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조은결 기자
최근 3년간 건설업과 제조업에서만 3000여 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가운데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살기 위해서 갔던 일터가 죽음의 장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며 '후진적 산재 공화국'을 반드시 벗어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는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과징금 신설, 공공입찰 제한, 대출 제한 등을 포함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이르면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이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오는 13일 국민보고대회에서 산재사고 사망만인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고 노동시간을 1700시간대로 줄이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현황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2024년) 건설업에서만 1521명이, 제조업에서는 1458명이 산업재해로 숨졌다. 건설업은 해마다 전체 산업 사망자의 약 40%를 차지했다. 2022년 46%, 2023년 43.8%, 2024년 39.7%였고, 2025년 1분기에도 45.7%에 달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산업안전관리체계 전면 개편에도 사망자 수는 줄지 않았다. 2025년 1분기 기준 사망 유형은 추락(33%)이 가장 많았고, 교통사고·끼임·물체에 맞음 순이었다. 대부분 보호구 착용과 기본 작업 절차만 지켜도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다.

대형 건설사 시공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90% 이상이 하도급 소속이었다. 원청은 명예와 책임을 갖지만 실질적인 작업지휘는 하청 소장이 맡아, 권한과 책임이 분리된 구조에서 사고 책임이 하청에 전가된다.
이학영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2024년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에서만 2,571명의 사고재해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는 21명으로 2023년 대비 110% 증가했다. 현대건설이 5년간 17명으로 가장 많았고 포스코이앤씨도 5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특히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8일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8일 만이자 이 대통령이 면허취소 검토를 지시한 지 6일만인 지난 4일,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연장공사 현장에서 30대 미얀마인 근로자가 지하 물웅덩이에 설치된 양수기 펌프를 점검하던 중 감전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에 경찰과 고용부는 12일 본사와 하청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수사관 70여 명이 투입돼 양수기 시공·관리 관련 서류, 전자정보, 안전관리 계획서, 유해위험방지 계획서 등을 확보했다.
올해 포스코이앤씨 현장 사망사고는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추락사, 4월 광명 신안산선 1사망·1부상, 대구 주상복합 공사장, 7월 경남 의령 천공기 끼임사, 그리고 이번 미얀마 노동자 감전사고까지 5건이다.
포스코이앤씨는 5월 고용부 감독에서 약 70건의 법 위반이 적발돼 1건은 송치, 약 2억원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본사 7052만원, 현장 1억2426만원이었으며, 신안산선 붕괴사고 현장은 당시 공사 중단 상태라 감독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포스코이앤씨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총 8건이다. 고용부는 기존 36개 현장 외 전국 65개 현장과 본사를 재감독하며, 법 위반 여부와 무관하게 CEO 안전 인식 등 구조적 원인을 점검하고 필요 시 컨설팅도 병행할 예정이다.
◆ 이재명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산재 공화국 반드시 벗어나야"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거듭된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사람 목숨만큼 중한 게 어딨겠느냐"며 "후진적인 산재 공화국을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살기 위해서 갔던 일터가 죽음의 장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돈을 벌기 위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지출해야 할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다고 하는 것은 전에도 말했지만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하는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 규정이 있냐, 없느냐를 확인했는데 5년 이하의 징역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안전조치 안 하는 근본적 (원인을) 따지면 돈 때문이다. 목숨보다 돈 더 귀하게 여기는 풍토가 원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결책은 안전조치를 안 하는 것은 바보짓이란 생각이 들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더 손해가 되게 하면 되는 것"이라며 "일상적으로 산업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조치를 안 하면 엄정 제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건설현장과 관련해서는 '위험의 외주화'라고 불리는 하도급 문제를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건설현장은 하도급, 재하도급이 원인이다. 하도급이 반복되면서 실제 공사비가 줄어들다 보니 안전조치를 할 수가 없다"며 "구조적 문제로 건국 이래 반복된 일이니 쉽게 바뀔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이번에 반드시 뜯어고치도록 해야겠다"고 주문했다.
이어 "위험의 외주화, 위험한 작업은 하청이나 외주에 준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책임은 안 지고 이익은 보겠다는 건 옳지 않다"며 "필요하면 관련 법을 개정해서라도 후진적 산재공화국을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폭력 문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 일각에서 특히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 차별, 폭력이 잇따르고 있다"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모범국가 위상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관계 부처를 향해 "전세계가 K-문화 열광하면서 우리 주시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익, 국격에도 부정적 영향 미칠 게 분명하다"며 "이주 노동자, 외국인 또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 , 또 인권 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처를 하고, 필요하면 제도적 보완책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 2030년까지 산재사망 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

'산업재해와의 전쟁'에 칼을 빼든 이재명 정부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으로 줄이는 목표를 추진한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오는 13일 국민보고대회에서 △산재사고사망만인율 0.39‱→0.29‱(OECD 평균) 감축 △연간 노동시간 1859시간→1700시간대 단축 △임금체불액 2조 448억원→2030년 1조 미만 절반 감축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사고 비율은 근로자 1만 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인 0.29명을 크게 웃돈다. 이재명 대통령은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산업재해율을 개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국정기획위는 산재사망 감소를 위한 주요 방안으로 △작업중지권 확대 △산업안전보건 공시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작업중지권 확대는 근로감독관 권한 확장을 포함해 근로자가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조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산업안전보건 공시제는 산재 발생 현황, 예방 대책, 안전보건 투자 내역 등을 매년 공개해 안전한 작업 환경 조성을 유도하는 제도다.
산재보상 처리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해 '산재보상 국가책임제'도 추진된다. 2024년 기준 평균 산재 처리 기간은 227.7일에 달하며 처리 지연으로 피해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에 정부는 재해 조사 기간을 일정 기간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동자의 권리 강화를 위해 임금체불 문제도 중점 과제로 다룬다. 목표는 2030년까지 임금체불액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 1조 원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과 협력해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실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에 맞추기 위해 주 4.5일제 도입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근로시간 단축 로드맵을 통해 구체적인 계획도 제시할 예정이다.
이번 국정기획위의 발표에는 '누구나 존중받는 일터' 실현을 위해 8조 원 규모의 재원을 투입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이는 산업재해율 감소와 노동환경 개선을 향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 '노동안전 종합대책' 8월 말~9월 발표 예정

12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이 강력 대응을 주문하면서 사전예방, 제재, 금융조치 등 동원 가능한 수단이 종합적으로 담길 전망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종합대책이 늦어도 9월까지는 마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9일 1차 회의, 이달 1일 2차 회의가 열렸으며 중간에는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주재 실무회의도 진행됐다. 고용부는 각 부처 대책을 취합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종합대책 이후에도 노동자·사용자·전문가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며 "3차 협의체 회의도 이달 중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일터에서 죽음을 멈출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만큼, 보다 강력한 종합대책이 마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별지시에도 포스코이앤씨 등에서 인명사고가 잇따르자 이 대통령은 휴가 복귀 직후인 지난 9일 "앞으로 모든 산재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는 "산재 사망사고가 상습 발생하면 공시를 반복해 주가를 폭락시키겠다"고 언급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사망사고 형사처벌 △징벌적 손해배상 △공공입찰 제한 △영업정지 △ESG 평가 반영 등 강력 조치가 제안됐다.
고용부는 이러한 제안과 함께 영업정지 요청 기준 완화를 검토 중이다. 현재는 동시에 2명 이상 사망해야 영업정지를 요청할 수 있지만 이를 1명으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근로감독관 증원도 추진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업안전 감독인력 300명을 신속 증원하고 추가 증원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300명 증원 직제 개정을 추진 중이며 추가 1000명 증원도 검토한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 노동 특별사법경찰(특사경)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현재 특사경 권한은 고용부에만 있지만, 지자체로 확대해 현장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확대도 추진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작업 중지가 가능하지만 '급박한'을 삭제해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이다. 근로감독관에게 작업중지권을 재부여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된다.
소년공 출신인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는 노동안전 대책이라는 점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기대도 크다. '산업현장의 위험을 가장 먼저 체감했던 대통령'이라는 상징성 속에 이번 대책이 보여줄 변화가 단순한 법·제도 개선을 넘어 노동자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는 실질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