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9일 서울 시내의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야외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연일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9일 서울 시내의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야외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이정석 기자

정부가 중대재해 발생 기업의 공공공사 참여를 제한하고, 안전 평가의 비중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계약제도를 전면 개선한다.

기업의 안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도 새로 도입된다. 앞서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기획재정부는 20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조달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가계약제도 개선 방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중대 사고가 잇따르자 관련 제도 개선을 부처에 직접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안전자격 없으면 공공입찰 못한다"…입찰 참가 자격 제한

정부는 '제한경쟁입찰' 제도에 안전 요건을 추가한다. 안전 분야 인증, 전문인력·기술 보유 여부 등을 기준으로 위험성이 높은 공사의 경우, 자격 미달 기업은 입찰 참가 자체가 제한된다. 기업의 안전 역량을 입찰 전부터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낙찰자 선정 단계에서도 안전 평가가 강화된다. '중대재해법 위반' 이력을 감점 요소로 새로 반영하고, 기존에 100억 원 이상 공사에서 2점 한도 가점으로 적용되던 '건설안전' 항목은 정규 배점 항목으로 전환된다. 기재부는 “대부분 기업이 정규 평가에서 만점을 받는 구조여서 실질적 변별력이 없었다”는 점을 개선 이유로 들었다.

안전예산 확보 유도…공사 중단 요청 시 불이익 면제

기업이 충분한 안전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안전 관련 비용의 적용 기준도 상향 조정된다. 또한, 공사 과정에서 안전 문제가 발견될 경우, 건설사가 스스로 공사 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조항이 계약 예규에 신설된다. 이 경우 지체상금 등 불이익을 면제해, 기업의 선제적 조치를 유도한다.

정부는 공사 지연이 시공사의 귀책이 아닌 경우, 추가 비용을 지급하고, 계약보증금율도 기존 15%에서 10%로 인하해 자금 부담을 줄일 방침이다. 기술제안입찰이 유찰돼 수의계약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물가 상승분을 계약금액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도 정비된다.

반복 산재 기업엔 '영구 퇴출' 검토…명의 변경 통한 제재 회피도 차단

정부는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요건도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동시 2명 이상 사망’이 발생한 경우에만 제한되지만, 앞으로는 '연간 다수 사망자 발생'도 제한 사유에 포함될 전망이다. 법인을 분할하거나 명의를 변경해 제재를 회피하는 사례도 막기 위해 관련 규정 신설도 추진된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입찰 자격 영구 박탈' 조치와 관련해서는 "관계 부처가 추가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은 "안전을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정착시키고, 안전불감 기업은 공공입찰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공공조달 혁신 생태계 개선 방안'도 함께 의결됐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이 있는 ‘혁신제품’의 조달을 확대해 초기 수요를 창출하고, 혁신기업을 육성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혁신제품 공공 구매 규모를 현재 1조220억 원에서 2030년까지 3조 원으로 확대하고, 현재 2,500개 수준인 혁신제품 지정 수를 누적 5,00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혁신기업 전용 보증상품도 다음 달 중 도입한다.

이처럼 최근의 산업재해 이슈들은 기업과 기관을 막론하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엄격한 책임과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는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정부의 공공 공사 참여 제한 조치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첫걸음으로, 향후 사회 전반에 걸쳐 '책임경영'과 '책임행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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