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조은결 기자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중대산업재해 현장 간담회를 위해 경기도 시흥의 SPC삼립 공장을 찾았다. 이 대통령은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를 향해 "사고 시간이 몇 시였어요?", "끼어서 사망한 거죠?", "왜 그렇게 이야기하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면 모른다고 하세요" 등 쉼 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 대통령이 현장 질의에서 던진 질문은 총 34차례에 달했다.
이날 방문은 지난 5월 해당 공장에서 발생한 여성 노동자 사망사고를 점검하고 유사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노사 협의를 촉진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당시 50대 여성 노동자가 크림빵 생산 라인의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상반신이 끼어 숨졌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포함해 안전관리 소홀 정황을 조사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고 경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근로 형태와 구조적 문제를 정조준했다. 김 대표가 "3조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이 대통령은 즉각 "4일간 12시간씩? 그건 3교대가 아니라 맞교대"라며 "밤 같을 때는 (근로자들이) 졸리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휴식시간 설명이 어긋나자 "왜 그렇게 이야기 하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며 질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2년에도 같은 유형의 사고가 있었다"며 "두 번, 세 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건 시스템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4일을 밤 7시부터 새벽 7시까지 12시간 근무하는 게 가능한 일이냐"며 노동 구조 전반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날 자리에는 허영인 SPC그룹 회장도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허 회장을 향해 "12시간씩 일하면 8시간 외 4시간에 대해선 150%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차라리 8시간씩 3교대를 돌리는 게 임금 총액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지 않냐"고 반문했다. 나아가 "월급 300만원 받는 노동자라고 해서 목숨값이 300만원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에 유독 단호한 이유는 개인적인 배경과 무관치 않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소년공 시절 프레스에 팔이 눌려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 온몸에 상처가 100군데 넘게 났다고 참모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도 "삼립은 저희 형님이 일하던 인연이 있다"며 노동 현장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 SPC "맞교대 근무 단계적 개편"…허진수 파리크라상 사장, 쇄신안 발표

허영인 회장은 "바로 전환하기는 어렵지만 개선 방안은 잘 알고 있다. 순차적으로 바꾸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답했다. 김범수 대표는 "기업 입장에서 비용이 더 나가는 건 맞다"며 "임단협을 통해 임금 문제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 방문 직후 '쇄신안'을 발표했다. 허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파리크라상 사장이 직접 '변화와 혁신 추진단'을 맡아 문제 해결에 진정성 있게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추진단에는 노동조합 남녀 대표도 위원으로 참여한다.
첫 프로젝트로는 현장 근로자의 안전성을 대폭 강화한 스마트 공장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추진단은 계열사 공장 근로자의 업무량·근로시간 단축, 야간 근로 축소도 검토 중이다.
◆ "죽지 않는 노동" 위한 법적 기반…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 논의로 확장

SPC 사고처럼 반복된 현장 사망 사고는 비단 SPC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2일 하루 동안에도 울산 울주, 인천 중구, 경기 안성 등에서 총 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추락, 협착, 충돌 등 유형은 달랐지만, 노동자의 죽음은 반복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들 사례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조사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1명 이상 사망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동일 원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법의 강력한 집행을 거듭 강조해왔다. 여기에 더해 노동계의 오랜 요구였던 '노란봉투법' 역시 본격적으로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해당 법안은 하청노동자의 교섭권 보장(2조 개정)과 손해배상 청구 제한(3조 개정)을 골자로 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윤석열 전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두 차례 무산됐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6일 후보자 청문회 당시 노란봉투법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 한 바 있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노란봉투법 개정안이 22대 국회를 통과했던 원안보다 후퇴한 개악안이라며 국회 앞 시위에 나섰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법 2조·3조 개정을 통해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 확대와 노동쟁의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검토 중인 정부안에는 '쟁의행위 범위 축소', '부진정 연대책임 조항 유지', '법 시행 시점 1년 이상 유예'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민주노총은 "개정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정부에서 통과됐지만 윤석열 전 정부의 거부권으로 무산됐던 기존 개정안의 유예기간은 6개월이었다.

민주노총은 "사용자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쟁의에 대해 노동자 책임을 묻는 조항은 형평성과 정당성 모두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노동쟁의 범위를 축소하는 시도는 노동자의 정당한 쟁의권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민주당이 스스로 통과시킨 법안을 후퇴시키는 논의를 이어간다면 일관성과 진정성 모두에 의문이 생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노총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정의 조항'을 반드시 노동조합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촉구하며 이를 통해 이 법 개정이 '노동개악'이 아닌 '노동존중 사회의 출발'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영훈 장관 "노조법 정부입장 정돈하겠다"…노동계와 연쇄 접촉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만나 "공식 당정협의가 시작되면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민주노총 농성장을 찾아 양경수 위원장과도 만남을 가졌다. 이어 전국금속노조와도 면담을 진행했다. 이는 SPC 현장 방문과 함께 노동 현안 전반에 대한 정부의 노선 정비가 이뤄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부가 마련한 '노란봉투법' 정부안에는 하청노조 교섭권 확대와 손해배상 제한이 담겼지만, 근로자 추정 조항과 원청 책임 명시 조항은 빠져 있어 노동계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목숨값이 300만원일 수 없다"
이는 단순히 기업 하나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노동 정책 전반의 개혁을 촉구하는 메시지다. SPC는 상징적 사건일 뿐, 산업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중대재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외친 이 말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장의 죽음을 실질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이제 법과 제도, 그리고 책임자 처벌이라는 '실천'으로 입증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