고 등 기본적 안전수칙만 지켜도 막을 수 있는 '후진국형'이 대부분이다.

사망자의 90% 이상이 하도급 소속이라는 점도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최저가 낙찰제, 공기 단축, 일용직 85%라는 고용 구조 속에서 숙련은 쌓이지 않고, 위험은 하청으로 전가된다.

이동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해법으로 네 가지를 제시한다.

△규정과 양형 기준의 구체화 - 법 적용의 모호성을 줄여 일관된 처벌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근로감독관 확충 - 현재 감독관 1명이 3,622개 사업장을 관리하는 현실은 제도 사각지대를 양산한다. 합동수사단 설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센티브 제공 - 안전관리 우수 기업에 세액 공제, 정부 입찰 가점을 주는 등 긍정적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경제적 불이익 강화 - 반복적 사고 기업에 가중 벌금, 산재보험 요율 인상, 산업안전 기금 출연 의무화 등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그는 "산재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이는 국민적 합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2일 서울 서초구 에스피씨 지에프에스 본사 앞에서 열린 '반복되는 SPC 중대재해, 책임자 처벌과 근본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2일 서울 서초구 에스피씨 지에프에스 본사 앞에서 열린 '반복되는 SPC 중대재해, 책임자 처벌과 근본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은 '죽음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시행 4년이 지났지만 법은 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법망은 느슨했고 처벌은 약했으며 구조는 그대로였다.

대우건설 울산 현장의 사망자, GS건설과 포스코이앤씨 등의 연쇄 사고는 우연이 아니다. 반복된 죽음은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예산이 잘리고 공기가 단축되는 순간 이미 예정된 것이다.

죽음을 멈추려면 책임을 묻는 것에서 더 나아가 건설업의 구조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 원청이 실질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안전 투자가 기업의 이익과 연결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사람보다 돈이 귀한 사회'를 바꾸지 않는 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름뿐인 법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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