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도 시흥시 SPC 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회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도 시흥시 SPC 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회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뉴시스

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이틀전인 지난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SPC삼립 시화공장을 찾았다. 이는 단순한 산업안전 점검 일정이 아니었다. "사고 시간이 몇 시였냐", "3조 2교대라고요? 그건 맞교대죠",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

현장에서 대통령이 쏟아낸 34개의 질문은 마치 진압하듯 사건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SPC에서 반복된 산업재해는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2022년, 2024년, 그리고 2025년까지 세 번. 크림빵 생산라인, 냉각 컨베이어, 같은 방식, 같은 시간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대통령은 그 구조를 '시스템의 문제'라고 정의했고,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몰아넣는 야간 맞교대 근무를 "사람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구조"라고 단언했다.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27일, SPC그룹은 공식적으로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 현장을 방문해 '장시간 야간노동'의 위험성을 지적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나온 조치로,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를 긍정적 변화의 신호로 평가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SPC그룹이 장시간 야근을 없애겠다고 밝힌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당부에 대한 책임 있는 응답"이라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기업의 이윤 추구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SPC의 결정을 공식 환영했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이제는 비용 때문에 생명과 안전이 희생되는 구조를 끝내야 한다"면서도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은 곧 기업의 상생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반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노동자의 목숨값, 이윤의 하위항인가

이례적인 SPC그룹의 발빠른 변화와 그 속도에 놀랄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지금부터다. 정말 이 변화가 구조를 바꿀 것인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의 생명은 얼마짜리로 평가되고 있는가?

"월급 300만원 받는 노동자라고 해서 목숨값이 300만 원은 아니다." 대통령의 이 한 마디는 실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고 당일, 컨베이어에 몸이 끼여 사망한 여성 노동자는 과연 이 시스템 속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이름보다 더 먼저 정해진 교대시간표와, 사고 뒤에야 보이는 책임자 구조, 그리고 침묵해온 기업.

SPC는 그간 ‘3조 2교대’라는 명목 아래 12시간 야간 노동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이는 실상 맞교대였다. 이 대통령은 "12시간씩 일하고, 그중 8시간만 정상임금이라면 나머지 4시간은 150%를 지급해야 한다"며 오히려 비용과 효율 면에서도 문제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물론 SPC는 순차적 전환을 예고했다. 허진수 사장을 중심으로 '쇄신 추진단'을 출범시키고 스마트 공장 도입, 노조와 공동참여 등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이 노동자의 '죽지 않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2일 서울 서초구 에스피씨 지에프에스 본사 앞에서 열린 '반복되는 SPC 중대재해, 책임자 처벌과 근본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2일 서울 서초구 에스피씨 지에프에스 본사 앞에서 열린 '반복되는 SPC 중대재해, 책임자 처벌과 근본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기업의 책임 있는 응답…정부-노동-기업이 함께 가야

SPC만의 문제가 아니다. 7월 22일 하루 동안 울산, 인천, 경기에서 또 세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추락, 협착, 충돌. 이름은 다르지만 원인은 같다.

구조적 반복.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했지만, 법은 이미 두 번이나 무력화되었다. 윤석열 전 정부는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지금도 개정 논의는 후퇴 중이다.

노조법 2·3조 개정, 하청노동자의 교섭권 보장, 손배 청구 제한 등 모두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다. 하지만 노동계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부안조차도 "개악"이라며 반발 중이다. 유예기간 연장, 책임조항 누락, 쟁의행위 범위 축소. 이런 조건 속에서 과연 노동자들은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대통령의 방문 뒤 이틀만에 나온 SPC의 야근 개편 조치는 단순한 기업의 방침 전환을 넘어, 대통령의 현장 방문 이후 실제 정책 반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생명 존중'과 '노동 존중을 국정 운영의 핵심가치로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기조가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번 조치를 계기로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고,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적 변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SPC의 야근 폐지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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